"어제 주인아저씨가 양을 죽여서 내장이랑 머리가 보여. 그래도 갈래?" 초록색 카트 위에 올려진 하얀 가죽이 보였다. 가죽으로 겨울 옷을 만들었나 했더니 정말 살만 빼고 남았다. 공기 중에 떠도는 벌레들에겐 경사 났다고 소문났나 보다. 웬 벌레들은 다 있었다. 피비린내와 함께 양은 잠들어 있었다.
우핑(wwoof)을 갔다. 하루 4시간 정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일자리 구하기 전에 여기저기 시골 촌구석 돌아다니면서 키위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아볼 겸 Abel Tasman 근처로 왔다. 블레넘(Blenheim)에서 차로 2시간 반, 한국이었으면 서울에서 경기도 끝자락을 가고도 남을 시간인데 뉴질랜드는 3시간은 거저 운전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작긴 작구나.
이 집주인은 70대 환경운동가 출신 여성과 50대 남성, 2명이다. 둘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양을 죽인 자는 남성. "살 중에 반절은 친구 선물로 주고, 나머지는 내가 먹었어." 동물을 죽이고 얻은 살을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해 줬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깨끗하게 씻었을까, 아니면 뼈랑 같이 피 뚝뚝 떨어진 채로 줬을까.
첫 번째 업무는 땅을 파는 것이었다.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삽을 손으로 잡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보통 큰 화분에 있는 묘목을 땅에 옮겨심기 위해 아빠가 삽을 쓰는 걸 본 적은 있다. 쇠로 되어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무거웠고 손에 잡히는 게 영 미끄러워서 펜을 잡는 것처럼 다시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땅을 파다가 뭐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냥 일단 파." 분명 어제 비가 왔다고 했는데 땅이 완전히 굳어있어서 첫 시작부터 어려웠다.
나와 함께 우핑을 시작한 프랑스 친구는 곧잘 했다. 전에 한 번 해봤다며 시범을 보였다. 난 삽에 올라타 뛰기까지 했는데 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삽이 아닌 호미로 땅을 긁는 것처럼 한 주먹거리의 흙을 옮겼다. 옆에 서있던 키위 아저씨는 답답했는지 보고 따라 하라고 흙을 직접 파냈다. 본다고 그대로 될 리가 없지, 난 조금도 능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15분간 삽 2개짜리 깊이의 구멍을 만들었다. 땅을 파기 전에 "apple" 무슨 얘기를 들어서 여기에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 건가 했더니 예전에 사과나무를 심었다는 얘기였다. 키위 아저씨가 카트를 끌고 왔다. 양은 눈을 감고 있고 목이 잘려서 흰 뼈가 보인다. 내가 다른 델 보고 있는 사이에 친구는 내장을 땅에 묻었고, 이제 내 차례였다. 머리와 가죽이었다.
아저씨는 카트에 있는 모든 것을 땅에 부었다. "이제 덮어." 신음소리를 내며 흰 것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흙을 옮겼다. "거기 위에서 뛰어." 땅을 단단하게 하려면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기 위에서 뛰라고? 마치 묘지 위에서 방방을 타는 거 같아 불쾌했다. 시키니까 했다. 땅 밑에 우물이 있는 것처럼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울듯이 소리를 냈다. 아저씨는 본인이 하겠다며 흙을 덮고 그 위에서 뛰었다.
양이 죽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죽은 양 머리가 계속 보인다. 특히 그 목뼈. 아저씨에게 잔인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도 이제까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래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