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중입니다_임대문의

by 정림올제

산책길에 늘 스쳐 지나던 작은 맥줏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검은 유리창에 붙은 두 장의 A4 종이가 시선을 잡았다.

하나는 ‘임대문의’, 또 하나는 ‘지금은 영업 중’.

언뜻 보면 단순한 안내문이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영업 중’이라는 말은 지금 이 자리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선언처럼 보였으나 곁의 ‘임대문의’는 그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다.
물론 그 의미는 간단하다.
곧 문을 닫고, 새로운 임차인을 기다린다는 소식.
하지만 그 문구를 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부동산 공지가 아니라
삶의 부고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동네 사람들이 1차와 2차를 마친 뒤, 아쉬운 발걸음으로 향하던 마지막 3차 장소였다.
술보다는 긴 대화가 중심이었던 공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사라지기 전에 한 번쯤 더 모여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임대문의”가 오히려 일종의 마케팅 문구 같다는 엉뚱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나 그곳이 ‘1차도 2차도 아닌 3차’였기 때문에, 늘 나중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게 된 건 아닐까.
있어도 자주 찾지 않았으면서 막상 사라진다고 하니 아쉬운 내 마음은 참 이기적이다.
경영의 어려움 때문일 수도, 시대의 흐름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불 꺼진 매장 안의 정적과 유리창에 붙은 흰 종이는 왠지 부고장처럼 애잔했다.
‘임대문의’라는 검은 글씨가 조문객의 헌화처럼 차갑고 선연했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우리의 마음에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가족이 1순위, 친구가 2순위, 일이나 취미가 그 뒤를 잇는다.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순위가 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몇 순위일까.”


그 물음은 누구나 품고 산다.
누군가 나를 1순위에 두었다는 걸 알면 어깨가 하늘에 닿을 듯 기쁘고,
반대로 내가 소중히 여긴 사람의 마음속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면 서운함과 배신감이 밀려온다.
그럴 때 사람은 화를 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 따지고, “너무하다”며 서운해한다.
그러다 이내 자책한다.


“역시 내가 별로인가 봐.”


그렇게 마음이 닫히는 순간, 그곳에도 ‘임대문의’가 붙는다.


“이곳은 이제 비어 있습니다. 새로운 임차인을 기다립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임대문의’가 붙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작은 신호를 몰라봤던 순간들, 놓쳐버린 따뜻한 말들, 챙기지 못한 안부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비워지고, 흰 종이 한 장처럼 단출한 흔적만 남는다.
그 앞에서 뒤늦게 중얼거리게 된다.


“미처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바란다.
내가 채우지 못한 그 빈자리를 누군가 더 좋은 사람이 들어와 따뜻하게 채워주기를.

떠나간 마음을 붙잡지는 못하지만, 그곳이 오래 비어 있지 않기를.
누군가 다시 불을 켜고 웃음을 채워 넣기를.

언젠가 우리 마음의 유리창에도 그 글자가 붙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영업 중’ 일 때, 누군가 곁에 있을 때,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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