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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n 16. 2022

평면을 소개합니다

평평한 면은 작품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습니다. 칸딘스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기본 평면이란 작품의 내용을 담는 물질적인 표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평면이라 하지 않고 굳이 기본 평면이라고 경계를 세운 데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근본적인 요소나 구조에 관하여 피력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평면은 평면의 기초, 기본 속성에 관한 것으로 칸딘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B.P.(Basic Plane)로 간단하게 표기하겠습니다. 


칸딘스키는 가장 먼저 B.P.를 도식으로 정리하는데 이는 두 개의 수평선과 수직선이 경계를 세우고 구획화한 것이라는 간단명료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가야 합니다. 경계는 스스로를 구분하겠다는 영역 표시입니다. 이는 독립된 개체로써 자치권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B.P.의 도식은 그의 울림이 어떨지, 그가 어떤 삶을 전개할지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습니다. 수평선과 수직선에서 파급되는 주요 울림이 곧 B.P.의 속성으로 상응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차가운 안정감을 띤 두 요소와 따뜻한 안정감을 띤 두 요소가 만나 상호 이중 울림을 자아내는 구조인 겁니다. 그러므로 수직과 수평에서 오는 각각의 울림은 B.P.의 울림이 얼마나 안정적일지, 객관적일지 관여하고 결정합니다. 만약 이들 중 한 쌍이 상대쌍을 압도하게 되면 균형은 깨지기 마련입니다. B.P.의 폭이나 높이의 정도에 따라 차가움이나 따뜻함에 대한 우열이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B.P.에는 수직과 수평이 조성한 분위기가 있는데 이것은 조형요소에게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B.P.는 조형요소가 의도한 바를 펼치는 환경적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요소가 한층 더 차갑거나 따뜻한 B.P.에 놓인다면 이 환경이 변수로 작용하여 결과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렇듯 B.P.의 상태는 조형요소들에게 첫 관계 대상일 뿐만 아니라 막강한 주도권을 행사합니다. 


물론 이 덕분에 콤포지션은 더 풍부한 가능성을 수확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수평형 B.P.에서 위를 향해 뻗치는 힘이 차츰 강해진다면 긴장도 따라서 극적인 상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B.P.의 수평성이 위로 향하는 힘을 저지하려 나설 것이 뻔하므로 결국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한계를 넘나들며 견제가 강화되면 견딜 수 없는 어색함과 불편한 느낌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또한 필요에 따라 회화 표현에 유용하게 쓰이는 겁니다. 


정사각형은 경계를 이루는 두 쌍의 선이 동일한 힘을 발휘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칸딘스키 식으로 말하면 차고 따뜻한 긴장이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칸딘스키는 가장 객관적인 형태라고 특별히 규정하기도 합니다. 정사각형의 완벽함이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수평선과 두 개의 수직선을 갖고 태어난 B.P.는 모습이 어떻든지 네 개의 변을 지닙니다. 이 네 변은 각각의 따뜻한 안정감과 차가운 안정감부터 그 한계를 넘어선 것까지 자신의 고유한 울림을 전개시킵니다. 그런데 이 네 변은 어쩔 수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경계를 맞대기도 합니다. 따라서 네 변 중에 어느 변이든 자신의 고유한 울림에 제2의 울림이 와닿을 수밖에 없기에 결과적으로 두 울림이 섞여서 하나의 울림으로 표출됩니다. 

  

여기에 언급된 제2의 울림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선의 위치를 가리킵니다. 두 개의 수평선에는 위쪽과 아래쪽, 두 개의 수직선에는 오른편과 왼편이라는 위치 설정이 있습니다. 이 각각의 자리가 서로 다른 울림을 제작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B.P.의 수평선과 수직선은 위치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칸딘스키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위와 아래에 대하여 영구적으로 고정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며 이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볼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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