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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n 20. 2022

위, 아래, 위, 아래

칸딘스키는 모든 생명체는 위와 아래에 대하여 고정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B.P. 역시 살아 있는 본질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인데 모든 조형 요소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본 칸딘스키의 일관된 시각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존재’란 심오한 근원적 문제입니다. 예술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신의 논리가 낯선 것일 수 있다고 칸딘스키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예술가라면 아직 접촉되지 않은 B.P.의 ‘숨소리’를 무의식으로라도 느껴야 하고, 살아 있는 이 본질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B.P.가 어떻게 조형요소를 질서 있게 받아들이는지 알아야 이 유기체를 올바르게 다룰 수 있고, 모든 고유성을 드러내는 생명이 있는 유기체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위’는 넉넉한 유연함, 가벼운 느낌, 해방감으로 마침내 자유를 일깨우는 위치입니다. 이 세 가지 성질은 나름의 색채를 드러내며 함께 어우러진 울림을 조성합니다. 

칸딘스키는 유연함을 조밀함에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는 작은 조각들이 B.P.의 위쪽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분산되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며 설명을 이어나갑니다. 가벼움은 이를 고조시키는데 작은 조각들은 서로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무게까지 줄입니다. 결국 B.P.는 무게를 견디는 하적성도 잃게 되어 모든 형태가 위쪽으로 다가갈수록 더 무거워 보이는 효과를 낳게 됩니다. 이는 무게에 대하여 위쪽에서 한층 더 강한 울림을 거둔다는 의미입니다. 


자유란 움직임에 있어서 제약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움직임에 관하여 칸딘스키는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적인 움직임, 오르기, 내려가기 등과 같은 개념은 물질적인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회화의 것과 다르다고 부연합니다. 그는 회화의 B.P.에서 움직임이란 조형요소의 내적 긴장이 B.P.를 거쳐서 나타나는 변형된 긴장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일러둡니다.

 

아무튼 자유로운 움직임 덕분에 쉽게 긴장을 연출할 수 있고, 상승이든 추락이든 어느 한쪽으로 극대화된 긴장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구속되는 느낌은 최소한으로 줄어듭니다.

 

‘아래’는 위쪽과 완전히 대응하는 것으로 조밀함, 중량감, 구속을 나타냅니다. B.P.의 아래쪽에서는 흩어져 있던 작은 입자들이 서로 달라붙어 교착 상태를 이루며 조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는 경계에 다다를수록 점점 더 심해집니다. 이렇듯 밀집된 분위기는 크고 무거운 형태도 쉽게 떠받쳐지는 느낌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아래쪽에 놓인 형태들은 자신의 중량감이 약해지고, 따라서 무게의 긴장도 상실하지만 상승은 곤란합니다. 여기에서는 위로 향하려는 힘과 추락하려는 힘 모두 자유롭지 않습니다. 움직임의 자유는 계속 제한되고 억제된 분위기도 최고조를 향해 내달리게 됩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위쪽 수평선과 아래쪽 수평선의 고유성을 최고치의 대립적 이중 울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를 강화하면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즉 무거울수록 아래쪽에, 가벼울수록 위쪽에 배치한다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힘이 가중되어 아래위 양쪽으로 향한 긴장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이 고유성들이 균형을 이루면 긴장은 완화됩니다. 물론 서로 상반된 것을 적용하면 되는데, 위쪽에는 무거운 형태를, 아래쪽에는 가벼운 형태를 놓음으로써 균형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 긴장에 방향이 주어져 균형에 이를 수 있는데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면서 상대에 따른 균형이 생긴다는 겁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가능성에 관하여 두 개의 도식을 만들어 보입니다.


첫째는 극적인 과장으로 위와 아래의 비례는 4:8입니다. 

                      위   =  4 (B.P.의 무게:2 + 형태의 무게:2)

                      아래 = 8 (B.P.의 무게:4 + 형태의 무게:4)


둘째는 균형 맞추기로 위와 아래의 비례는 6:6입니다.

                      위    = 6 (B.P.의 무게:2 + 형태의 무게:4)                             

                      아래 = 6 (B.P.의 무게:4 + 형태의 무게:6)


칸딘스키는 이러한 방법으로 회화 요소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자신이 제시한 공식은 대략적인 것이므로 앞으로 더 정확한 수치로 대체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칸딘스키는 한 가지 단서를 남겨둡니다. 그것은 바로 회화에서 무게라는 개념이 물질적인 무게의 개념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중량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힘에 관한 것으로 현재 우리가 논하고 있는 내적인 긴장이라는 게 칸딘스키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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