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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n 27. 2022

Hello, 평면

만약 어떤 물체가 평면에게 다가간다면 물체는 평면의 저항력과 부딪치게 됩니다. 이것은 평면의 일체감에서 파생된 저항력 때문입니다. 평면의 네 변 어디든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이 저항력은 세집니다. 하지만 네 변 모두가 똑같은 힘으로 저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칸딘스키는 저항력의 차이를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굵게 처리된 부분이 더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사각형 네 변의 저항력.


칸딘스키는 이러한 저항력에 긴장을 대입합니다. 저항을 긴장으로 본 겁니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사각형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삐쳐 나간 선으로 표현됩니다. 선을 따라 나타나는 긴장의 흐름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90°의 네 각을 지닌 사각형의 외적인 표현


평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정사각형이 평면 중에서 가장 객관적인 형태라고 한 대목을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칸딘스키는 이 정의를 번복하기로 합니다. 여러 분석 과정에서 객관성 역시 상대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 어찌 보면 개인적인 소견임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회화를 대상으로 절대적인 무언가를 제시한다는 건 칸딘스키에게도 부담이었는지 우리는 절대적인 것에 도달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정사각형이 가장 객관적인 평면의 형태라는 주장도 근거 없는 논리가 돼버린 겁니다. 그렇다면 완전무결한 안정감을 제공하는 형태가 있기는 할까요? 이 물음에 칸딘스키는 홀로 있는 점이라고 대답합니다. 왜 홀로 있어야 하는지 칸딘스키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무아의 경지에 들어간 점으로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칸딘스키는 수평선과 수직선을 차가움과 따뜻함으로 묘사하며 색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소환했습니다. 울림이란 감성의 문제이기에 이런 비유는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평면도 색깔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칸딘스키는 사각형은 확실히 빨강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는데 특히 정사각형은 빨강과 상호 작용하며 직접 참견하는 사이라고 합니다. 빨강은 밖으로도 안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색입니다. 안으로 끓어오르는 색인 겁니다. 정사각형도 이와 마찬가지로 쉽게 자신을 변형시킬 수 없는 틀에 갇혀 있는 형태임을 감안하면 두 요소의 관계를 납득할 수 있습니다. 


평면 형태 중에서 원은 각이 없다는 유별난 특징이 있습니다. 이로써 남달리 색채를 띠지 않는 중립성을 시사합니다. 원의 탄생은 어떤 두 힘이 항상 상호 균형을 유지하며 작용할 때 비로소 성사됩니다. 각이 없다는 것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각이 유발하는 강제성이 아예 없다는 건 단순하다는 것을 말하지만 동시에 복잡함도 점쳐지는 사항입니다. 이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뒤로 미뤄두겠습니다.  


평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말했지만 평면은 조형요소들의 그릇입니다. 칸딘스키는 이 그릇에도 전형이 있다고 합니다. 평면 위에 올려지는 조형요소는 평면이 대면해야 하는 이러저러한 물질입니다. 이 만남으로 관계가 성사되고, 관계는 결과를 좌우하게 됩니다. 즉 서로를 강조하거나 약화시키는 두 가지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두고 칸딘스키는 평면의 전형이라고 한 겁니다.  


평면과 조형요소의 교류가 활발하면 어떤 울림이든 확장될 것이고, 서로의 교류가 느슨하면 평면과 조형요소는 함께 공유할 울림이 없어지게 됩니다. 후자의 상태를 칸딘스키는 평면과 조형요소의 어우러진 음향이 사라진 곳, 어떤 한계가 부여되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칸딘스키는 특히 깊이의 한계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조형 요소가 평면 위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평면 속에 둥둥 떠 있게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칸딘스키의 이러한 견해는 구성 이론과 콤포지션 이론에 속하는 것으로 ‘평면의 소멸’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는 형태 요소들이 다가오거나 뒤로 물러나면 평면은 관찰자 쪽 앞으로 오든지 뒤로 깊게 물러난다는 것에 주목한 겁니다. 마치 아코디언처럼 평면의 양쪽이 서로의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펴진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칸딘스키의 설명은 우리에게 평면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하나의 단편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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