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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n 13. 2022

자연법칙 대 예술법칙

예술가는 자연이라는 자치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면밀히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자연계에서 어떤 요소들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칸딘스키의 말대로 어떤 요소들이 중요하며, 어떤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함께 모여서 각각의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지 등등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아 평범한 내 눈에는 거의 비밀처럼 느껴집니다.  


예술과 자연이라는 두 거대한 법칙은 분명히 독자적인 영역이지만 서로 소통하며 최상의 규칙을 만듭니다. 여기에서 칸딘스키는 자연의 콤포지션 법칙이 예술가에게 외적인 모방 가능성만 탐구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오히려 모방의 해체에서 진리를 찾으라고 충고합니다. 이 제안은 모든 존재의 권리와 의무를 의식하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더 이상 자연 현상의 외적인 껍질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상 예술이 외형의 것만 베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역시 내면의 사정과 모습을 묘사하기에 독자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의 내적인 것을 다른 영역의 외적인 것으로 완전히 이입시킬 수는 없는 법이라는 게 칸딘스키의 지적입니다. 그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추상 예술을 제시하고 있는 겁니다. 


자연계에서 선을 관찰하는 일은 쉽지만,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정이 다릅니다. 좀 더 세심한 시선이 있어야 하고, 나름의 목적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칸딘스키의 눈을 빌려 자연계의 현상을 그와 함께 바라보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이러한 연유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은 그가 자연에서 얻은 생각입니다.  


식물의 씨앗은 뿌리를 내려 아래로 향하고, 싹을 틔워 줄기를 만들며 위로 향한다. 식물의 성장과정이 다름 아닌 점에서 선으로의 이행인 것이다. 식물은 시종일관 전진하려는 목표를 갖고 뻗어 나가 중심에서 벗어나는 선의 구성을 보여준다. 이 흔한 광경은 침엽수나 잎의 조직 등에서 누구나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이 거듭되면 선의 복합체로 발전되어 마침내 독창적인 선의 구성체를 이루어낸다. 


나뭇가지의 유기적인 선의 흐름은 기본 원칙에서 시작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선의 합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전나무나 무화과나무 또는 열대성 덩굴식물의 복잡한 얽힘과 뱀처럼 휘감기는 것 등이다. 여기에 나타난 대부분의 선은 규칙적인 기하학적 유형으로 정확한 수학적 공식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자유로운 성질의 선은 유연한 구성으로 정확한 규칙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확고함이나 정확성까지 결여되어 있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는 나름의 주장을 자신의 방식대로 처리하고 표현할 뿐이다. 


동물의 골격은 최고의 형태를 향하여 상승 발전하고 어떤 단계에 이르면 서로 다른 모습의 구성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미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변형 때문이지만, 실상 놀라운 것은 두꺼비에서 기린, 물고기에서 인간, 쥐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발전의 비약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형에 불과하다는 것, 또 이 무한한 가능성을 배출한 것이 단 하나의 핵심 구조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심 법칙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를 벗어난 것은 무시된다는 말이다. 


척추동물 말단부의 도식. 중심 구조의 종결.


이를 통하여 칸딘스키는 자연법칙과 예술법칙의 차이와 유대 관계를 논합니다. 자연에서는 정해진 법칙이 중요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은 이와 다르게 탈중심으로 나아가는 궤도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술은 모든 것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롭고 모두에게 개방적일 수 있게 됩니다. 


식물이 보여주는 두 부류의 선은 추상 회화에 똑같이 적용되어 기하학적인 구성과 자율적인 방식으로 자연과 예술의 유대 관계를 보여줍니다. 때때로 동일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유사해 보이는 이 관계도 실상은 서로 다르다는 게 칸딘스키의 설명입니다. 알다시피 자연의 원천적인 요소인 세포는 지속적이며 실제적인 움직임 상태입니다. 반면 회화의 원천적인 요소인 점은 어떤 움직임도 없이 정지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과 예술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기본 법칙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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