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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n 06. 2022

결합된 선들의 속마음

선의 혼합에서 가장 단순한 예는 다음 그림처럼 직선이 같은 간격으로 정확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적인 팽창을 가져오지요. 특별한 변화 없이 같은 조건의 행위가 거듭되는 거니까요. 혹 이렇게 같은 것이 거듭된다면 분명 양적 강화에 목적이 있는 겁니다.    


동일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직선


위의 그림에서 아래의 그림처럼 간격의 변화를 주면 양적인 것 외에 질적인 반향이 더해집니다. 이를 칸딘스키는 음악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어요. 인터벌 후에 똑같은 박자가 반복된다든지 또는 피아노(약하게)가 반복되면서 악장에 질적인 변화를 꾀하기도 하는데 직선의 반복도 이와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는 거예요.


간격이 벌어지며 반복되는 직선


이와 같은 직선의 반복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은 다음과 같이 간격에 규칙이 없는 것이겠죠. 보다시피 이러한 결합은 복잡한 리듬을 묘사하여 더 많은 울림을 불러옵니다. 


불규칙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직선


이렇듯 반복은 양적이든 질적이든 어떤 울림을 증가시키거나 복합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그런데 이 모두가 증가되는데도 불구하고 드라마틱한 울림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아래 그림은 두 개의 선이 병행하며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이는 곡선으로 양적인 증가와 질적인 상승이 모두 진행 중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므로 울림도 풍부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곡선의 비단 같은 부드러운 촉감, 평온한 분위기 외에는 극적인 울림을 찾을 수 없어요. 이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곡선이 품고 있는 서정성이 우세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합니다. 극적인 울림을 누를 만큼 강해진 서정성이 모든 것을 평정해버렸다는 거죠. 


서로 동반하는 곡선과 헤어지는 곡선


각진 선에서도 아주 복잡한 콤비네이션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곡선에서는 그보다 더 복잡한 결과를 몰고 올 수 있어요. 그러니 이 두 가지 선이 어우러져 대응하면 각각의 울림이 마구마구 확장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어요. 다음 그림은 그러한 예 중의 하나입니다.  


곡선과 직선이 서로 대치하며 병행하는 선. 울림의 증폭.


아마도 이러한 예를 통하여 칸딘스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요소의 속성과 서로의 관계가 만드는 울림의 상관관계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요소의 속성이 회화 작품으로 완성될 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 변하지 않고 홀로 있을 수 없어요. 다른 무엇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속성을 강화시킬 수도 있고 그와 반대일 수도 있는 겁니다. 앞서 곡선의 예에서 보여준 것은 내적인 성향을 서로 돈독하게 하여 울림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관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이처럼 선의 배합은 독자적인 자치권을 행사하지만 좀 더 큰 복합체에 종속되기도 합니다. 이 복합체 역시 콤포지션의 일부로 한 부분을 담당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는 복합체를 발견할 수 있어요. 회화 작품이 되기까지 작은 단위의 구성이 있는 거고 이것들이 모여서 전체 콤포지션을 이루게 됩니다. 


칸딘스키는 일반적으로 조화롭다는 콤포지션이 실상은 엇비슷한 배합들의 모임이 아니라 최고의 대립으로 치닫는 복합체들의 구성이라고 말합니다. 대립은 부조화의 성질로 불협화음을 일으키지만 오히려 전체 조화에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켜 최고의 어우러짐으로 승화된다는 것이지요. 


칸딘스키가 지적한 선의 또 다른 특징은 시간 요소입니다. 길이는 이미 시간 개념을 보유하고 있다는 논지예요. 손가락으로 직선을 더듬어 따라가는 것과 곡선을 따라가는 것은 그 길이가 같다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서로 다릅니다. 곡선이 동적이면 동적일수록 시간은 더욱더 연장되죠. 그래서 칸딘스키는 아주 다양한 시간 가용 능력이 선에 있다는 거예요. 


칸딘스키에게 시간의 비교는 길이가 같다고 해도 서로 다른 내적인 색채를 불러온다는 의미가 실려 있어요. 또 실제에 있어서 길이가 다르다는 것이 문제 될지 모르지만 그건 심리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게 칸딘스키의 입장이죠. 아무튼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선 모양의 구성에서 시간 요소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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