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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l 26. 2022

변화의 가능성

평면의 질감도 회화 평면의 일환입니다. 이에 대한 칸딘스키의 생각을 평면의 물질성에서 찾아봅니다. 그는 평면의 제작 과정, 제작 방식, 그리고 이에 따른 도구와 재료 등을 거론하며 이들이 표면성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평면의 경계가 울타리라면 질감은 평면의 표피인 겁니다. 질감이란 매끄러움, 거칠음, 딱딱함, 부드러움, 광택 등 감촉을 느낄 수 있는 물질입니다. 평면의 경계에 내재된 긴장이 회화에 영향력을 발휘하듯 질감의 감촉도 나름의 파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칸딘스키는 질감으로 인하여 평면이 고립되는 경우와 조형요소들과 어우러져 평면의 내적 효과를 강조/강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표면의 고유성은 무엇보다도 재료의 고유성과 더불어 이에 따른 취급 방법과 도구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튼 이 모두가 유연한 탄력성을 가지고 조화와 부조화라는 두 흐름에 합류합니다. 


바탕의 질감이 조형요소와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설정은 두 요소 모두 각자의 속성을 동등하게 드러낼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보조하고 지지하는 외형을 갖게 됩니다. 부조화란 대립 상태를 말합니다. 서로 엇나가 불편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러나 대립의 부조화에서 오히려 내적으로 밀도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반전이 있습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두 가지의 방향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궁극적으로 논하고 싶었던 것이 물질적 평면이 아니라 비물질의 평면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물질의 평면을 구상에, 비물질의 평면을 추상에 빗대어 이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유형의 제작물에는 물질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작용도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단단한 요소는 시각적으로 확인되고, 확실한 물체로서 평면 위에 자리합니다. 반면 이와 다른 요소들은 평면을 벗어나 이리저리 떠돌게 됩니다. 조형요소가 바탕과 융화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꼴입니다. 바탕도 조형요소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거나 어우러지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시위하고 있어 바탕은 바탕대로 배경인 듯 아닌 듯하고, 조형요소도 확고한 자리가 정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평면의 비물질화입니다. 


평면의 전환은 현대미술에 긴 파장을 몰고 옵니다. 특히 칸딘스키는 평면의 깊이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측정될 수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합니다. 경우에 따라 깊이를 측정한다 해도 그것은 착각의 소산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평면을 꿰뚫어 보기 위하여 칸딘스키는 훈련된 시각을 요청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시각은 규정된 것 외에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은 예외적인 것에 인색하고 개념이 확대되는 것을 반기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눈은 평면의 물질에 국한되므로 평면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공간을 발견할 재간이 없습니다. 


비물질화된 평면을 관람한다는 건 평면에 고정되어 있는 점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와 평면에서 해방되어 공간에서 헤엄치듯 자유롭게 떠 있는 상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는 일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려면 근거가 필요하고 때때로 법칙도 세워야 합니다. 이론의 역할은 어떤 영역이든 필수적인 것으로 칸딘스키는 특별히 생명에 목적을 둡니다. 그에게 회화의 이론 작업이란 그동안 감춰져 있거나 죽어 있던 것에서 살아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 그렇게 찾아낸 것에서 숨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하는 일, 이 두 가지를 위하여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법칙을 발견하고 확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추상화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칸딘스키의 이론화 과정이 훌륭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 칸딘스키의 이론을 한 마디로 응축한 ‘내적 필연성’은 고유성이라는 내면의 울림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것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방법인 겁니다. 


관찰자의 내적인 입장은 어떤 하나의 방식, 또는 이와 다른 방식, 아니면 양쪽 방식을 다 포괄하여 볼 수 있는 태도가 좌우한다고 칸딘스키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단지 미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상미술 역시 세상을 묘사한 그림이니까 말입니다. 추상화를 보면서 흔히 하는 질문 '뭘 그린 거야?'에 대한 답이 되었길 바랍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영상 또는 형상이 화면에 없다고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추상화가 궁금해'로 시작한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을 일단 마칩니다. 이후에 <예술의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도 살펴볼 계획입니다. 

음악에 음계가 있고 대위법을 비롯한 여러 법칙이 있듯 회화에도 조형언어와 법칙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음에는 조형언어를 그림에 적용해 볼 차례입니다. 추상화 읽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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