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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에는

봄을 좋아하는 마음이 같으면 좋겠어요.

by Mia Park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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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무색하리만큼 차갑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불과 엊그제의 일이건만, 내일부터는 초여름 날씨를 상회한다는 일기예보가 낯설다. ‘응? 내가 만끽하던 다양한 모습의 봄은 어디로 갔는가?‘ 꺾어진 로퍼의 뒤축을 검지손가락으로 비집고 바르게 펴며, 달칵 문을 열고 회사로 나선다.


 오전 6:50분을 지나는 시계는 매일 같은데 내가 보던 광경은 사뭇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네. 검푸른 고요의 밤과 그 밤을 비집고 움트는 동이 불그스름하게 떠오르던 자리엔 제법 긴 거리를 제법 높은 각도가 출근길을 비추며, 해가 길어지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기후변화가 암만 용써봐라 24절기가 지 자리 못 찾나’ 싶어 웃음이 새나온다.  볼에 닿는 공기가 아직 차갑지만, 뭐 꼭 오늘이 아니어도 낮이 길어지고 햇살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내가 세세히 볼 수 없는 들판에는 새싹이 돋고, 벚나무 근처에는 조금 시큰한 밤 사이로 본연의 꽃 색상을 암시하듯 은은한 붉은 기운을 뿜어낸다.  


봄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고 있다.


바람 끝에는 따뜻한 기운이 살짝 묻어난다. 봄이 온다는 설렘이 가슴속에서 피어나지만, 그만큼 불안도 스며든다. 분명 뭔가 잘될 것만 같은데, 혹시라도 기대만큼 되지 않으면 어쩌지. 자연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흔들림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불과 얼마 전 뺨에 닿던 겨울의 바람을 기억한다. 빌딩 사이를 가르며 거세게 몰아치던 칼바람, 퇴근길 얼굴을 따끔하게 때리던 날카로운 공기. 차가운 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어도 소용없을 만큼, 몸을 움츠리게 만들던 바람.


 하지만 오늘 바람의 결과 질이 그 겨울과 다르다. 이곳의 바람은 오늘도 여전하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대신 가볍고 연한 기운으로 볼을 스친다.


아 기대된다~ 이제 곧 어느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햇볕은 부드럽게 나의 피부에 내려앉고,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흩뜨릴 것이고,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가득하고, 눈을 뜨면 나무들이 풍성한 잎을 달고 몸을 흔들 것이다. 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기분 좋은 속삭임 같은 나날이 이어지겠지.


벚꽃이 필 생각을 하면 수줍은 마음과 함께, 설레는 마음이 매년 찾아온다. ‘이 꽃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더랬어요.’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 흩날리는 벚꽃 잎 사이를 나란히 걸으며 웃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그것은 누구를 지칭하기보다 봄이 만물의 생동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피어나는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에는 그만큼의 아쉬움도 피어난다.


혹시 이 유하게 좋고 아름다운 광경을 함께 보지 못한다면? 또는 함께 감상할 이가 없다면? 가을과 겨울.

무미건조하게 인내로 버텨낸 계절 끝에는 오로지 희망과 노력으로 움터낸 꽃망울과 그것이 결국에 자아내는 궁극의 맑고 보드라운 풍경뿐일 것이다.


봄 딸기도 어떠한가. 처음부터 탐스러운 붉은빛을 띠는 것이 아니라 과육이 맺힌 초반엔 작고 푸르스름한 빛깔로 세상에 나와 서서히 물들고, 본인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타이밍에 그 탐스러운 자태를 비로소 뽐낸다.


‘요즘은 하얀 딸기도 나오더라’ 빨간 딸기를 한 입 우물 베어물고 과즙을 머금은 채 생각해본다. 탐스러운 자태와 달큰한 향기~ 봄의 맛.


하늘은 유난히 맑고, 어디서 온 바람이 부드럽게 지나간다. 봄 딸기가 천천히 붉어지듯, 벚나무가 고요속에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듯 우리들도 저마다 설레는 봄의 포인트가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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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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