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아기가 예뻐요.
임신과 출산과 관한 이야기 (14)
소뇌가 작다고 전원된 아기의 성장 마저 더뎌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 10년만에 수 차례의 시험관 임신을 통해 가진 아기에게 뇌의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였을지는 추측만 할 뿐이다.
아기는 잘 버텨주었으며 만삭에 제왕절개수술이 결정되었다. 자궁을 가르고 아기를 꺼낸 몇 초 후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알수 있었다.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로 입실했고 염색체 검사가 시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묘성증후군 (Cri du chat syndrome) 으로 확진되었다.
산모는 산전에 NIPT 검사를 받았었고 다운증후군에 대해서 저위험군이라는 결과를 통보 받고 안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염색체 이상은 다운증후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다양한 염색체 이상이 있고 또한 미세 결실이나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의학적 현실이며 심지어 자연 현상이기도 하다.
Cri du chat 증후군은 5번 염색체의 단완에 부분적인 결실을 보이는 염색체 이상이다. 아기는 머리가 작고 턱도 작은 편이며 출생 후 호흡이 불안정하거나 먹는데 (feeding)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기는 성장 과정에서 학습 장애 또는 발달 이상을 보일 수 있으나 그 정도는 매우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출생 후 아기의 염색체 이상을 알게된 부부는 매우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부분임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기를 만들거나 없애는 사람이 아니고 임신의 과정을 관리하고 안전한 분만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분만 후 한 달째 방문한 외래에서는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고 산모는 아직 정신이 없어보였다.
나도 염색체 군단이 벌이는 부분적 이탈에 대해서, 이 종류의 염색체 이상이 드문 일이었다는 사실과 실제로 아기의 발달 과정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아기가 태어난지 약 10개월이 지난 오늘 그녀가 외래에 아기를 안고 왔다. 수술 후 약간의 하복부 통증에 대한 진료를 받기 위해서 온 그녀의 품에는 천사 같은 아기가 안겨 있었다. 이 아기의 사랑스러운 표정 앞에 5번 염색체는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진료가 끝나고 그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그래도 아기가 너무 예뻐요. 아기를 낳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대개 출생 후 진단된 아기의 이상에 대해서 분만의 조력자에게 투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의 각박한 상황속에서 염색체 이상이 있는 아기를 낳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녀의 말은 오히려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비록 많은 환자들로 너무 피곤했지만)
생명은 그냥 생명 그 자체임을 다시 깨닫는 가슴 벅찬 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