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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온 Feb 21. 2023

바늘구멍 뚫는 것보다 더 어렵다던데.

도전에 성공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습관적인 표현



생일날

첫 편입시험,




2009년 12월 27일, 국민대학교.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첫 편입 시험 날이기도 했다. 1년 2개월을 준비해 온 나의 시간을 처음으로 증명해 보이는 자리였다. 미역국을 먹을 상황도 아니었지만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똑떨어진다는 미신 같은 말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날이었다.



결전의 시간.

시험이 시작이 되고, 시험지가 내 책상 위로 넘어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최대한 침착하게 누른 후 빠르게 시험 문제들을 스캔했다.



'그동안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은 나를 믿고 하자.'



편입 시험을 준비하면서 영어 단어와 영어 문법은 자신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비중이 컸다.



 빠르게 내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문제들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감독관   "시험 끝났습니다."




(울컥)




시험이 끝나고 국민대학교 정문 밖을 빠져나오는데, 뭔가 모를 울컥함에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그때의 그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째는 국민대에서 치른 시험을 만점 맞은 것 같은 확신이 들었고, 둘째는 1년 2개월을 준비한 내 나날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수고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고시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에 뜬 국민대학교 시험지의 채점을 시작했다.



'아악!'



역시나 만점이었다.



나의 편입 시험, 첫 학교, 첫 시험은 만점.

단 1~2명 만을 뽑는 극소수의 그 시험에 첫 합격을 했다.



늘 내가 믿었던 '노력은 결과를 배반하지 않는다'를 몸소 실현했던 날이었다.

그 후로 서울에 소재한 4년제 대학교 5군데의 합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바늘구멍 뚫는 것보다

더 힘들어도, 할 수 있다.




그 당시 편입 시험을 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그거 바늘구멍 뚫는 것보다 더 힘들다던데..'

'굳이 그 힘든 걸 왜 하려고 해?!'



응원은 없었다. 대부분 어려운 길을 가는 내게 던지는 걱정스러운 말들 뿐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연락을 모두 끊었을 정도로 독하게 했다. 그 시간에 영어 단어를 하나라도 더 외우는 데 더 집중했고, 턱없이 부족한 실력을 채워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노력은 합격증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었지만

설령 그때의 내가 합격증을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실패가 아니었다.



편입을 준비하는 내내 한 번은 너무 외롭고, 힘들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편입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합격 못해서 돌아가면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다들 취업하고 있을 때, 나는 휴학한 만큼 더 학교를 다녀야 할 텐데, 지금 수험 생활이 맞는 걸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잠시 휘감았지만 그 중심에는 이 마음이 컸다.



'설령 내가 합격하지 못해도, 영문과에서 영어를 내가 제일 잘하게 될 거야.'

 

'유학 왔다고 생각하자.'


'이 시간이 나한테 나중에 큰 스펙이 되어줄 거야.'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이 과정을 스펙이라고 생각했다.

편입시험은 악명이 높았다.

시험을 떨어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쓸데없이 난이도가 높은 단어와 어휘로 영어 시험 중에서도 레벨이 최상급 정도이다.


내가 만일 시험만을 목적으로 두었다면 불합격 시엔 실패라고 여길 수 있었겠지만

시험 밖에서는 그 누구보다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었다.



누군가 스스로에게 관대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라는 물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살면서 나를 괴롭히며 살면 살았지 내게 관대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늘 틀에 박힌, 너무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우울함도 내겐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내가 합격증을 가져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미친 듯이 영어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해 낼 거라는 자신감이 늘 우선이었다.




비단 편입뿐만이 아니다.

살다가 가끔 실패라고 여겨지는 일들을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사람마다 그걸 '실패'라고 얘기하느냐 아니냐는 기준에 따르다.

다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불행함과 우울했던 날조차도 그저 더 잘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몇몇 사람들은 도전을 응원하기보단 우려스러운 걱정 아닌 걱정을 많이 한다.

이미 경험해 봤다는 말로 조언 아닌 핀잔을 주며,

하고자 하는 대로 잘 안되었을 땐 그것을 '실패'라며 상대를 낮추고, 가십거리로 삼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패의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성공할 징조를 남들보다 더 먼저 경험한 것이라고.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체하고, 실패를 해 본 사람은 빠르게 성장한다는 걸.


그러니

도전에 성공해보지 못한 이들이 내던지는 습관적인 표현에 휩쓸리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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