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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온 Feb 20. 2023

스물한 살, 무작정 노량진 고시원에 올라갔다.

하고자 하면 해야만 했다.


스물한 살,

무작정 노량진으로 올라갔다.




     "아빠, 저 서울에 4년제 대학교 5군데 붙었어요."




2008년 11월,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던 해.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노량진 고시원에 들어갔다.


영어를 정말 좋아해서 대전에 있는 사립대학교의 영어영문과를 입학했지만, 중퇴를 했다. 영어를 좋아해서 입학한 과였지만 영어권의 문화, 영어의 발음을 입의 구조적으로 배우는 수업은 나의 흥미를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내 꿈을 이루려면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는 어린 맘에 든 거창한 생각이 있었다. 나는 스물한 살에 편입을 결심했다.





용돈이

없는 삶.



문제는 돈이었다. 나의 10대에도, 20에도 용돈이란 걸 받아보지 못했다. 때문에 편입을 할 수 있는 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편입을 하고 싶다고 아빠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아빠는 영문과를 졸업해서 교사가 되라는 말만 반복할 뿐 결코 허락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편입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 줄 생각도 없었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종일 밥을 먹지 않고도 가져야만 했고,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그때 당시,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 생활비 조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는데, 대출받은 70만 원 정도의 생활비와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 150만 원 정도가 내 통장에 있었다. 나는 그걸 들고 무작정 서울의 노량진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고시원은 한 달에 30만 원, 편입 학원 비용은 35만 원이었다. 당장은 버틸 수 있었지만 1-2달이 지나면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량진에 도착하자마자 노량진 역에 있는 파스쿠찌에 들어가 하루 4시간씩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3달 정도를 아르바이트를 한 후, 이제는 정말 수험 생활에 집중해야만 했다. 아빠에게 연락을 해 꼭 합격할 테니 학원비 만이라도 보내달라며 사정사정을 했다. 나의 편입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이미 의지가 굳어있는 내게 편입학원을 다닐 돈만 부쳐주었다.



집에서 보내 준 돈과 나의 모아둔 돈을 모아 그렇게 1년 2개월의 짠내 나는 노량진 생활을 버텨나갔다.



1년 2개월 동안의 노량진 스케줄은 이랬다.



- 5시 30분 기상

- 6시: 편입 학원 도착, 자습실 자리 맡기.

- 6시~8시: 자습 및 단어 시험 준비

- 8시~12시: 편입 학원 수업

- 12시~13:30 : 점심 식사

- 13:30~18:00: 편입 수험 공부

- 18:00~18:30: 저녁 식사

- 18:30~2:00: 편입 수험 공부



정말 독했다.


스물한 살의 가장 예쁠 나이에 내가 택한 건 노메이크업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노량진의 청춘들에겐 꾸미는 건 사치였으니까.



 

편입 준비와 동시에 친구들, 지인과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엄마와 통화하는 시간을 빼곤 전화기를 꺼두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본 적이 있는가.

시간을 아껴보겠다며 고추 참치 캔에 밥을 비벼먹고, 돈이 넉넉지 못해 고시원 앞에 있는 떡볶이 집에서 매일 1천 원 치 떡볶이를 포장해 와 책에 눈을 고정시킨 채 배를 채웠다.



그때는 궁상이었고, 지금은 다시 못할 추억이 되었다.



심지어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여의도에 벚꽃을 보러 가면 시험에 뚝! 떨어진다는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진진하게 받아들이곤 그 좋아하는 한강에도 한 번을 걸어가 보지 않았다. 그만큼 간절했고, 합격하겠다고 내뱉은 말에 책임지고 싶었다.


오죽했으면 편입에 합격하고 난 후 거의 1년 동안을 노량진 쪽은 쳐다도 보지 않을 정도였다.




편입을 준비하는 내게,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 보단 굳이 왜 힘든 길을 택하냐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았다.

서울대, 연고대, 고대를 가지 않는 한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덧붙이며.


나의 목표는 서울대, 연고대, 고대를 가는 게 아니라 더 큰 곳에서 나의 꿈을 찾는 것이었다.


회사를 퇴사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갈 곳은 있어?"


"밖에 나가면 세상은 더 냉정해."



어느 누구도 나의 퇴사에 잘 생각했어라는 말 대신 걱정부터 앞세웠다.

20대 초반의 모습도 30대 회사를 벗어 나온 내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하고자 하는 걸 찾고자 나왔고,

마음을 먹었으면 해내야 했고,

도전이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았다.


노력은 결과를 배반하지 않았고,

하나를 버리면 또 다른 걸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인 건

도전의 성공은 '무엇이든 해낼 용기'를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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