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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온 Feb 20. 2023

사랑했던 회사와 어느 날 이별했다.


그때는 빌런이었고,

지금은 땡큐.




2021년이 되던 해, 내 마음이 서서히 동요 치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직무는 BM이라는 직책이다 보니 마케팅 예산을 받고, 그 예산으로 마케팅 전략대로 집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가 이익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면서 급하게 비용을 대폭 축소시키기 시작했다.


일의 활동 영역과 반대로 예산이 사라져 아무런 마케팅 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매출이 오르고 있을 때 적은 예산만이라도 배정받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만들어간 보고서들은 허튼짓에 불과했다. 남들은 그냥 회사가 주는 돈 받으면서 쉬어가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라고들 했지만 내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


마침 새로운 본부장이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인생 최악의 임원이었다.


그때 당시 매출, 이익적인 면에서 우수한 성적이었던 내 담당 품목을 다른 본부의 임원이 더 키워보겠다며 진행하던 일이 있었다. 우리 본부의 의견 없이 일이 진행되었는데, 새로 온 본부장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가 오자마자 둘의 기싸움과 팽팽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그때부터 모든 분노의 화살은 그 품목의 담당자인 나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화살을 수습하려 해 보았지만 본부장실에 불려 가기 시작하면 기본 1-2시간 동안 그는 나를 붙잡고 가스라이팅을 하기 시작했다.


악재는 몰려온다고 하던가.

하필이면 내 담당품목에 문제가 발생했다. 호주에서 들어온 내용물에 이물질이 소비자한테서 발견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그런데 그때, 본부장이 지시한 해결책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호주 본사에 소송을 거는 것과 신문에 대국민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첫째는 꼭 소송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그래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의 마케팅을 높게 사, 매 해마다 호주 본사에서 마케팅 비용을 지원해 주는 관계였다. 차라리 상품을 더 받아 원가율은 낮추고, 보상을 받는 방향이거나 마케팅 비용을 더 요청하는 방법이 좋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둘째는 대국민 사과였다. 불량 제품을 받은 고객에게 사과와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신문에 대국민 사과를 하라니. 회사 이미지와 브랜드를 대놓고 실추시키겠다는 일인 것 같았다. 게다가 내 브랜드가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 줄은 모르겠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을 대놓고 신문에 떠들라니. 게다가 온라인 매출이 월등히 컸던 품목인데, 종이 신문에 왜 대국민 사과를 하라는 말인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할까.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 좋은 걸까.



지금은 안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라면 하라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 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내 성격은 그렇지 못했다.

더군다나 몇 년간을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정말 열심히 키워낸 내 제품, 내 자식 같은 브랜드였다. 나의 자식 같은 제품을 나쁜 방향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생각이 굳건할수록 그의 괴롭힘은 심해졌다. 퇴근 후에도 자료를 요구하는 행위, 한번 불렀다 하면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는 내게 앞 뒤 가리지 않는 모욕적인 말들을 서슴없이 이어나갔다.



그때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아, 때가 됐다. 내가 드디어 회사를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이구나.'


 

그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타 브랜드보다 영업 이익과 매출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내 품목을 없애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자사의 브랜드를 키워야지, 수입 브랜드를 키우다 보면 계약이 해지될 시엔 돈 쓰고 브랜드 홍보한 일만 한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말한 자사 브랜드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동시에 자사 브랜드 론칭 또한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브랜드를 없앤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호주 본사에서는 되려 한국의 마케팅 활동을 모범사례로 삼아 계약을 맺은 전 세계 각국의 회사에 내용을 공유를 할 정도였다. 우리의 브랜딩, 마케팅, 매출적인 성장을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할 뿐만 아니라 계약 기간 해지의 위험성을 쥘 정도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때 당시 회사에서 가장 판매가 잘되는 품목이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나를 BM이라는 직무에서 온라인 영업으로 한마디 상의 없이 옮겨 버렸다.

끝나지 않은 가스라이팅도 덤이었다.



본부장   "온라인 팀에서 본인을 좋아하는 줄 아세요?

           "본인이 온라인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징계 위원회에 가면 정직을 당할 수도 있고, 연봉이 삭감될 수도 있고.."    

            

차마 다 적지 못할 말들을 쏟아붓던 그였다. 그땐 몰랐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직무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늘 관대했던 터라 직무가 바뀌는 건 큰 상관은 없었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보이지 않았던 회사에서의 내 미래가

이 빌런으로 인해 더 보이지 않았다.



나   "퇴사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뱉은 말이었다.

사실 그날 오전, 나는 대표실을 찾아갔다. 대표는 내가 이 회사에 이직할 때 직접 면접을 보고, 나를 뽑아주었던 나의 첫 본부장이었기에 나의 성격, 나의 업무 스타일과 성향을 다 알고 있는 분이었다.


입사 후 내가 처음 요청하는 면담자리라 놀란 눈치였다. 그날 나는 본부장의 괴롭힘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회사 내에서 나의 마케팅 역량을 더 확장시키고 싶다며, 현재 비용 긴축으로 인해 마케팅 활동이 어렵다면 회사에서 투자하려고 준비 중인 마케팅 회사에 나를 파견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대표 또한 파견 갈 직원으로 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추천하려 했으나 내 소속의 본부장이 다른 직원을 추천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대표는 난생처음 면담을 요청한 나의 의지를 눈치챈 듯 약속했다. 나를 그 파견 프로젝트 직원으로 추천하겠다고.



하지만 그 약속을 깬 건 나였다.


그 해 초부터 비용 긴축과 동시에 소극적인 업무에 대해 회의를 느끼다 빌런인 본부장을 만남으로써

이때가 아니면 회사를 퇴사해 볼 기회가 없겠다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충동적으로 보였지만 충분한 고민 끝에 내뱉은 타이밍이었다.



본부장은 내가 퇴사하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내 자리를 빼버리고는 각 팀원들의 자리를 다시 재배치해 버렸다. 끝까지 그는 빌런이었다.



회사가 소란스러워졌다.

나를 아껴준 팀장들과 임원들이 나의 퇴사를 막기 위해 정말 많이 힘을 써주었다. 매일 같이 나와의 면담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로 옮겨주기 위해 다른 부서의 본부장에게 나를 어필해 줄 뿐만 아니라 빌런이었던 본부장에게 나에 대해 수많은 어필을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의 퇴사를 막으려고 앞장서주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너무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미 굳어진 '퇴사에 대한 의지'였다.


누구보다 회사에 모든 애정과 에너지를 쏟던 나였다.

김밥으로 점심을 때워도 좋았고, 주말에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날도 싫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회사에서 쓰는 나의 에너지를 회사 밖에서 온전히 나를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굳혀진 것이었다.

 

무엇이든 밥은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무엇보다 무엇이든 못할 게 없었다.


늘 0부터 시작했던 회사 생활이었으니 회사 밖에서의 0부터의 생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내면의 단단함이었다.



내가 퇴사한 후에도 빌런인 그는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맡았던 품목은 지금은 그 회사의 메인 품목이 되었다는 소식도 말이다.


무엇보다 빌런인 그가 회사에서 잘렸다는 소리를 듣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더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의 그가 밉지 않다. 적어도 이전만큼은.

회사 안에서 그는 내게 '빌런'이었지만

지금은 '땡큐' 그 자체이다.




나의 퇴사 생활은 만족스럽다.

물론 그 과정을 겪는 시간들 또한 어려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오고 나니 회사 안에서의 임무가 아닌 세상에서의 임무를 해결하고 있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나의 회사 생활은 아쉬움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후회되는 게 있다면

'언제나 상대를 너무 이해하려 했던 것'이었다.


나를 헤치는 상대에게 나의 어떠한 모습이 상대에겐 나쁘게 비칠 수 있겠지 라며 이해하려 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며, 상대에 대한 비난 보단 나 또한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를 다치게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대는 나에 대한 이해가 아닌 비난으로 여전히 나를 갉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 유일한 후회는 '나를 돌보지 않은 미안함'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인데, 나를 왜 방치해 두었나.


퇴사 후 대표는 퇴사한 직원들과 친한 직원들과 식사자리를 가끔 만들어 주었는데,

나중에 꼭 회사로 돌아오라는 말에 내가 했던 답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대표님, 제가 다시 회사에 들어간다면 못된 직원이 될 거예요."



그 말은 나의 다짐이기도 했다.


남의 눈치 보단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걸로.

조금은 이기적이더라도

나를 지키면서 살겠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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