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공주라고 불러주던 집주인 할머니는 알고 보니 마녀인 것만 같았다.
그땐 순수하게 반지하 집, 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저렴한 화장대를 사고, 행거를 두고, 도톰한 핑크색 이불을 매트리스 삼아 생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교 동기들이 나를 보고, 딱하게 생각했을 법도 한데, 늘 당당한 내 모습 때문이었는지 공강 시간엔 스스럼없이 반지하 방에 와서 떡볶이를 먹고 가기도 하고, 여자 동기들끼리 단체로 놀러 와 한참 수다를 떨다 하룻밤을 지새우고 가기도 하는 공간이 되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나를 보면 항상 "공주야. 공주 왔어?"라며 늘 내게 살가웠다.
반지하 방이라 방에 습기가 많이 차서 할머니는 매일같이 내 방에 와 장판 밑에 신문지를 갈아주었다. 습해진 신문지를 빼내고, 새 신문지를 깔아 주고 갔었는데,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나를 많이 신경 써주는구나 하고 감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을 관리하기 위했다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서울이라는 타지에 사는 외로운 내게 할머니는 늘 살가웠다. 하루에 한 번씩 내 방에 신문지를 교체하러 내려올 때마다 나누는 대화에는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시 생긴 듯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많은 정을 주인집 할머니에게 주었다.
어느 날 밤, 자신이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불러 주변의 시세보다 너무 낮게 월세를 받고 있다며, 기존 보증금과 월세보다 턱없이 높게 불러 반지하방을 하루아침에 떠나게 만들기 전까지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면서도 서러웠던 어린 나였다. 그 포장마차의 남자 손님이 '후루룩'하며 국수를 먹는 소리에 맞춰 나는 속시원히 울지 못하고, 감추듯 꺼억꺼억 울어댔다.
지금까지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던 할머니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아무런 미안함도, 안타까움도 없었다.
그저 냉정한 손짓과 단호한 눈빛뿐이었다.
계약서 없이 집은 들어가는 게 아니고, 계산 없는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던 스물세 살, 나이였다.
나를 공주라고 불러주던 집주인 할머니는 알고 보니 마녀인 것만 같았다.
반지하 방에서 한참 살던 2010년 추석 즈음, 장마가 심하게 왔다.
그 시기에 장마로 인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가 날 정도였다.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난 후, 내가 사는 곳을 보고 싶다는 엄마와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한테 자취방을 처음 보여주는 날이었다.
딸깍.
열쇠로 문을 열고, 부엌을 지나 방을 들어섰는데, 엄마가 걸음을 멈췄다.
흰색이어야 할 벽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심한 장마 후, 습기가 올라오면서 벽에 초록색 곰팡이가 마치 실타래처럼 벽에 따닥따닥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엄마는 말을 잃었고, 마음이 먹먹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가 수건을 가져오더니 벽에 실타래처럼 뭉쳐있는 초록색 곰팡이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말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그 곰팡이들을 닦아 내면서 참고 있는 눈물도 닦아 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엄마는 얼마나 자신을 원망했을까.
딸을 그런 집에 두고,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얼마나 탓했을까.
서울에 두고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는 얼마나 더 많이 울었을까.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지금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의 그랬을 감정과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늘 욕심이 많고, 하고자 하는 게 많은 딸이었지만
내가 열심히 살고자 했던 이유는 엄마라는 존재도 컸다.
비록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며 살지 못했지만
자식만큼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그리 원망스럽지 않았다. 되려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공간은 소중함과 설렘도 분명 있었지만
공간에 대한 정리, 사람에 대한 아픔을 처음 경험해 본 공간이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받은 큰 상처의 경험은 다시는 그곳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되어주었다.
내리막 길을 내려가려 할 때마다 나를 다시 올려주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과거는 나를 단단하게도 해주지만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결론적 나는.
그때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