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치가 돈인가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보는 게 있다.
"퇴사한 거 후회 안 해?"
나의 대답은 이랬다.
[초반] "응, 너무 좋아."
[중반] "좋긴 한데, 사람이 그리워." (관계에 대한 소중함)
[현재] "후회돼. 하루라도 더 빨리 퇴사해 볼 걸."
퇴사를 하자마자 모든 스트레스가 신기하리만큼 사라졌다. 좀처럼 쉬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남들처럼 퇴사 후 세계여행을 하는 일, 장기 여행을 떠나본 적은 없다.
그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바로 시작해 보았다.
유튜브를 찍는 일, 영상 편집을 배우는 일,
그리고 정말 하고 싶어 했던 쇼호스트를 프리랜서로 시작했던 일.
쇼호스트가 꿈이었던 걸 알았던 지인이 내가 퇴사를 하자마자 모바일 방송을 해보지 않겠냐며 내게 연락이 왔다. 그 길로 프리랜서 쇼호스트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내가 진행하는 방송이 이전 방송보다 2배 이상 오르면서 타 카테고리의 MD들과 업체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쇼호스트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었지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스튜디오에 가면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직함을 부르며 협업을 했다. 프리랜서가 된 나는 소속감 없이 방송만 하고, 스튜디오를 떠나는 존재가 되었는데, 소속감이 없다는 게 어떠한 외로움인지 많이 느끼게 한 순간들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나는 생각보다 사람에 대한 관계가 참 중요한 사람이구나.'
내가 그동안 부딪혔던 직원들과 업체들,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잠시 그리운 순간이었다.
그 외로움을 지금은 다 이겨냈지만 1인 사장으로 내가 일을 하면서도 많이 어려운 부분이었다.
프리랜서 쇼호스트를 하는 동시에 1인 사업을 시작했다. Grip(그립)이라는 사이트에 입점을 신청했다. Grip(그립) 사이트의 특징은 소상공인, 일반인 사장들이 모바일 라이브 방송으로 판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옷가게를 하거나 식품 가게, 신발 가게를 운영하던 오프라인의 사장들이 채널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온라인 방송으로 판매를 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영어 이름을 채널명으로 짓고, 동대문에서 의류를 사입해 와 라이브 방송으로 판매를 했다.
첫 방송은 잊을 수가 없다. 많이 떨렸다. 집에 방 하나를 방송하는 공간으로 바꾸어 방송을 했다. 내 방송에 고객들이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채팅방은 침묵 속이었다.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내 방송에 들어와 준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서 신나게 떠들었다.
차별화를 시키고 싶었고, 사고 싶은 채널이 되고 싶었다.
진심으로 좋은 게 아니면 설명을 하는 내 얼굴엔 티가 난다. 때문에 내 까다로운 성격을 장점으로 살렸다. 동대문 도매 중에서도 퀄리티가 좋고, 단가가 높더라도 소재가 좋은 것들로만 사입을 해왔다. 낮시장과 밤시장을 매일같이 다니며 사입해 오고, 프리랜서 쇼호스트의 경험을 내 개인 방송에서도 살렸다. 좋은 발성과 발음, 전문성 있는 채널처럼 보일 수 있도록 털털한 내 성격을 가감 없이 보이는 방송을 진행했다.
첫 방송에 7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입됐다. 결과는 기대 훨씬 이상이었다. 첫 방송의 매출이 60만 원 후반을 넘었다. 1개만 팔려도 좋겠다는 바람이 10개가 넘게 팔린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에너지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하루 3~4시간씩 잠을 자가며, 밤 12시부터 새벽 4~5시까지 도매 시장을 돌았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이었다. 신상을 서칭 하고, 1시간이 걸리는 동대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가 픽업을 하고, 불량을 직접 교환하고, 하나하나 검수와 포장을 꼼꼼하게 진행했다.
그런 모습들을 고객들은 좋아해 주었다. 열정 있는 내 모습을. 매 방송을 거듭할수록 단골 고객과 나를 응원해 주는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시작한 지 2개월 차에 Grip에서 매출퀸으로 내 채널이 선정되어 3개월 차에는 Grip본사에 가서 프로그램에 출연을 요청받았다. 내 채널을 홍보할 수 있는 Grip 내 대형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당시 나와 같이 출연한 타 채널 사장들의 경력이 2년이 조금 넘은 걸 감안하면 너무 짧은 시간 내에 큰 성과를 이뤄낸 일이었다.
심지어 한 번은 시댁 식구들과 단체로 열흘간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나의 첫 유럽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동하는 시간 내내 일을 멈추지 않았다. 파리의 바깥 풍경보다 노트북을 들여다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 또한 노력은 결과를 배반하지 않았다.
Grip 내에서 진행한 '패션쇼츠'라는 행사에서 3달 연속 4관왕이라는 결과를 달성해 일주일간 나의 채널이 그립의 매인 배너에 소개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무서운 건
내가 가장 잘되고 있는 시기에 내가 행. 복. 하. 지. 가. 않. 았. 다.
희한한 일이었다. 돈을 잘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바빠서 돈을 쓸 여유도 없었다. 사업과 프리랜서 쇼호스트 일을 병행해 가면서 쉴 틈은 없었지만 이보다 더 힘든 일도 해본 적이 있는 나기에 번아웃이 온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바쁜 만큼 내 성격은 많이 예민해지고 짜증과 기분 변화 또한 심해지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거리곤 했다. 별 거 아닌 거에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눈물을 쏟곤 했다. 한 번은 라이브 방송을 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 방송을 본 어떤 고객이 채팅창으로 왜 우느냐고 물었지만 눈물을 꾹 참고 울지 않았다며 방송을 꿋꿋이 이어나갈 정도였다.
위험한 신호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온 우울감인지라 약해빠진 소리라며,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잠시 멈출 필요는 분명 있어 보였다.
한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내 채널의 고객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못한 채 방송을 잠시 멈춰야 했다.
원래 힘든 얘기도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우울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도, 그 우울감을 전파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우울함을 빨리 벗어던져야만 했다.
그때부터 한 달 동안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독서와 수많은 강의를 연속으로 듣기 시작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오는 번아웃인 줄 알고,
다른 일로 돈을 벌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돈 버는 강의란 강의는 모두 들었다.
스마트 스토어로 돈 버는 법, 해외 직구 대행으로 돈 버는 법, 블로그로 돈 버는 법 등.
그러나 결론적으로 일을 바꾼다고 해서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나는 내 인생의 방향성이 없다는 것을.
목적 없이 가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걸.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우선시하는 가치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걸.
단순히 돈이 인생의 가치였다면 빠르게 돈을 벌고 있는 모습에 만족하기 바빴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