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대로
'이제 또 뭘 해볼까?'
라고 호기롭게 생각은 했으나, 사실 뚜렷하게 하고 싶고 해야 할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유통 쪽에 일을 좀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물건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창고를 관리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건 어느 업종이나 다 해당되는 일이니까. 창고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쿠0 물류창고 알바도 생각했는데, 너무 큰 회사라 내가 하는 거라곤 짐 옮기기 밖에 없을 것 같아서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에서 여성속옷을 이커머스로 판매하는 창고에서 물류팀을 구하는 공고를 봤다. 입사지원을 하고 다음날 면접을 봤는데 바로 출근하라고 해서 속전속결로 바로 일하게 되었다. 물류팀으로 하는 일은 주가 택배를 포장하는 일이었고, 송장 번호에 맞게 제품을 찾아서 챙기는 것, 물건이 오면 창고에 자리를 만들어 적재하는 일 등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좋았다. 오전 10시 30분부터 4시 40분까지 일이 많으면 1~2시간 정도 더 한다고 했다. 하루에 6~7시간을 일하는 아르바이트라 월급도 넉넉하게 받았고, 법적공휴일이나 주말에는 휴무였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나와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6명이었고, 직원이 무려 8명이나 되는 꽤 큰 회사였다. 게다가 본사개념으로 사무실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정도 되는 회사에 물류창고에서 일하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아르바이트는 내 또래의 젊은 엄마들이 주로 일하고 있었다. 나를 빼고는 전부 기혼자였고 애기들도 어린 듯했다. 같은 공통분모에 다른 사람들은 수다삼매경에 빠질 때도 있었으나 나는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거기서 하는 일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일단 해당 송장을 받으면 물건을 챙기는 일을 했다. 최소 500평 이상되는 창고에 선반들이 차례로 있었고 각 번호마다 해당 제품들이 채워져 있었다. 나는 처음에 여성용 팬티를 챙기게 되었다. 선배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 금방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송장의 총개수가 적힌 종이를 보면서 종류별로 사이즈별로 넣었다. 바구니는 지정된 엄청 넓은 테이블로 옮겨졌다. 그 테이블에는 갖가지 속옷이나 내의 등이 있었다.
제품을 포장할 때는 송장을 보고 해당 송장에 적힌 종류대로 포장을 하는데, 초보에게는 단품송장(다른 품목이 섞이지 않은 한 가지 품목으로만 있는 송장)만 추려서 주기 때문에 다시 빈 바구니를 들고, 송장에 적힌 순서대로 큰 테이블에 가서 물건을 챙긴다. 들고 와서 차례로 더블체크를 하면서 opp비닐에 접어서 한번 넣고, 다음에 택배 봉투에 담아 잘 닫아주고, 송장을 붙여서 자루나 큰 박스에 넣는다.
처음에는 큰 창고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선배들에게 묻거나 직접 찾는데도 오래 결렸다. 머릿속에 저 큰 창고의 자리가 다 있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나도 1~2달 일하다 보니 점점 자리에 익숙해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창고나 시스템이 익숙해졌다. 창고는 이렇게 관리하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일이 별로 없어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적이 있었다. 투잡으로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다른 물류창고에 가서 하루 일을 했는데, 내가 처음일한 곳이 시스템이 정말 잘 돼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4~5개월을 일하며 물류창고의 위치나 제품라인을 알게 되었다. 포장속도도 빨라졌고, 새로운 신입 아르바이트생을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되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두터운 내복이나 수면바지 등을 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거기 계시는 과장님께서 직원을 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일단 근무조건을 물어보니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것을 완전히 업으로 하기에는 뭐랄까. 아르바이트가 하는 일과는 다름이 없어 보였다. 조금 더 업무가 과중된 정도? 더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사무실에서 하는 홈페이지 관리라던지,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 그런 게 더 배우고 싶었으나, 나에게 제안한 자리는 물류팀 자리였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아르바이트로 계속 일하겠다고 했다. 그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다시 제품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일반 제과점에서 다시 일할 생각은 들지 않았고, 조금 더 큰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일했던 커피 회사 같은 곳에서 일하면 새로운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구직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일반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다시 취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준을 정하고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1. 쉬는 날이 1주일에 2일 이상일 것.
2. 직전 회사보다 동일 근무조건 기준 연봉 높을 것.
3.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와 비슷할 것.
4. 당장에 복지는 안 좋아도 성장가능성이 있는 회사.
5. 기존에 업무도 진행하면서 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인지.
아무 곳에나 취업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곳에서 가능하면 시간을 들여 내 역량을 펼치고 성장하고 싶었다. 내 기준이 너무 높았던 건지 2, 3, 4번에서 많이 배제됐다. 약 30군데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이렇다 할 이점이 있는 회사는 없었다. 많이 지쳤고, 또 실망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있던 어느 날 기장에 있는 한 카페에서 면접을 보러 갔다. 집과 가까워서 좋았으나, 회사도 아니고, 일반 해안가에 있는 카페였다. 나를 맞이한 건 어려 보이는 남자직원이었다. 대화를 나눠보니 지금 하고 있는 제과 라인업을 전부 빼고, 빵을 만들고 싶어서 개발을 할 수 있는 책임자를 구한다고 했다. 그 카페는 1,2,3번 전부 해당이 되지 않았지만, 5번에 해당하는 그 말에 구미가 당겼다. 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잘 진행된다면 4번인 성장가능성도 충분히 노려볼만했다. 그리고 곧 그곳의 대표님과 2차 면접을 진행했다.
대표님과 면접을 진행했고 나에게 물으셨다.
'베이글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