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1] 이혼하러 갑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by 나저씨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대문 앞에 등기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내가 집에 없어서, 등기를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간것이다. 나에게 등기가 올 일이 없어서 의아해하면서, 등기 안내 쪽지를 문에서 떼어서 등기를 보낸 곳을 확인해 봤다. "00 지방법원"에서 온 것이다. 그제야 무슨 등기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바로, 이혼을 위한 법정 조정일이 정해졌다는 통보 안내가 온 것이었다. 다음날 휴가를 내고, 등기가 올 시간에 기다려서 서류를 받아서, 안의 내용을 읽어보니, 역시 이혼 조정일 X.XX일, 00시라는 일시가 적힌 안내문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매우 사무적이었고, 그걸 받아본 나도 처음엔 큰 감흥이 없었다.




이미 작년에 합의이혼을 하려다 내가 마지막에 거부한 이력이 있는 우리 부부는 현재 부부로서의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아내는 머나먼 이국 땅으로 혼자 떠나버렸으니, 우리 사이에서 "재결합"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그래도, 혼자 국내에 남은 나로서는 어떻게든 아내와 연락을 하여,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아내는 나의 연락처 모두를 차단하고 잠수를 타 버렸다. 관계를 끝내는 데 있어 가장 최악이자 비겁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난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헛된 꿈이란 걸 받아들였고, 아내와 이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여느 부부와 달리 서로 살고 있는 곳이 다른(한 명은 한국, 한 명은 해외) 우리 둘은 통상적인 합의 이혼이 불가능했다. 물론 배우자 한 명이 해외에 있어도 합의 이혼을 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절차대로 이혼 수속을 하는 것은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법원에서도 접수를 받아주려 하질 않았다. 그래서, 변호사를 고용하여 조정이혼의 형태로 이혼을 진행하기로 서로 합의한 게 약 두 달 전의 이야기다.




변호사를 고용하고, 아내가 그 변호사에게 이혼에 대한 모든 절차를 위임하면 난 위임받은 변호사와 이혼 수속에 대한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변호사를 고용하여 조정이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면, 법원을 통한 조정이혼의 장점은 숙려기간이 없다는 것이다. 합의이혼의 경우, 이혼신청서를 제출하면, 자녀가 있으면 3개월, 자녀가 없으면 1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쳐서 2차에 확정 이혼을 한다. 하지만, 조정이혼은 이러한 숙려기간 없이 바로 이혼이 결정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가 티브이에서 보는 연예인들 중에도 조정이혼을 통해 이혼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기에, 그리 생소한 이혼 방법은 아니다.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조정이혼의 경우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서 진행하는 이혼이기에 행정적으로 많은 문서를 챙겨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재산 분할, 양육권 등에 대해 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정이혼은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비되고, 감정싸움도 많다. 물론, 그 외의 단점으로는 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 선임비 등의 비용이 든다는 단점도 있지만, 지금 우리 부부의 이혼을 가장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정이혼보다 나은 선택지가 없기에 우리는 조정을 통한 이혼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진행한 조정이혼의 절차를 간략히 적어보면, 상대측에서 이혼에 대한 요청을 법원에 제출하면, 나는 상대방의 이혼 요구서 및 조건 등이 적힌 문서를 법원에서 등기로 받아보게 된다. 그리고, 해당 내용에 대한 내 의견을 작성하여, 등기로 법원에 회신을 보내면, 법원에서 최종 기일을 정해서 통보하는 것이었다. 이미 난 지난달에 아내의 이혼 요구서 및 조건 등을 수신/확인하였고, 나의 의견을 정리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내 의견을 정리하여 법원에 제출한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도, 별다른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던 차에, 법원에서 최종기일이 안내된 서류를 받은 것이다.




이젠 정말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이혼에 대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일 년 전에 이혼했다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난 이혼을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니, 난 이혼하고 싶지 않다. 이혼을 하면,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미 주위의 친구들은 아이까지 낳아서 살고 있는데, 난 그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데 있어,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이 날 너무 괴롭히고 있다. 밖에 나가서 길을 걷다가, 주위에 보이는 가족과 연인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결혼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느껴진다. 솔직히, 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과 비례하여, 나의 불행이 커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더 밖에 나가는 걸 꺼려하게 되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폐인과 같은 생활을 일 년 가까이한 것 같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계속 내가 잘못해서 이혼을 하게 된 것이라 자책하며 살았던 것이다. 지금도 거리를 걷다 보면, 갑자기 단전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나도 모르는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 바로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어디든지 앉아서 안정을 취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나 진짜 이 이혼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