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 이혼하러 갑니다

내가 이혼을 준비한 방법 - 1번째 이야기

by 나저씨
난 오빠에게 기회를 줬는데, 오빠가 거부했잖아.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 오빠가 알아서 해


아내와의 이혼을 준비하면서, 내가 들었던 여러 가지 말 중에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아내와 이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혼을 하기로 했다. "합의이혼"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그렇게 지방법원에 가서 1차 합의이혼을 신청했다. 법원에서는 절차에 따라 우리 이혼 신청서를 접수하고, 한 달의 숙려기간을 줬다. 아이가 없으니 한 달이었지만, 아마 아이가 있었으면 3달의 숙려기간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달간의 숙려기간 동안, 난 우리의 결혼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바뀐 것이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 합의이혼을 신청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숙려기간 이후, 2번째 이혼 확정을 하는 기일 며칠 전에 아내에게 연락했다. "난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내는 어이없어했다. 아내는 이미 우리 이혼 확정일에 맞춰, 외국에 나갈 생각으로 항공권을 예매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에게 지금 와서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지만, 난 아내에게 법정에 출두하지 않을 터이니, 법원에서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들어본 바로는, 내가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법원에서 기다리게 만들었다면서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을 나중에 들었다) 결국 우리는 이혼을 하지 않았고, 아내는 그렇게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외국으로 출국했다. 물론 현장에 가서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노력이라도 하지 왜 그냥 놔뒀냐고 할 수 도 있지만, 2차 확정 기일을 기다리던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녀의 인생에 더 이상 나라는 존재는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법원에 가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사정을 한다 변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외국에 가버린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봤다. 이메일도 보내고, 메신저도 보냈다. 하지만 결국에 비참해지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나만 웃긴 사람이 되어 갔고, 내 인생은 그렇게 조금씩 피폐해져 갔다. 사실 한국에도 있지 않고, 외국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애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마음이 이미 정해진 사람이라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아내는 이혼을 하려는 마음이 확고했고, 나중엔 자신에게 이혼 건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면, 자신에게 연락도 하지 말라며 나의 모든 연락을 수신 차단해 버렸다. 너무 다급해서, 아내의 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 이야기도 해봤다. 하지만, 그 부모도 나에게 이혼하라고 종용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러게, 이혼해준다고 할 때, 이혼하지 왜 안 했어? 그때 했으면, 된 거 아니야? 이혼을 안 해줘서, 지금 이 사단이 난 건 다 네 잘못이라 생각하네. 나이 더 늦기 전에 어서 이혼하게나. 지금이라도 이혼하면, 아직 젊어서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고, 팔은 안으로 굽었다. 결혼 후에, 내가 얼마나 아내의 부모에게 열심을 다 했던지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내의 대학원 공부를 지원하고, 아이도 낳지 않고 기다려 주고, 모든 가정 대소사에 꿋꿋이 혼자 참석했던 이 모든 일이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아무 의미가 없는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딸이 어떤 행동을 하던지 딸의 편을 들어주는 부모를 보고 있자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부부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나의 마지막 끈마저도 끊어져 버리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렸다.




아내와 그 아내를 매우 사랑하는 아내의 부모로 부터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난 이혼 준비를 혼자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부부 중에 한 사람이 해외에 있어도 합의이혼이 가능하다는 글을 읽고, 다시 협의이혼을 준비했다. 서류를 준비하고, 아버지 제사일에 맞춰서, 고향에 내려가서 지방법원에 갔다. 그리고, 이혼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접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봤는데 부부 중 한 명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으면, 한 명이 이혼 신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왜 안되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답은 "접수 불가"였다. 화가 났지만, 계속 싸워서 나에게 이득이 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화를 참으면서 법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서울에 올라와서 이혼 전문 변호사의 사무실에 방문하여 문의를 했다. 변호사 또한 나와 같은 상황에서 이혼을 신청하는 케이스는 내가 인터넷에서 준비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고, 더 복잡한 절차임을 알려줬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했지만, 역시 아내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또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구나. 제대로 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말이야. 이러니 내가 어떻게 오빠를 믿냐. 난 이미 오빠에게 이혼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줬고, 앞으로 이혼 준비는 오빠가 알아서 해. 난 이혼 때문에 한국에 갈 생각도 없어. 이게 다 오빠 잘못인 거니까...



너무 황당했다. 아니, 이혼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려고 이혼을 거부한 것이 내 잘못이라고? 전형적인 가스 라이팅이라 생각했다. 왜냐고? 아내가 이 말을 할 때, 순간적으로 진짜 내가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나 자신을 자책했기 때문이다.




분했다. 이혼을 당하는 입장에서 이혼 수속까지도 나 혼자 준비해야 할 현실이 너무 화가 나고 분했다. 아내와 그 부모들은 자신들이 준 기회를 차 버린 내가 잘못인 거니까, 이혼 준비는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그 말은 정말 지금도 생각만 하면 화가 나서 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가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외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변호사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합의이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물어봤다. 변호사는 조금 고민을 하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아마 선생님이 선호하시는 방법은 아니실 거예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방법이에요. 들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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