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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8] 곰씨의 관찰일기

전처가 한국에 왔다

by 나저씨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당연히 모르는 번호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10여 분 후에 같은 번호로 전화가 다시 왔다. 같은 번호로 2번이나 전화가 오는 건, 중요하거나 시급한 연락일 수도 있다 생각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oo님 계시나요?”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전처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라구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물어봤다. 연락을 한 사람은, 내 질문의 의도가 ”연락한 목적“을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당연히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는 xx병원인데요, 중요한 안내를 빠뜨리고 말씀 안 드려서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 전화드린 거예요. “ 난 병원 이름을 듣는 순간, 내가 이름을 잘 못 들은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병원은 전처가 자주 가던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안내만 가지고, 왜 전화를 했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추가로 질문을 했다. “그 사람이 언제 병원에 간 거예요?” 간호사는 전처가 약 30여분 전에 치료를 받고 갔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제야, 난 이 연락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 생각됐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제 그 사람은 저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나의 대답을 들은 간호사는 당황해서, 잘 알았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전처가 한국에 들어온 걸 알았다. 아마 잠깐 한국에 방문한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전처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생각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내 속만 뒤집어질 뿐이기 때문이니... 재미있는 사실은 전화를 끊고 나서, 전처의 얼굴을 떠올려봤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얼굴이 기억이 나긴 하지만, 선명하게 기억난다기보다, 무언가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얼굴이 기억이 날 뿐이었다. 그리고, 전처를 생각할 때, 예전의 아픔과 죄책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날 그렇게 괴롭혔던 기억인데, 이렇게 쉽게 잊히는 것이 정말 허탈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난 무엇 때문에 후회하고 가슴 아파했던 건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결혼해서 평생을 같이 하려 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얼굴이 잊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마,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상대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사람 얼굴이 잊힐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다. 조금 있으면, 이혼한 지 일 년이 된다. 처음엔 이혼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나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주위에서 “넌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난 그 이야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양보하고, 사랑하고 희생해야 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채찍질했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전처와 이혼한 것이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난 괴로워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혼 후, 시간이 지나서 전처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니, 상대가 얼마나 철없고 어린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전처에게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돌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힘들면, 주위 사람들은 자기를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 생각했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면 항상 불행했고, 불행의 원인은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았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 것이며, 만약 자신의 주위에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상대를 완벽하게 자신이 맘에 들게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자신은 상대를 바꾸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상대가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편리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전 처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편에서 묵직한 응어리가 느껴지고, 명치가 아파온다. 아마, 이 응어리가 풀리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된다. 나는 예수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성인이 아니라서, 상대의 행복을 바라지 못한다. 다만, 그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전처의 이름이나 생각을 해도,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망원, 합정 넌덕 (아이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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