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거리 두고 한 일 2(책방)

책, 좋아합니다.

by 다해


책,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해서 꼭 많이 읽으라는 법은 없다. 책을 곁에 두고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실천이 어려웠다. 어쩌면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점, 도서관, 북카페. 책이 있는 공간에서만 느껴지는 적당한 무게감 있는 공기, 사락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 아마 이런 것들을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막연히, 아주 먼 미래에 책방을 열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취향인 책들로 잔뜩 나열된 책꽂이를 마련해 두고, 카페 음료도 같이 파는 거다. 사람들은 책방에 와서 책을 사고, 음료를 마시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나는 적당히 일도 하고, 여유도 즐기는 거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나의 취향인 책들로 잔뜩 나열된 책꽂이’

취향인 책으로 책꽂이를 하나 가득 채울 수 있나? 이게 말이 되나? 책을 얼마나 읽으면 책꽂이 하나를 다 채우지? 게다가 책꽂이 하나만 사용할 것도 아니고, 가게를 할 거면 책꽂이를 몇 개는 써야 할 텐데. 거기를 다 채울 정도의 책이라면 몇 백 권은 족히 될 텐데. 내가 다 읽을 수 있는 양인 걸까. 그렇다고 읽지 않은 책을 끼워두고 싶지는 않았다. 상상 속 나의 책방은 내가 읽은 책들, 내가 잘 알고 있는 책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으니까. 어떤 손님이 와서 책꽂이에 꽂힌 어떤 책을 가지고 와서 말을 걸어도 내가 답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기타 여러 여건을 제쳐두고서 그냥 단순히 ‘책‘만 생각했을 때에도 벌써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접근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책방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정부의 청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로를 희망하는 분야에서 일을 해볼 수 있는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심 있는 산업분야를 알아가고, 관련 일을 해보며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덕분에 관심분야 중 하나였던 책방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일하게 된 책방은 상상했던 공간이 아니었다. 상상 속 책방의 이미지는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리고 쌓인 책 속에서 주인이 쏙 하고 등장할 것 같은, 정말 책으로 가득 찬 방을 생각했었다. 상상 속 장소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책방은 매우 깨끗하고 단정한 곳이었다. 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배열이 가지런했고, 규칙을 가지고 분류도 되어있었다. 카페의 벽면에 책들이 보기 좋게 꽂혀있었다. 아늑하고, 깔끔하고 예쁜 공간이었다. 딱 하나 상상 속 공간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큰 길가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골목으로 들어와서 길을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골목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너무 튀지도, 너무 묻히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로 골목 한편에서 위풍당당 자리하고 있었다.

책방이 동네와 잘 어울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대표님이 동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는 분이었다. 위쪽에는 어떤 카페가 있는지, 아래쪽에는 또 어떤 가게가 있는지 다른 가게 대표님과도 알고 계셨다. 동네가 어떤 것으로 유명하고 또 어떤 것을 지켜나가고 있는지, 동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책방을 방문한 첫날, 동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한 바퀴를 둘러볼 것을 권해주셨다.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보니 온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동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동네도 좋고, 책방도 좋고, 대표님도 좋고, 매니저님도 좋았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아쉬웠다. 손님이 안 왔다. 정겨운 동네 분위기, 깔끔한 건물, 다양한 종류의 책,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은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책방을 올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손님이 안 왔다. 그래서 손님이 책방에 오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사람은 어느 책방에 갈까? 막연히 책방을 하고 싶다 상상만 했을 뿐 가본 적은 없었다. 지도 앱으로 책방을 검색했다. 리뷰가 많이 있는 책방, 지도에 나오지 않는 책방 등 다양한 책방이 있었다. 특히 인기가 많은 책방은 유명인이 운영하는 책방이었다. 주인이 이미 많이 알려진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 운영한다는 이야기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책방에 주기적으로 작가가 방문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어떤 작가가 언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책방에 방문할 것인지를 인스타로 공지하면 독자와 작가 간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작가가 작업실 겸 간단한 사업을 위해 운영 중인 책방도 있었다. 저마다 특색 있는 책방을 구경하는 것은 온라인으로도 즐거웠다.

이곳저곳 책방을 찾아보다가 책방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벤트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북토크다. 작가가 신간을 내었을 때, 북토크를 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인 동시에, 독자와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메리트가 있었다. 북토크에 참여하면 책에 대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점은 질문하고, 작품의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책방에서는 북토크에 온 독자에게 책을 제공하고, 공간을 제공하고, 음료를 제공할 수도 있었다. 독자는 깜빡할 일 없이 북토크에 참여해 책에 사인을 받고, 자리를 편히 즐길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책 포장이다. 요즘 책을 어디서 사냐는 말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뉠 것 같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이다. 인터넷 서점은 온라인 유통이기 때문에 저렴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온라인으로 10% 할인받아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형서점이다. 온갖 책이 모두 모여있는 곳, 한 분야에 대한 것도 몇십 개의 책장에 가득 꽂힌 책들이 반겨주는 곳이다. 다양한 책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 두어 이것저것 살펴보기가 좋다. 가격과 다양성 측면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좋은 수단 중 하나는 포장이다.

일반적으로 책을 사면 서점에서는 도장을 찍어준다. 어떤 서점에서 샀는지 알 수 있도록 표기를 한다. 이게 다다. 내가 골라서 그냥 산 게 다다. 온라인에서 책을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배송과정에서 책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안전부재료로 감싼 채로 책이 배달된다. 그냥 말 그대로 책을 산 것이다. 하지만 그냥 단순히 책을 산 것이 아니라 포장이 된 책을 사는 것은 기분이 다르다. ‘포장’이 그것을 특별하게 만든다. 내용물을 알고 있더라도 포장을 뜯는 과정에서 ‘선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단순히 책을 산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한 선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의 차이로 가격과 다양성의 부족한 측면을 보완할 수 있었다.

일하고 있는 책방에서는 꾸준히 북토크를 하고 있었다. 북토크 일정이 다가오면 인스타와 블로그로 북토크 내용을 홍보했고, 책방은 작가와 관련된 책으로 꾸며졌다. 북토크 당일, 책방에는 많은 손님이 방문했다. 카페음료를 제공했고, 책을 구입했다. 북토크 관련 안내를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북토크를 보조했다. 정신없었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 좋았다. 포장이벤트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제공한 책을 바로 북토크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본래 사업이라는 것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적당한 유입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매출을 만들어내야 했다. 다른 책방도 마찬가지일 거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 책이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는 것과 그런 장소를 만들어내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있었지만 ‘책‘보다 다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행사를 보조하고, 책방의 크고 작은 업무를 보는 등 이 공간에 방문하는 사람을 생각해야 했다. 책꽂이에는 좋아하는 책 보다 큰 주제 안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인기 있는, 새로 나온 책이 꽂혔다. 역시 상상만 하기보다 현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책방을 하고 싶은 걸까?

책, 좋다. 여전히 좋다. 낡은 책, 새 책 여전히 좋다. 책이 있는 공간도 좋다. 적당히 분위기 있게 꾸민 공간에 사람들이 좋아할법한 책들을 들여둔 공간, 내 가게. 여전히 상상하는 것으로 즐거웠다. 하지만 여기에 전제가 하나 붙었다. 내 책이 있으면 좋겠다. 책방, 여전히 하고 싶다. 이 모든 것들을 알아도 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어떤 형태인지는 몰라도 하고 싶다. 기타 여러 요건이 충족된다면. 그리고 기왕이면 책방을 할 때, 내 책도 팔았으면 좋겠다. 북토크도 하고, 작가와 만남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작가가 되면, 내 이름으로 만든 책이 하나쯤은 있으면 이 모든 게 가능하지 않나? 작가가 운영한다는 책방처럼 작업공간으로도 이용하고, 중간중간 책방 일도 하는 정도 여도 좋겠다.

여기엔 허점이 있다. 무언가를 할 때 앞에 누가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되는 성격이다. 일부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일을 하고, 아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더 많은 일을 하는 타입인데 손님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과연 작업을 진전 있게 해낼 수 있는 걸까? 아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어도 나는 타인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 남을 신경 쓰느라 작업은 뒷전일 거다. 사람이 안 오면 안 오는 것을 걱정할 거고, 사람이 오면 그 사람에게 온 신경을 쏟을 것 같다. 아무래도 작가와 책방을 동시에 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책방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책방에 내 책이 걸리게 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책을 쓰면 작가가 되는 거고, 작가가 되면 책을 홍보하기 위해 북토크도 하고 이것저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서점에서 책을 볼 수도 있을 거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조금 더 확실해졌다. 나는 책방이라는 공간에 환상이 있었구나. 나 진짜 내 책 갖고 싶구나. 진짜 나 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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