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거리 두고 한 일 4-1(카페알바)

유노 콜송?

by 다해

태어난 김에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카페알바다. 카페 사장을 하고 싶은 것과 카페 알바를 하고 싶은 것은 좀 다르다. 카페 사장은 내 소유의 가게를 내 취향껏 꾸미고, 메뉴도 자유롭게 선정하는 그런 것을 꿈꾼다면, 카페 알바는 바쁘게 음료를 만들어내는 것을 상상했다. 유튜브에 나오는 카페알바 브이로그를 보면 음료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도 환상적이다. 예쁘게 완성된 음료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그 기분 좋음을 느끼고 싶기에 하고 싶은 것이 카페알바다.

카페알바를 하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몇 번 도전해 본 적이 있다. 알바에 지원했을 때 돌아오는 답이라고는 카페 일을 해본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사장님도 카페를 새로 오픈했기 때문에 알바에게 교육을 할 시간이 없다는 답이라도 오면 감사했다. 아예 답이 안 오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취업에도 경력이 있듯이 알바에도 경력이 있다. 알바를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바를 할 수가 없다. 이런 불합리한 세상.

카페알바를 시작하게 된 경위를 물어보면 신입을 뽑는 경로는 ‘지인’이었다. 아는 언니가 하다가 일이 있어서 그만두어서, 아는 동기가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 모종의 이유로 카페 알바를 그만두고 아주 급하게 사람을 찾다 보니 지인에게 넘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지인이기 때문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지식을 넘길 수도 있고 인수인계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할 수 있을 터였다. 처음이어서 서툴러도 연락하기에 크게 부담이 안 될 터였다. 지인도, 경력도 없는 나는 카페알바를 시작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연결고리가 생겼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카페 알바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인의 지인이 사무직으로 알바를 구한다고 했다. 우선은 알바처럼 일주일에 몇 번 일을 하고 나중에 사업이 확장되면 직원으로 바꾸는 형식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지원한다고 된다는 보장은 못한다고 했다. 지인의 지인인 데다가 서로의 목적에 맞지 않을 수도, 성향 등이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당시의 나는 일이 너무나도 고팠다.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좀 더 강하게 느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돈을 벌면 성취감도 함께 있을 터였다. 좋다고 답했다.

면접장소는 카페였다. 지인의 지인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이외에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다른 사업에 고용될 것이라 했기에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전달받은 카페에 도착해 면접을 봤다. 그 사업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카페 인력이 너무 부족하고 급해서 혹시 해줄 수 있냐고 했다. 책방에서 카페 음료를 만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 답했다. 다음 주 언제부터 나올 수 있냐기에 화요일 약속이 있는 날 제외하고 나올 수 있다 말했다. 우선은 다음 주 3일 풀타임으로 근무하기로 했다.

9시까지 출근이었다. 8시 55분 아슬아슬하지만 도착했다. 카페 문이 안 열려있었다. 아무도 안 온 것 같았다. 다들 아홉 시 정시 출근을 하는구나 싶었다. 9시가 되었다. 여전히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섰다. 뭔가 이상했다. 9시가 되었다. 카페 안에서 누군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알고 보니 카페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손님들이 출입하는 문과 직원들이 오고 가는 장소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망했다. 좋은 인상은커녕 알바를 안 해봤다는 티가 팍팍 났다.

커피를 내리던 바리스타분은 직원대기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유니폼을 내어주어 갈아입고 제조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항상 이 바깥에 있었는데 안에 들어오니까 또 설렜다. 첫날이라 모든 게 정신없었지만 들어와 보고 싶었던 ‘STAFF ONLY’ 공간에 첫 입성한 설렘이 더 컸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나는 주문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크림을 치는 법, 음료 보조하는 방법은 나중에 알려주신다고 했다. 늘 만져보고 싶었던 키오스크 기기 앞에 서서 간단한 조작방법을 배웠다. 깔끔하게 잘 설명해 주셨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평소에 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인지, 돈을 다루는 기기여서인지 그냥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곧 손님이 왔다. 키오스크를 알려주던 바리스타는 주문을 받고 키오스크로 결제를 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크림을 얹어서 커피를 픽업대에 두고 진동벨을 울렸다. 곧 손님이 커피를 픽업해 갔다. 예상한 대로 별 것 없었다. 브이로그에서 몇 번이고 봤던 과정이지 않은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했고, 출근길에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연습했다. 나는 잘 해낼 수 있다.

몇 분 되지 않아 손님이 왔다. 성공적으로 키오스크로 주문을 마치고 결제를 했다. 주문서를 바리스타존에 넘기고 할 일이 끝나 뿌듯했다. 아주 잠깐. 곧 손님이 더 왔다. 이번에는 외국인 손님이 왔다. 외국인 손님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외국인 손님이라 긴장을 했지만 괜찮았다. 나는 영어를 몇 년이나 공부하지 않았는가. 문제는 계산이었다. 18500을 영어로 뭐라고 하지. 머리가 하얘졌다. 이미 손님은 지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카드가 보편화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카드플리즈를 외치며 적당히 무마되는 줄 알았다.

나에게는 손님이 외국인이지만 손님에게는 여기가 외국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을 갈 때 환전을 해간다. 카드 수수료가 많이 나가기도 하고, 기타 여러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현금을 사용한다. 가게 입장에서도 카드보다는 현금이 더 낫지 않나 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카드를 사용하면 가게에서 부담하는 수수료가 더 많을 것이다. 다음에는 제대로 안내하고 말리라.

손님이 또 왔다. 아직 키오스크까지 오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손님이 보였다. 한둘이 아니었다. 아까 바리스타분이 말씀하셨던 그 정신없는 시간이 시작되었구나 싶었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이 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키오스크 앞으로 손님들이 줄을 섰다. 한둘이 아니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아무나 와라, 다 받아주마. 아주 비장한 각오로 주문을 기다렸다.

8천 원. 에 잇따우 전. 천 원 단위쯤이야 아주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어깨뽕이 올라갈 때쯤 대량주문이 들어왔다. 가격은 4만 8천400원. 에잇따우전 엔 포 헌드레드원. 애드. 4만. ’만‘이 영어로 뭘까. 뒤에 손님들은 줄 서있고, 손님에게 나는 영어로 숫자를 안내해야 했다. 나 수학과인데 숫자를 말할 수가 없다. 숫자를 말하기 편하게 만들어준 한글이 있음에 감사했다. 그냥 어릴 때부터 수를 한글로만 말했으니 당연한 것일 수도. 애초에 영어로 만 단위를 말할 일이 그리 많던가. 영어 지문에도 영어는 숫자로 나온다. 잡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눈앞의 손님은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나만 쳐다봤고 뒤에 줄을 선 손님은 점점 늘어갔다. 빠르게 주문을 넣어야 커피를 만들 거고, 또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다.

‘forty-eight thousand four hundred won’

언제 온 것인지 아까 이것저것 알려주신 바리스타분이 주문을 받아주셨다. 카페 알바의 요건으로는 빠른 손, 친절한 응대, 커피 만들기, 매장관리에 영어도 잘해야 했다. 카페 알바를 경력직으로 뽑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던 거다. 손님은 금방 알아듣고 오만 원을 건넸다. 손님에게 직원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번갈아가며 했다. 정말 감사하고 미안하다면 지금 당장 이 업무에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숫자를 저렇게 잘 말하다니. 부러웠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나 사람이 숫자를 말을 못 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까의 일을 되뇌었다. 어떻게 말한 거지? 사실 별 거 아니었다. 천 원 단위로 말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만원 단위이지만 외국은 천 원 단위이다. 일반적으로 숫자에 쉼표를 찍을 때에도 천 원 단위로 찍지 않던가. 사만팔천사백 원. 48,400원. 48천 원 + 400원. 이거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만 단위로 세는 법만 알았지 천 단위로 셀 생각은 왜 못한 거람? 한번 생각을 정리한 이후에는 2만이던 7만이던 상관없었다. 난 이제 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을 시작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프로 알바가 된 기분에 심취했다. 주문은 끊임없이 들어왔고, 여전히 긴장을 한 상태였지만 최소한 현금이 겁나지는 않았다. 현금이던 카드던 모두 받아주겠어! 추천메뉴도 걱정 없었다. 전날에 카페음료의 메뉴와 특징, 들어가는 재료, 추천메뉴까지 정리해 둔 내용을 받았고 다 외워서 갔기 때문이다. 암기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주문을 받고, 메뉴를 추천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멋졌다. 원래 이렇게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가 새로운 일이 생기기 가장 좋을 때다.

‘깁미 어 원 콜송’

콜송이 뭘까. 일단 커피는 절대 아니다. 카페에 있는 모든 메뉴를 다 봤다. 커피이기 때문에 애초에 영어다. 커피메뉴를 주문했는데 못 알아들었을 리는 없다. 그럼 뭐냐. 디저트 종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콜송‘이라는 메뉴명은 처음 듣는다. 디저트 좋아해서 이것저것 찾아본 나조차도 처음 듣는 메뉴다. 내가 모르는, 카페단골만 아는 숨겨진 메뉴인 걸까.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으니 딱 한 번만 더 물어보자.

‘콜송..?’

맞댄다. 콜송이 맞댄다. 콜송이 뭘까. 하. 정말 죄송하지만 바리스타분 한 번만 더 불러야겠다. 콜송은 진짜 모르겠어요. 속으로 광광 울며 바리스타존으로 가려던 나에게 한줄기 구원이 있었다. 손님이 옆에 있던 크로와상을 가리킨 것. 크로와상이 왜 콜송이냐. 크로와상 알지. 아주 잘 알지. 바삭하고 맛있는 거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크로와상을 콜송이라고 말할 줄은 몰랐지. 친절한 손님분 덕분에 커피 내리고 있는 분을 다시 부러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유튜브 쇼츠로 영어 공부쇼츠가 떴다. 대표콩글리시 중 하나로 크로와상이 있다며 언어표기로는 두 글자로 발음이 된다고 한다. 콜송이 맞는 말이었다. 카페알바를 하려 했는데 영어 듣기 말하기 공부가 덤으로 따라왔다. 원 플러스 투 혜택을 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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