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뭘까.
손님은 점점 더 많이 왔다. 바로바로 주문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문을 키오스크 기기가 따라오지 못할 지경이었다. 바리스타존에도 주문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있으니 즐거웠다. 바쁘다는 건 행복하다는 거다. 주문을 받고, 바리스타존에 주문서를 넘겼다. 또 주문을 받고, 주문서를 넘겼다. 바리스타존에 주문서를 넣을 공간이 부족해졌다. 다시 한번 주문서를 넘기러 갔을 때 바리스타분이 이제 주문을 그만 받고 밀린 주문 처리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콘파냐나 간단한 에스프레소 종류는 내가 마무리해서 픽업대에 둬달라고 했다.
레시피, 안다. 만드는 방법, 아까 봤다. 그런데 해본 적은 없다. 그냥 한번 본 게 다다. 그런데 내가 하라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해도 괜찮은 걸까. 주문은 밀려있고, 손님은 들어오고 있고, 키오스크 앞에는 줄을 섰다. 아직 출근 전인 바리스타 분들도 있기에 지금을 넘기면 이후에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키오스크 앞에 선 손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 말하고 바리스타존으로 갔다. 만들어진 에스프레소가 폼이 올려져 손님에게 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몇 개의 주문이라도 처리를 해준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망치지만 않으면 된다. 비장하게 에스프레소를 들고 섰다. 휘핑기를 열심히 흔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실물로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다년간 카페를 다닌 기억, 유튜브 브이로그를 본 덕분인지 반자동으로 움직였다. 더 이상 흔들리는 것이 없다. 휘핑을 내려도 좋다.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을 뿌렸다.
파다다다다닥 휘핑은 예상보다 더 거침없이 나왔다. 유튜브에서 여러 번 봐서 알고 있었지만 역시 실제로 해보는 것과는 다르다.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너무 빨리 나와서 망치는 것을 여러 번 봤었다. 그래서 더 긴장을 하고 있기는 했다. 빠르게 나오는 휘핑의 속도에 맞게 원을 여러 번 둘렀다. 큰 원에서 작은 원으로 고깔의 형태를 띨 수 있게 했다. 예뻐야 했다. 손님에게 아무렇게나 뿌려진 커피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목, 어깨, 팔, 손목, 심지어 손가락까지 힘을 안 준 곳이 없었다. 다행히 생김새는 그럴듯했다. 솔직히 좀 예뻤다. 그런데 이걸 내가 손님에게 내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바리스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한 커피를 먹고 싶지 않을까? 내가 손님이더라도 일개 키오스크가 뿌린 휘핑이 얹어진 콘파냐를 먹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모양새가 그럴듯한 것과는 별개였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키오스크 쪽에서 주문을 원하는 손님들은 줄을 서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손님은 또 들어오고 있었다. 떨렸지만 픽업대에 메뉴를 두고 진동벨을 울렸다. 번호에 해당하는 손님이 픽업대로 왔고 음료를 제공했다. 손님은 만족스럽게 진동벨과 커피를 교환해갔다. 다행이었다. 손님은 클레임을 걸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완성한 커피를 가져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크림을 얹는 종류는 바리스타가 아니라 키오스크를 보는 일반 직원이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리스타가 할 때도 있었지만 항상 하지는 않았다. 또, 바리스타라고 항상 휘핑을 완벽하게 얹는 것은 아니었다.
난 참 유능한 알바였다. 크게 사고를 치지도 않고, 한번 배우면 일을 척척했다. 손도 빠른 편이어서 주문을 빠르게 처리하고, 휘핑도 금방금방 얹었다. 오전보다 오후, 첫날보다 둘째 날, 둘째 날보다 셋째 날 일을 더 잘했다. 나름 카페 직원분들과도 친해졌다. 원체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이지만 이것저것 사담을 나눌 기회도 있었다. 손님이 슬쩍 빠졌을 때 바리스타분이 처음 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대형사고 쳤던 이야기도 나누며 내가 참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너무 귀찮게 해 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좋게 봐주시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하루종일 서 있고,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좋았다. 카페 분위기는 좋았고, 바깥의 풍경 역시 예술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카페를 방문한 손님들도 커피를 여유롭게 즐겼다. 영어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며 영어공부도 되는 것 같았다. 10분 정도 전화영어를 뭣하러 하나. 하루에 10분 이상 영어를 듣고 영어로 말했다.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할 수는 없었다. 가장 황금시간대인 9to6에 준하게 출근을 매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대 no였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애초에 사무직 알바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카페 알바를 하고 있어서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장님은 오후에 출근해서 잠깐 있다가 갔다. 사장님과 말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손님이 끊이지 않았기에 키오스크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나에게 일이 괜찮은지, 계속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대화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손님은 주문하고, 나는 주문을 받고, 손님 뒤로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바리스타존에서는 바리스타분들이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바쁜 상황에서 묻고 답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약속한 기간 외에 추가로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했다.
말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카페가 바쁘다. 나도 안다. 하지만 주문을 기다리는 손님이 줄 서있는 키오스크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하고 틈이 날 때 사장님과 대화를 시도했다. 사장님은 힘드냐 물었다. 안 하던 일, 긴장, 바뀐 생활패턴에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한 그대로 힘들다고 했다. 하다 보면 힘들지 않을 거라 했다. 맞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 몸의 적응기간은 일주일에서 이주정도이므로 그 기간이 끝나면 체력적으로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날, 사장님은 나에게 힘드냐 물었다. 힘들다고 대답했다. 계속 이어서 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어려울 것 같다 답했다. 애초에 사무직 알바를 위해 온 것이 아니던가. 사무직을 하고 중간중간 카페일을 도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답했다. 카페 일은 즐거웠으니까.
사장님은 지금 너무 힘들면 내일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자신이 말해둘 테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오늘 시간만 마치고 퇴근하라 했다. 나, 잘린 건가? 뭔가 이상했다. 상황이 이상한 것은 진작부터 이상했는데 이건 더 많이 이상했다. 본래 일하기로 한 날이 내일까지이니 내일까지는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 것에는 책임을 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너무 힘들다면 오늘 중에라도 꼭 말해달라 했다. 부담 없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오늘 퇴근하는 길에 자신에게 들렀다가 가라고 했다. 내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제조공간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손님이 몰리지 않아서 직원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원들은 내가 내일도 나오고 앞으로도 나올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상했다. 사장님과 이야기한 것과 직원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달랐다. 이번주 며칠 나오는 것으로 알고 카페 알바를 시작했는데 직원분들은 그냥 새로 온 직원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카페 규모가 크고 직원이 많기 때문이었을까? 그날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사장님과 마주쳤다. 오늘 업무는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고 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힘들다면 내일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사장님은 내가 내일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눈치 없이 내일 나오겠다고 한 걸까. 어려웠다. 그 말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 뜻에는 변함이 없었다. 본래 나오기로 한 날까지 나오겠다 했다. 책임감이 있는 친구라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마지막 출근을 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웠다. 평소보다 손님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괜히 그랬다.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업무가 익숙해졌는지 아주 능숙하게 일들을 해냈다. 여전히 가끔 실수하는 것들이 있기도 했지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주말 출근이어서인지 새로 보는 직원분들도 계셨다. 바쁜 중에도 즐겁게 일했다. 직원분들은 모두 좋은 분이셨다. 정신없이 바쁜 곳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니 끈끈한 우애가 있는 것 같았다. 드라마 속 카페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카페에서의 마지막날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어 수거함에 두었다. 실장님과도 인사를 했다. 급여를 주어야 하니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적고 퇴근하라셨다. 인적사항을 적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직원휴게실을 나왔다. 사장님은 사무업무 관련해서는 ‘조만간‘ 연락을 주겠노라 했다. 어쩌면 사무직 알바를 하면서 종종 카페에 올 것이라 생각했다. 카페는 아주 바빴고, 난 카페 업무를 상당히 잘 해냈다고 생각하니까.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다음주가 되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분명 조만간 연락을 준다고 하셨는데 그 조만간이 언제인지 모르겠었다. 사장님에게 문자를 했다. 답이 없었다. 아직 카페가 문을 닫지 않았으니까. 밤에는 핸드폰을 잘 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답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잘 지냈냐는 간단한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소개해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무직으로 추천했지만 카페 일이 너무 바빠서 돕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장님에게 전달받았는데 같이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했다. 자신도 많이 친한 사이가 아니고,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했다. 취업 준비 중이니 더 잘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게 뭘까. 그래도 얼굴을 보고 일을 한 사이인데 만약 같이 하지 않게 되었더라도 직접 문자, 전화로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내가 한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카페에서 했던 것 중 내가 잘못한 게 있었을까? 자잘 자잘하게 카페에서 했던 실수들이 떠올랐다. 나는 뭔가 잘못했을까? 나는 좋은 직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자기 비하를 마치고 차분히 다시 생각해 봤다. 지금 나는 왜 기분이 안 좋을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던 사무직 알바를 하지 못하게 되어서? 아니다. 카페 알바를 잘 해낸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아니다. 돈을 벌지 못하게 되어서? 이건 좀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고용하지 못하게 된 사실을 당사자인 사장님이 아니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어서. 이거다. 왜 직접 말해주지 않은 걸까. 내가 부담스러웠나?
하려던 사업을 좀 미루게 되었다거나, 카페가 바빠서 당분간 카페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거나,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자신과는 맞지 않는 성향을 가진 것 같다거나 이유는 충분히 많고 많았다. 세상은 넓고 개개인의 사정도 다양했으니까. 어떤 이유여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어떤 이유일까. 나에게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이유일까. 지인이 소개해 준 사람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운 그런 이유였을까. 도대체 뭐였을까. 일 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나에게 직접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을까. 도대체 어떤 이유였을까.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 좋은 사람들의 기억은 마지막 이 일로 그닷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한동안은 그 후유증에 있었다. 사장님에게 연락을 해볼까 고민했다.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민은 정말 많이 했다. 확실한 건 그 이후에 사장님을 만난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는 거다. 나는 맺고 끊는 것에 약하구나 싶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은 좋은 글의 소재가 된다. 지금까지 읽은 브런치스토리가, 에세이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아니었던가. 이 경험 역시 좋은 글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에 더 많이 가까워졌다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