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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Jul 13. 2022

사이버 세상의 비평가들에게

소셜포비아 Socialphobia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내가 사는 동네든 직장이든 학교든 꼭 존재한다.

무슨 정보력이 그리도 뛰어난지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이곳 지곳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린다.

관심 없어하는 사람까지 굳이 붙잡고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뭐라고 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이들을 부르는 별명이 있었다.

“지방 방송국” “지역 방송국”등등..


이 방송국 기자(?)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결코 좋은 이야기는 방송하지 않는다는 것.

취재한 정보(?)를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더해 부풀려서 보도한다는 것.     

그냥 과거에 알던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불륜의 관계다.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올린 친구는 부정행위를 한 학생이 되기도 한다.

친구가 걱정돼서 한 이야기는 험담으로 그에게 전달된다.




그의 기사 덕분에(?) 동네와 학교는 발칵 뒤집어진다.

사이좋은 관계던 그들은 해당 방송으로 인해 원수가 되기도 한다.

기자를 불러 3자 대면을 지만 기자는 당당하다.

자신은 양심에 따른 기사를 작성한 죄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사회의 부조리를 알리고 논평하는 시대의 비평가라 생각한다.     


그나마 동네나 학교에서 퍼진 허위 보도는 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어 바로 잡을 기회나 있다.

기자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 해명이나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시대는 내가 사는 동네나 학교의 생활만을 아는 시대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전 세계의 소식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비평가한테는 씹고 뜯 맛보고 즐길 상대 무한정으로 늘어난 셈이다.     

힘들게 발로 뛰어다니며 입 아프게 떠들 필요도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거나 스마트 폰을 통해 얼마든지 나의 비평을 쏟아 낼 수 있다.

정의 사회 구현(?)에 애쓰는 비평가에게 이처럼 좋은 환경은 없다.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댓글을 통한 비평을 쏟아낸다.

자연 미녀인 그녀는 성형 괴물이다.

특정 정치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무뇌충에 친일파다.

실수한 일을 사과하는 그는 거짓으로 사과하는 가증스러운 인간이다.     




이런 비평가들은 인터넷 세상에 넘쳐난다.

그들을 가리켜 “악플러”라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악플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땅의 많고 많은 어리석은 대중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정의의 사도라고 자부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목표를 만들어 상대를 공격하고 자기들끼리 웃고 즐기며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모인다.

그러나 그들 역시 같은 편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불만 있는 친구를 다른 친구에게 흉보면서 말하기도 한다.

그 친구의 속 사정은 모르는 채로 내 나름대로 평가해 욕한다.

사회 문제가 된 악플러 정도는 아니어도 보통 사람들도 남의 흉을 보거나 욕을 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남의 말 하기는 쉬우니까.

누군가를  흉보는 것은 정도를 넘지 않는다면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악플러들의 심리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불만을 그렇게 토해내는 집단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굳이 심리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정의 사회 구현(?)에 앞장서는 비평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다.     


독립 영화 “소셜 포비아”가 바로 그 영화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수많은 악플러들이 악플 방송을 한 특정인을 타깃으로 사이버 리치를 가한다.

그 피해를 당한 여성은 괴로움에 자살을 한다.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 현실에 악플러들은 그녀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타살을 당한 것이라 주장하며 범인은 자신들 속에 있다고 말하며  범인을 찾아내는 게임을 한다.


그들은 서로가 다른 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며  범인을 찾는다.

그런데 가장 열심히 범인을 찾겠다고 설쳐 댄 A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비록 직접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A의 악플이 그녀의 죽음에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에 그는 다른 악플러들의 새로운 공격 대상이 된다.

악플러들의 새로운 먹잇감이 가 된 A, 그 역시 괴로움에 자살을 시도한다.     


분명 범인은 A 한 사람이 아니다.

같이 악플로 공격을 한 들 모두가 범인이다.

하지만 같이 악플로 공격을 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은 그녀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우긴다.

자신들의 무관함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이를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같이 웃고 떠들 즐거워하며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이제 나를 공격하는 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왕따였던 급우가 전학을 가자 새로운 왕따가 되기 싫어 다른 친구를 같이 왕따 시키는 아이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남의 말을 쉽게 하면서 누구도 나의 말로 인해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재미로 한 말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기에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자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속담처럼 무심코 던진 나의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영화는 말해 주고 있다.     




지금 누군가에게 익명성을 방패 삼아 근거 없이 공격하고 계시는가?

그렇게 공격하고 웃으시면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시는가?

같이 웃고 떠들며 근거 없는 사실로 사이버 공격을 가하고 있는 당신.

당신들의 공의 적이 사라지면 그다음 공격 목표는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웃고 떠들면서 글을 적는 그 공간에 다른 의견을 적어 보시라.

당신이 썼던 똑같은 내용의 글로 당신을 공격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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