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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Jun 08. 2023

현지 근무 직원이 손님 접대를 위해 엄선한 호치민 맛집

베트남 호치민  출장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다. 지금까지 권리라고 착각할 만큼 호의를 받아보지 못했다. (한편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 이번 출장을 통해 달콤한 호의의 세계에 눈을 떠버렸다. 소위 말하는 의전을 직접 체험하게 된 거다.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던 해외 사무소 점검이 3년 여 만에 재개되었다. 그 사무소 입장에서는 3년 만에 본사에서 점검하러 오는 거다. 점검 결과에 따라 사무소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순진한 나는 그런 절박함을 잘 몰랐다. 호텔에서 쉬면서 저녁에 가볼 식당이나 검색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사무소 직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시각으로 두시가 넘었는데 출장단과 식사하려고 점심을 안 먹고 기다렸다고 한다. 좀 미안했지만 안 먹었다는데 어쩌겠어. 베트남 첫 식사이니 만큼 현지 식당에서 쌀국수를 권했다. 지난주에 주요 거래처 본사 손님을 모시고 간 곳이라고 했다.


1. 첫날 점심: 포 푸 부엉(Phở Phú Vương), 깔끔한 현지 쌀국수


https://goo.gl/maps/mDjjno4uqynai91W7


"그분들 때문에 중국 식당에 예약을 해놨거든요. 예약금도 많이 걸었는데, 손님 중 한 명이 갑자기 현지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로 부랴부랴 데려왔어요."

(나중에 그 중국식당에 가서, 날릴뻔한 예약금으로 식사를 하게 된다)


이 층으로 된 작은 건물 전체가 식당이었다. 자리 간 간격이 넓고 벽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식탁 위 채반에는 밭에서 뜯어온 듯한 여러 종류의 이파리들이 놓여있었다. 고수 대신 국수에 함께 넣어 먹는 거라고 했다. 쌀국수는 소박한 로컬의 맛이었다. 물티슈가 한편에 있어 뜯어서 손을 닦았는데, 따로 요금을 내야 했다. 호텔 방 미니 바도 아니고...


호텔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사무소에 들러 인사를 했다. 호치민 시내 중심가인 디스트릭트 1에 위치하고 있었다. 소장님을 비롯 본국 직원은 네 명, 현지직원은 족히 이십 명은 되어 보였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해외조직 중 하나이다. 소장님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직원 한 명이 동행하여 호텔 체크인을 도왔다. 그 직원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겠다고 했다. 그래, 첫날이니까 식사를 같이 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때는 몰랐다. 출장 일정 내내 함께한 식도락 여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2. 첫날 저녁: Hum, Cafe & Restaurant, 베트남식 비건 레스토랑


https://goo.gl/maps/4erg3MJ3TddrdmSJ7


"우선 호텔에서 좀 쉬었다 가시죠. 호텔 앞 중국 레스토랑도 좋은데 저녁에는 딤섬을 안 하고요, 유명한 분이 좋아하는 베트남 식당이 있는데 거긴 어떠세요? 아님 여자분들 좋아하시는 비건 베트남 레스토랑도 있어요.."

"아... 잠깐 생각 좀 해보고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당황했다. 여기서 결정을 내릴 사람은 나였다. 그럴 때는 회계학에서 배운  FIFO (First In First out) 법칙을 따른다. 먼저 나온 거부터 가는 거다.


"음... 그럼 중식당은 점심에 먹고요, 오늘은 그 누구누구가 좋아한다는 베트남 식당에 가실까요."

(잠시 후)

"아... 그 식당은 오늘 풀부킹이네요. 어쩌죠?"

"괜찮아요. 비건 베트남 식당으로 하시죠"


사무소 직원은 내가 첫 번째로 지명한 식당에 예약을 못해 연신 죄송한 표정이었다. Hum이라는 이름의 비건 식당은 목재 위주의 인테리어라 아늑한 분위기였다. 팟타이, 그린 커리, 파파야 샐러드 등 익숙한 메뉴에 딱 육류만 없었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어요? 비행기 오래 타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마사지 어떠세요? 제가 잘하는 데를 아는데."


상대보다 잘 알아야 이길 수 있다. 정보의 싸움에서 현지에 사는 사람에게는 백전백패다. 호의를 거절하기도 뭣해서 따라가기로 한다. 당연히 돈은 내가 낼 거고. 사무실과 멀지 않은 도심 건물 안에 있는 마사지샵이었다. 종업원과 이야기하더니 무슨무슨 코스를 권했다. 마사지받으며 깜빡 졸고 나오니 직원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렇게까지 해주나 생각이 드는 가운데 호텔까지 데려다줬다.



3. 둘째 날 점심: 딤투탁(Dim tu Tac), 제대로 하는 딤섬집


https://goo.gl/maps/3vLC2z3WAg2jVsTy8


내가 묵었던 쉐라톤호텔 바로 길 건너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소용없었지만) 여기 가면 되겠다 하고 검색했던 곳이었다. 베트남 화교가 운영하는 듯했다. 홍콩 현지 딤섬집과 견줘봐도 손색이 없었다. 주방 한편에서 북경오리를 직접 조리하고 있었다. 홀은 백 명 이상을 수용할 정도로 넓었다.


홍콩에 몇 년 있었기 때문에 딤섬 하면 좀 할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주로 하가우(새우 딤섬), 슈마이(새우, 돼지고기 딤섬) 등을 먹는다. 장펀(새우 등의 재료를 쌀로 만든 넓적한 피로 길게 감싸 쪄서 달짝한 간장소스를 뿌려먹는 것), 로마이까이(닭고기를 넣어 연잎을 감싸 찐 밥), 터닙케이크(무를 간 반죽을 네모나게 지져낸 것), 초이삼(유채의 어린순) 볶음 등을 추천해 주니 반응이 좋았다.


이야기가 잘 되어 지난주 방문한 손님을 위해 걸어놓은 예약금을 쓸 수 있었다. 남은 예약금은 에그타르트를 테이크아웃해서 사무실 직원들에게 가져다주자고 제안했다.



4. 둘째 날 저녁: Pizza 4P's, 치즈가 신선한 화덕피자


https://goo.gl/maps/mWwuHTkfvTpSHcBh7


베트남에서 웬 피자 했었는데, 유명 화덕피자 프랜차이즈 맛집이라고 한다. 베트남 곳곳에 지점이 있다. 자체 목장을 보유하고 있어서 하우스메이드인 치즈가 고소하고 신선했다. 4가지 치즈 피자, 부라타 치즈 샐러드가 특히 맛있었다.


"이틀 연속 마사지 하기는 좀 그러시니, 오늘은 2층 관광버스 타시죠. 요 코스는 저도 처음이라 타보고 싶었어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전담 직원이 출장의 전 일정을 우리와 함께할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다가 어느 순간 될 대로 대라의 모드가 되어버렸다. 거절에도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같이 온 직원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팀장님이 마음을 내려놓으시네요..."



5. 셋째 날 점심: 젠 사이공(Zen Saigon), 합리적 가격의 일식집 & 하겐다즈, 테라스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https://goo.gl/maps/ybp8Y3ZmQPx5LdHD9

https://goo.gl/maps/dX3Qj951PEbdy5Po9


오늘 점심은 내가 사겠다고 간청(?)했다. 마지막 남은 양심의 가책이랄까. 후식인 아이스크림은 나와 같이 온 직원이 샀다.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나도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호치민은 관광도시라 그런가 외식 물가가 의외로 비쌌다. 물론 현지인들이 가는 노포는 싸다. 직원들이 그런 곳에서 먹기는 힘들 거다. 이곳은 직원들이 자주 점심 먹으러 오는 식당이라고 했다. 관광객이라면 베트남에 와서 일식을 먹지는 않겠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하겐다즈에 가서 지붕을 씌운 야외좌석에 앉았다. 천장에서는 팬이 돌아가며 습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뿌렸다. 라탄 소재의 의자를 두어 리조트 느낌이 났다. 밖으로는 프랑스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보였다.



6. 셋째 날 저녁: 더 덱 사이공(The Deck Saigon), 사이공 강 테라스 뷰 맛집


https://goo.gl/maps/CnSKC8EkTNmrD8e78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디스트릭트 2의 타오디엔 지역에 위치한 대형 레스토랑이다. 흰 벽에 짙은 나무로 인테리어를 해서 휴양지 리조트 같은 분위기였다. 메뉴는 익숙한 요리를 하나씩 꼬아 놓은 퓨전이었다. 사이공강을 쭉 따라서 테라스석이 길게 놓여 개방감을 줬다. 강 수면과 가까워 시야가 좋았다. 안쪽으론 파라솔을 씌운 소파 좌석도 있었다. 식사 보단 술 한잔이 어울리는 자리였다.


하루 걸러 오늘도 마사지샵. 우리가 마사지받는 동안 직원이 집에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여서 그나마 덜 미안했다.



7. 넷째 날: 귀국


귀국 편은 두 시 비행기였다. 호텔 조식을 마치니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남으니 역사적 명소인 통일궁을 관람하자고 한다. 한사코 마다하는데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소리를 듣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이 사람이 정말 해도 해도'라는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다. 그는 본사에 잘 보이기 위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갑은 난데 왜 매 순간 호의를 받을때 마다 불편해야하나. 일순 억울했다. 나는 소위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는 중이었던거다. 의전에 익숙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인 저항이었으리라.


P.S. 꼭 잘 보이려고만 과도한 의전을 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여직원 둘이 출장 와서 걱정된 소장님이 많이 배려해 준 것도 포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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