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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Mar 05. 2023

(이제야 걸린) 코로나 투병기

낙랑공주는 무엇을 찢었나


고구려 신왕의 아들 호동은 낙랑왕 최 씨의 딸과 혼인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나와의 사랑을 이루려면 당신 나라의 국보인 자명고를 찢어야만 하오."


자명고는 적이 침입할 때마다 스스로 울린다는 신비한 북이었다. 남편이냐 조국이냐의 갈림길에서, 낙랑공주는 결국 남편을 선택했다.


모두가 잠든 밤, 낙랑공주는 우물 같은 구조의 자명고 내부로 칩입하는 데 성공했다. 품에 숨겨온 단도를 꺼내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북의 내부를 찢어나갔다. 자명고는 영험하게도 자신의 운명을 체감한 듯 마치 낮은 신음과 같은 울림을 냈다.


"으으으~ 으으으으~"


아니, 찢기는 것은 자명고가 아니고 내 목이었다. 아주 작은 칼로 목 안쪽을 계속 찢으면 이런 느낌일까. 혹자는 유리가루를 들이마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코로나 증상이 이런 거였구나....




왜 무함마드 씨는 거짓말을 했나


남편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모 나라에 물건을 팔러 출장을 갔다. 거기서 만난 바이어 중 한 명인 무함마드 씨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잇츠 오케이. 아이 갓 어 콜드. 잇츠 저스트 어 콜드. 돈트 워리"

(괜찮아, 감기 걸렸어. 그냥 감기야. 걱정 말라고)


그와 며칠간 회의를 하고 식사도 할 예정이었던 남편은 그 자리에서 '망했다'라는 걸 직감했다. 나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처음엔 멀쩡했다. 출장 가서 보균자와 만났다는 이야기는 숨겼다. 자기부정의 단계였다. 이윽고 기침이 시작됐다.


"나이가 드니까 기침이 연신 나네.."


매사에 의심이 없는 나는 그 말을 곧이들었다. 하지만 남편의 증상은 나아지지가 않았다. 이쯤 되면 코로나 자가키트 검사를 피할 수 없었다.


"휴~ 음성이네."


다행이다. 가벼운 감기인가? 아니면 노화의 과정인가? 첫째 아이가 검사키트를 매의 눈으로 유심히 봤다.


"아니에요,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보여요"

"......"


동네에 있는 야간 진료 소아과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증상이 없었지만, 의사는 가족 모두에게 검사를 권했다.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오면 신속항원검사나 PCR검사에서도 대부분 양성이 나온다고 한다. 결국 남편의 중앙아시아 직수입산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판정은 시간의 문제였다. 문제는 나와 아이들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만약 아이들이 양성이 나오면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학원은 어떡하고?


병원 한편에 코로나검사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 개의 부스가 있었다. 의사는 뒤쪽 별도의 입구로 들어와서는,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유리벽에 부착된 비닐장갑에 손을 꼈다. 면봉이 유난히 긴 것이 의심스러웠다. 의사는 내 눈알이 뚫리기 직전까지 코를 후볐다. 그간 수차례 PCR 검사를 받아 두려울 것이 없었던 나는 당황했다.


"계속 뒤로 가지 마세요, 어머님"


검사결과가 음성이 나온다고 해도 잠복기가 있으니 이삼일은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다행히 세 명 다 음성이 나왔다.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도 뒤늦게 출근했다. 남편이 격리된 일주일 동안 모든 점심과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도시락을 싸가기로 했다. 다른 집 같이 남편을 화장실이 딸린 방에 감금하고 음식도 넣어줘야 하나.


수요일부터 목이 좀 간지러웠다. '혹시..?'와 '역시..'가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교차했다. 첫째 아이는 인후통이 와서 목소리가 변했고, 둘째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몸살을 참았다고 했다. 자가진단 키트를 해보니 남편 때완 비교도 안되게 뚜렷하게 두 줄이 나왔다. 금요일 저녁 다시 소아과에 갔지만 확인사살에 불과했다.


일주일이나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자 아이들은 울상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격리일자가 겹쳐서 돌봐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거운 휴가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매일 게임시간을 30분씩 주고, 넷플릭스를 두 시간씩 보기로 했다. 원래는 주말에만 허락하는 것들이었다. 큰 손실에는 작은 이득이 따르는 법이다. 미국의 소설 '초원의 집' 주인공인 로라 아빠의 명언이다. 집이 불타자 다른 데로 떠나기로 정하고, 아껴둔 씨감자를 구워 먹는 장면이었다.




합의를 깬것은 어느쪽인가


감기력 수십 년째다. 목이 간질간질하면 곧 인후통이 오겠지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후 코스요리가 차례차례 나오듯 기침, 맑은 콧물에 이어 가래로 끝난다. 길면 14일, 짧으면 2주 안에 완치된다. 감기와 나의 오랜 합의 같은 거다. 그러다 상도덕 없는 코로나와 조우했다.


(1단계) 우선 인후통과 몸살이 같이 왔다. 목을 찢는 통증이었다. 가습기를 안 틀면 목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쉴 새 없이 따뜻한 물을 마셨다. 그다음은 콧물이었다. 일반적인 감기와는 달리 처음부터 콧물의 점도가 꽤 있었다. 콧물은 점점 진해지더니 가래가 되었다. 며칠간 아침마다 피 색깔의 가래 덩어리가 나왔다. 내가 자꾸 목을 이용해서 가래를 뱉으려고 하니 둘째 딸이 단전을 끌어올려 뱉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기침도 간간이 나왔다. 발열이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편은 며칠간 후각과 미각이 없어졌다. 뭐가 생기는 것보다 없어지는 게 더욱 공포이리라.


코로나가 촉발된 2020년 초부터 근 삼 년간 온 가족이 한 명도 안 걸려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인구의 2/3쯤 걸린 이제야 허무하게 무너졌다. 감기는 남한테 옮기면 낫는다는데, 저 멀리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서 말 타고 달리고 있을 무함마드 씨가 원망스러웠다.


(2단계) 격리기간 일주일이 지나자 증상은 얼추 가라앉았다. 잔기침만이 남았다. 악귀에 들린 듯 내 의지에 반하여 기침을 연신 해대고 나면 가슴이 아팠다(두 가지 의미로 모두). 주변 사람에게 미안했지만 이제 전염력은 없을 거다. 혹시 호흡기관이 잘못됐을까 걱정되었다. 신기하게도 남들이 말하듯 몇 주가 지나자 기침이 뚝 멈췄다.


(3단계) 그다음은 체력저하였다. 확실히 코로나 걸리기 전과 비교해 기운이 없었다. 병뚜껑도 열지 못했다. 얼추 회복되기까지 서너 달 걸렸다.


처음이다 보니, 매 단계마다 안 나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감기 낫는데 2주 걸리듯 코로나는 낫는데 100일 걸리는 뿐이던가. 그 답은 먼 훗날에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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