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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Jun 29. 2023

카페 창업을 성공할 결심

카페가 하나 있다.


"요번에 앞집에 누가 이사 왔는데, 알고 보니 XX동에서 핫한 소금빵 맛집 주인이지 뭐야. 여기인데, 인테리어도 이쁘지? 결정적으로 매장에 X뮤다 토스트기를 둬서 빵을 데워먹을 수 있대."


후배가 스마트폰으로 카페를 검색해 줬다. 나무색 창틀의 통창 밖으론 정갈하게 자란 담쟁이 벽이 보였다. 창을 바라보며 의자 두 자리가 정갈하게 있었다. 상호는 영어단어를 조합했다. 모 연예인이 맛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했다. 2층짜리 주택을 통째로 개조했다. 화이트를 바탕으로, 군데군데 우드톤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입구에는 율마 화분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었다. 벽에는 간판을 대신해 A4 용지 세장에 가게 이름, bakery, coffee를 출력해서 나란히 붙여놓았다. 창가 쪽 테이블엔 커피에 곁들이기 좋은 트렌디한 빵과 케이크가 각각의 원형 트레이나 바구니에 진열되어 있었다. 중간중간에 영어로 제목이 쓰인 사진집이나 디자인 서적을 받침으로 썼다. 


"엄청 장사 잘 된대. 우리 집에도 빵 가져다줬는데 정말 맛있더라구. 주인이 미대를 나와서 그런가 감각이 남달라. 강남에 2호 점도 준비 중이래."


화이트 기조의 우드톤 카페는 요새 흔한 콘셉트이지만, 거기서 차별화를 하는 게 역량이겠지.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기회가 생기면 방문하고픈 분위기였다. 카페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는 뭘까. '청담동 앨리스'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문근영은 가난한 집에서 자랐지만 디자이너의 꿈을 열심히 키웠다. 대학교 수석 졸업 등 우수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면접에서 낙방했다. 경쟁자가 말했다. 


"네가 왜 안 뽑혔는지 알아?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고? 감각과 센스가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는 타고나는 거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서 얻게 되는 타고나야 하는 조건,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또 다른 카페가 있다.


동네 초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카페다. 간판은 짙은 고동색 간판에 'XX(상호명) coffee'라고 흰색의 돋움 글씨로 새겨있었다. 90년대쯤 흔하던 간판스타일이었다. 실내는 액자 몇 개와 작은 알전구로 장식해 놓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아기자기했지만 모아놓고 보면 어딘가 어수선했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중년 부부가 하는 가게였다. 한동안 비어있던 상가 자리라, 개업을 준비할 때부터 눈여겨봤다. 부부가 가게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가게 앞 공터에서 놀고 있었다. 따로 봐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실내에는 창가의 일자 테이블과 원탁이 하나 있었다. 가게 앞 빈 공간에 파라솔을 꽂은 원형 테이블을 두 개 놓았다. 메뉴는 커피, 주스 같은 음료를 기본으로, 샌드위치 등 요기거리도 있었다. 사과잼을 바른 옛날 와플과, 벌꿀 카스텔라도 팔았다. '네가 원하는 게 이 중에 하나는 있겠지'라는 K-Pop 아이돌그룹 같은 구색이었다. 주인아저씨임이 분명한 어지러운 필체로 입간판이 쓰여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틀 바깥편에 바구니를 두고 젤리와 쿠키를 팔기 시작했다. 개당 500원이었다. 내 아이도 한번 하굣길에 사 왔다. 앞에 남는 빈 공간을 활용하려는 걸까. 바지와 양말도 팔기 시작했다. 앞쪽에 사각의 테이블을 두고 주로 흰색과 검은색의 양말 묶음을 팔았다. 뒤쪽에는 행거를 병렬로 세 개 놓았다. 냉장고바지와 아디다스 운동복바지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한 벌에 만 오천원인 걸로 봐서 아디다스 바지는 진품이 아니겠거니 했다. 


그러니까 XX커피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학교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는 커피숍이자, 아이들이 학원 가기 전에 요기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자, 하굣길 아이들이 용돈으로 간식을 구매할 수 있고, 그래서 동네 문방구와 사소한 경쟁관계에 있는 구멍가게이자, 내키면 양말과 냉장고 바지를 구매할 수 있는 잡화점인, 일종의 초미니 멀티플렉스 몰이었다. 그리고 아들 둘 부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아들들이 갖고 놀았음에 틀림없을, 구석에 둔 물놀이 용품과 작은 트램펄린이 일상의 냄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소위 '인스타그램'에 올릴 장소를 찾는 젊은 친구들은 오지 않을 거다. 카페는 음료 한 잔의 가격으로 공간을 잠시 빌리는 곳이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 그 환상을 구체화 한 곳을 사람들은 갈망한다. XX커피는 삶의 연장선이었다. 부부는 흠 하나 없는 환상의 공간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이래선 카페로 큰돈을 벌 수는 없을 거다.


타고난 조건이라는 건 뒤집기 쉽지 않다. 세상은 새삼스럽지도 않게 불공평하다. XX커피의 부부는 아마 XX동 소금빵 맛집을 평생 모를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불편해하는 건 보이지 않는 칸막이를 기웃거리고 있는 나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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