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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Sep 15. 2023

반대를 무릅쓰고 달리기

"이제 와서 달리기를 한다고? 왜 달려야 할 나이에는 안 달렸으면서, 달리면 안 되는 나이에 달린다는 거야?" (30년 지기 A 씨)


"좀 비추인데요? 저도 이런저런 스포츠를 하지만 달리기는 정말 조심해서 하고 있어요." (운동광 후배 B 씨)


"무릎 나간다니까? 그러지 말고 나랑 자전거나 타지?" (남편 C 씨)


"달리기를요? 엄마가요? 왜요? (자녀 D 양)


최근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니 모두가 말린다. 하루키 선생만 응원해 준다.


일본의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예술가의 진짜 광기를 보여준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네 시간씩 글을 쓰고, 오후엔 10킬로미터를 달리는 생활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매년 마라톤에 출전하는 건 덤이다.


"이제부터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거 지인들은 다 안다. 몇 년 전부터 위험 신호가 왔다. 몸이 노화로 시들면서 수시로 찌뿌둥했다. 움직임이 없는 상태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생존본능에 따라 세포들이 움직이라고 명령했다. 넷플릭스 보면서 실내 자전거도 타고 유튜브 보고 홈트도 한다. 가끔 300미터 이하의 산에 오르기도 한다.


남편의 권유로 자전거를 몇 번 탔었다. 한강 라이드도 해봤다. 자전거에 오르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불안했다. 내리막의 가속이 무서웠고 오르막에서 삐끗할까 봐 두려웠다. 많은 라이더들이 바람소리를 내며 추월했다. 통제하지 못해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뾰족한 안장 탓에 엉덩이와 가랑이가 얼얼했다.


차라리 걷지 그래? 걷기는 일상의 연장선에 있다. 중력을 거스르는 엘파바처럼 근육을 한계까지 움직이고 싶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다른 도움 없이 두 발로 뛰어서.




집 앞 XX천은 2.5킬로미터 길이의 우레탄 트랙이 깔려있다. 학생 때 600미터 오래 달리기 한 게 마지막으로 정식으로 뛰어본 거다. 처음이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1킬로씩 끊어서 편도로 가보기로 한다.  


운동화라곤 아디다스 스탠스미스밖에 없었다. 유명한 테니스 선수 이름을 땄다니 운동화 맞겠지.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양손엔 작은 물통과 스마트폰을 들었다. 햇볕을 막기 위해 밀짚으로 만든 선바이저를 쓰고 선크림을 두텁게 발랐다.


집에서 트랙까지는 걸었다. 딱 트랙 위에서만 뛸 거다.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 뛸 수 있을까. 힘들어서 포기하면 어쩌지? 그러고 보니 두근거리는 느낌은 얼마나 오랜만인가.


달린 지 몇십 미터 만에 위기가 왔다. 상상보다 중력의 저항이 셌다. 몸이 달리기를 밀어냈다. 선바이저는 자꾸 흘러내렸다. 자존심 때문에 참고 뛰었다. 시나브로 몸이 풀려갔다.


온몸의 근육이 골고루 쓰이는 살아있는 느낌, 뱃살이 고민인데 자동으로 복근 운동되는 느낌이 좋았다. 익숙한 주변 풍경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지나쳐 갔다. 귀에는 규칙적인 발소리와 숨소리만이 들렸다. 육체가 힘드니 잡념이 사라진다. 이 맛에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는구나. 완주했을 때 성취감은 물론이고.


문제는 무릎이었다. 달리고 나니 열감이 가시지 않았고 욱신거렸다. 걸을 때 통증이 더했다. 이 정도 아프면 달리기는 포기해야 하는가.


나와 달리기는 왜 이제 만난 건지. 젊을 때부터 달릴걸. 아픈 무릎을 붙잡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 독극물을 마시고 죽는 찰나에 서로를 알아본 로미오와 줄리엣 같지 않은가. (날씬한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1996년 영화를 참고하시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달리기의 무릎 통증은 주로 과체중이거나 무리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운동을 너무 안 해서 다리 근육이 빈약한 탓이라고 맘대로 결론 냈다. 아이템으로 중무장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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