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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드로스치 Mar 12. 2024

환생국으로(1)

새하얀 공간에 누군가 눈을 감고 앉아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을 만큼의 흐릿한 존재의 인간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눈을 뜨고 일어나 허공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사방이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던 공간은 그가 걸음을 내밀자 그 걸음대로 또 다른 좁은 공간이 형성되고 기존에 있던 공간은 사라진다. 

아무리 움직이고 이동하여도 공간은 늘 처음 그대로 그가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는다.


언제부터 시작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느 날부터 그는 이곳에 존재하였다. 

죽음을 경험한 듯은 하다. 하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배고픔도 수면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기본적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생각은 멈춤이 없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견딜 수 없는 이 고독과 외로움의 벌은 언제까지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는 존재인지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늘 답은 없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뿐이기에 그는 또다시 자신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존재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갑작스러운 공기의 이동을 느꼈다. 

눈을 뜨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공간은 공간일 뿐 자신 외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공간의 흐름을 바꿨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할 일이 있다.”


‘누구냐?'


그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생각을 듣고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흐름이다.”


‘흐름?...... 당신은 ……?’ 


그는 생각을 멈추고 입술을 움직여보려 노력했다. 

셀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던 입술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마침내 그가 힘들게 입을 떼어 말을 했다. 

귀를 통해 듣는 자신의 목소리는 매우 이질적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쇳소리 같은 목소리에 그는 잠시 멈칫하다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신 인가?”


“어떤 인간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더군.”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인간인가?”


“너는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자,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이 아닌 자……  네 이름은 ‘논’이다.”


“논……”


논은 자신의 이름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자 순간적으로 자신이 또렷해짐을 느꼈다. 

논이 천천히 손을 들어 바라보자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보였다.

논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조심히 만져봤다.

논을 기다려 주는 듯 잠시 아무 말이 없던 목소리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라. 네가 할 일이 있다”


“네가 누구인지, 여기 왜 있는지는 네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흐름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네가 누구인지 진정으로 알게 되면 내가 너를 다시 찾으마.”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공간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며 밝은 빛이 보이는 틈이 생겼다. 

논은 그 빛을 향해 한걸음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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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


누군가 비틀거리는 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논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자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바깥의 강한 빛은 오랫동안 ‘무’의 공간에 있었던 논에게는 너무 강했다. 

겨우 눈을 떠 자신에게 내민 손 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가만히 손을 바라보던 논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손을 잡았다. 

몸을 일으킨 논은 힘들게 눈을 떠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이를 바라봤다. 눈을 깜박 깜박이며 빛에 적응하자 흐릿하게 보이던 인영이 차츰 뚜렷하게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탈출한 것을 축하해. 나는 디아라고 해. 당분간 네 안내를 맡았어,”


“디…아… 나는 논이다. 당신은……”


논은 말을 멈추고 디아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위에 있을 만큼 큰 키에 날씬한 몸, 하나로 높이 묶어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긴 머리, 깊은 눈매를 가진 가늘고 긴 눈과 유독 새빨간 입술은 아무것도 모르는 논이 바라봐도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당신은……천사 인가?”


천사라는 말에 디아는 옅게 미소를 띠었다.


“종족을 물어본다면 나는 천사는 아니야. 하지만 여기 살며 네라타와 천상계일을 돕고 있으니 인간들 관점으로는 천사일 수도 있겠네. “


“네라타? 천상계?”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며 이야기해 볼까? 널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거든.”


“나를? 왜지?”


디아는 대답대신 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앞장서 걸었다. 

논도 천천히 디아를 따라 걸었다. 

어느 정도 걷던 디아가 발검을 멈추고 뒤에 논이 잘 따라오는지를 보더니 앞을 향해 문을 열 듯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문이 생기고 디아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자 밝았던 공간이 어두운 터널로 바뀌었다.


“여기부터 이제 본격적인 네라타야. 네라타는 쉽게 말하면 지옥이야. 죽은 생명체들이 벌을 받는 곳이지. 생명체라곤 하지만 99,9퍼센트 인간들이야.. “


이야기를 듣던 논이 궁금한 표정으로 디아를 바라보자, 디아가 옆의 터널벽을 똑똑 두드리니 안을 볼 수 있는 유리창문이 생겼다. 

창문으로 다가서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용기를 내어 조심히 창을 통해 안쪽을 바라봤다.

창문 안에는 시뻘겋고 커다란 불덩이들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덮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망을 가려고 해 보지만 불길은 곧 사람들을 덮쳐버렸다.

불길이 덮쳐 괴로워하는데도 정작 죽음으로 가지는 않는지 사람들은 또다시 도망가고 불길은 또다시 그들을 덮쳤다. 

논은 창문을 통해 바라본 충격적인 장면에 놀라 뒷걸음을 쳤다.


“전생에 생명을 죽인……특히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야. 저기에 인간이 아닌 유일한 한 생명이 하나 있어.”


논은 디아의 말에 다시 창을 통해 살펴보지만 오직 도망가는 인간들과 그들을 덮치는 화염만이 보일 뿐이었다.


“저 불은 생명이 있는 불, 원래는 영혼세계에서 탄생한 조그마한 빛이었지. 악마에게 넘어가 현실에서 큰 화재를 일으켜 죄가 없는 많은 생명들을 앗아갔어. 그 벌로 저 불은 자신의 생명을 간직한 채 쉬지도 못하고 죄인들을 계속 쫓아가야만 하지. 억겁의 시간 동안 벌을 받고 있는 건 인간이나 불이나 마찬가지인 거야.”


디아는 다시 창문을 똑똑 두드려 없앤 뒤 가던 길로 방향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


“네라타는 대부분의 장소가 이렇게 지옥으로 구성되어있어. 거의 죄인들이 사는 곳이지. 이곳 일을 돕는 자들……우리는 말라크라고 불러. 말라크들이 머무는 곳은 네타라의 끝부분인데 우리도 지금 그쪽으로 갈 거야. 거기서 바로 천상계로 갈 수 있거든. 아 그쪽으로 가면 멀어서….. 이걸 타 보자고.”


디아는 통로 왼쪽의 움푹 들어간 공간을 가리켰다. 

가로는 2미터 세로는 3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 안쪽으로 2미터 정도로 파인 직육면체의 공간에 디아가 먼저 쏙 들어가더니 논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논이 발걸음을 옮겨 직육면체의 공간에 들어가자 갑자기 눈앞에 없던 투명한 유리문이 생기더니 직육면체의 공간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던 직육면체의 공간은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디아가  바닥을 두 번 탁탁 두드리자 바닥도 투명으로 바뀌고 바닥을 통해 그들이 지나온 불지옥이 보였다. 

뜨거운 화염이 디아와 논이 있는 공간을 감싸는가 싶더니 공간은 순간적으로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바닥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어느새 얼음과 눈만이 가득한 곳으로 바뀌었다. 끊임없는 눈보라가 힘겹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넘어뜨렸다. 군데군데 커다란 얼음이 있고 그 안에는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얼음 안임에도 그 안에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며 그곳에서 나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디아가 한기가 느껴진다는 듯이 양팔로 몸을 감싸며  이야기했다.


“이곳은 냉지옥이야. 정의롭지 못한자 들을 차갑게 얼려버리는 곳이지. 나는 지옥들 중에 여기가 제일 싫더라. 이제 다 왔어.


빠르게 이동하던 공간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보이던 장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다시 처음처럼 사방이 막힌 채로 조금 이동하던 공간이 완전히 멈추자 눈앞을 가로막던 벽이 사라졌다.

공간을 타고 이동했지만 도착한 곳 역시 처음에 출발한 장소와 똑같이 어두운 통로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논이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공간에 가만히 있자 디아가 먼저 나가 한 통로 안으로 논을 안내했다. 

통로는 끝이 벽으로 막혀 있었지만 디아는 망설임 없이 벽 쪽으로 다가서 벽을 밀었다. 

벽이 회전하며 생긴 출입구를 따라 디아가 앞장서 들어가고 논도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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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통과해 들어간 곳은 논과 디아과 통과했던 네라타 지역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분명 실내 인 듯한데 높은 천장은 어떻게 보면 마치 하늘과 같았다.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구름이 이동하는 것을 본 논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다 그만 앞에서 오는 커다란 검은 털뭉텅이 같은 생명체를 보지 못했다. 

부딪힌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 생명체는 흔적도 없이 검은 연기로 사라져 버렸다가 논을 통과하고는 다시 커다란 털뭉치 같은 모습을 갖춘 채 이동을 했다.


뒤돌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논은 이번에는 무언가 반짝이며 자신의 곁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냥 빛인 거 같은 데 그것은 깜박 깜박이며 계속 이동을 하더니 논 근처에서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 

분명 깜박이는 빛 외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디아님, 안녕하세요.”


“안녕 빛"


빛은 잠시 제자리에서 깜박깜박하더니 논의 주변을 빙그르르 돌았다.


"이 분이 바로 그 삼신님이……?"


빛이 무언가 말을 이으려 하자 디아가 재빨리 말을 잘랐다.


“혹시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었어, 빛?"


"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네라타에 가는 길이에요.

 케르베로스에게 확인해 봐야겠지만 조건이 비슷한 영혼이 있는 것 같아요."


빛의 말을 들은 디아의 눈에 잠깐동안 붉은 이채가 돌았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빛은 깜빡 깜빡이며 재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곳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논 옆으로 그 순간 무언가 쌩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분명히 개인 듯한데 머리가 세 개가 달린 듯했다. 

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논을 디아가 살짝 잡아당겼다.


“우린 저쪽으로 갈 거야”


디아가 가리킨 곳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자들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모습을 한 생명체들이 줄을 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긴 네라타와 천계의 경계지역이야. 저들과 같은 말라크들이 머무는 곳이지.”


“말라크?”


“말라크들은 지옥과 천계에 살며 이곳 일들을 하는 자들이지. 나도 말라크야. 

이곳은 정화수로 샤워를 하는 곳이야. 진짜 벗고 씻는다는 것은 아니고. 네라테에서 혹시나 묻었을 인간이나 다른 죄인들의 죄업을 씻어 내는 거지. 샤워를 마쳐야만 천상계로 들어갈 수 있어. 깨끗이 씻어 내자고.”


디아가 말을 마치며 앞으로 이동하자 디아 앞에 있던 털뭉치가 앞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털뭉치 앞에는 앞뒤가 뚫려 있고 위와 양옆만 막혀 있는 투명한 부스 같은 것이 있었다. 

털뭉치가 앞으로 가자 부스가 자동으로 옆으로 커지더니 털뭉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털뭉치가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위에서 물방울 같은 것들이 쏟아졌다. 

쏟아진 물방울들은 털뭉치에 닿자마자 마치 물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털뭉치 또한 젖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잠시 있을 뿐이었다. 

위에서 나오는 게 진짜 물인가 싶어 논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부스 위쪽을 바라보았지만 분명 물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물이 멈추자 디아가 앞으로 이동하였고 논도 디아를 따라 앞으로 이동하였다. 

부스에서는 방금 샤워를 마친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커다란 검은 털뭉치가 있었는데 부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새하얗고 조그만 털뭉치였다.  논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조금 전에 보았던 커다란 검은 털뭉치는 보이지 않았다. 

논이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이동하지 않자 뒤에 있던 남자가 이동하라는 듯이 눈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앞에는 이미 디아가 다른 샤워부스에 들어가 있었다.

논은 앞으로 걸어 부스 안으로 들어가 물이 쏟아지길 기다렸다. 

그러나 부스 안에서는 물방울이 쏟아지지 않았다. 

논이 이상한 생각에 위를 쳐다보자 물방울들이 자신의 바로 머리 위에 모두 멈춰서 있었다. 

마치 물방울들이 말을 하는 것처럼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정화수로 샤워를 할 수 없습니다.”


“왜?”


논은 물방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이곳은 천상계의 생명체들이 네라타의 기운을 씻는 곳, 당신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친 물방울들은 방향을 바꿔 위로 이동하더니 부스의 위쪽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 물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논은 부스 밖으로 나와 디아에게 걸어갔다.

샤워를 마친 디아는 묶었던 머리를 풀고 있었는데 머리카락 사이로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뾰족하고 빨간 뿔이 두 개 보였다. 

디아는 뿔에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게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더니 다시 머리를 묶었다. 그 모습을 논이 바라보고 있자 디아가 자신의 뿔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이거? 이게 내 본모습이야. 샤워를 하고 나면 잠깐 본모습을 유지해. 천사는 저걸 가지고 있고.”


디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방금 샤워를 마친 남자가 양쪽 옆에 하얗고 커다란 날개 두 개를 가진 채 부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악마는 이걸 가지고 있지.”


“악마?”


“응, 나는 악마야. 이곳 천상계, 천국에 사는 유일한 악마”


디아가 밝게 웃으며 논을 바라봤다. 

그 미소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순간 논은 디아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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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는 앞서 걸어가며 정화수로 목욕을 한 후에 나오는 본모습은 조금 있다가 사라지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본모습으로 그대로 유지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천상계에는 보통 천사들과 천상계에서 탄생한 생명체들이 주로 살고, 자신처럼 예외적으로 허락받은 이들도 사는데 자신만이 유일한 악마이고 그 외는 인간들의 영혼이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천국에 왜 인간이 있냐는 논의 질문에 디아는 곧 알게 될 거라고만 말하고 어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려는 그 순간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논은 자신을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리는 커다란 세 개의 개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을 치다 디아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플루토~"


디아를  본 세 머리는 반갑다는 듯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몸통의 꼬리를 격하게 흔들고는 디아의 부축으로 일어나는 논을 보더니 머리 중에 하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머리에게 말을 했다.


“존재하지 않는다며? 존재하는데?”


“영혼이 살아있는데 그럼 없겠냐?”


“실재는 없다니까! 영혼이 살아있는 게 아니지!”


"눈앞에 있는 저건 영혼이 아니고 뭐냐 귀신이냐?"


두 머리가 서로 옥신각신하며 말을 하는 가운데 조용히 있던 머리 하나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낮게 으르렁거렸다. 

조용하지만 음산한 그 소리에 두 머리는 언제 떠들었냐는 듯 대화를 뚝 멈추고 딴청을 부렸다.


"디아, 너를 찾았다. "


"나를? 왜?"


"삼신님을 만나게 해 다오."


"만나게야 해 즐 수 있지만 넌 네라타를 떠날 수 없잖아."


디아의 말에 플루토의 두 머리가 잠깐 멈짓하더니 논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 그렇지. 못 가지. 넌 가지니?”


“아니, 나도 못 가지. 그게 그런데…”


두 머리가 머뭇머뭇거리며 가운데 머리의 눈치를 보았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디아, 네게만 할 이야기가 있는데……"


가운데 머리가 조용히 말하자 디아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난감하다는 듯이 논을 바라봤다.


"논, 미안한데 잠깐만 이야기 좀 하고 와도 될까?"


"길게 걸리진 않을 거다."


플루토가 살살 꼬리를 흔들며 이야기하였다.

논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가라는 듯 손짓으로 그들을 보냈다. 

디아와 플루토가 멀어지자 논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야기를 하며 걸어올 때는 위가 하늘처럼 보이지만 실내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주변을 보니 분명 바깥이었다. 

길 건너에는 푸르른 잔디와 나무가 가득한 공원도 보였다.

디아가 열려고 했던 문은 실내공간에서 나가는 출구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펴보니 어딘가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 같아 보여 논은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한번 열어 볼까 하는 생각에 문 손잡이에 손을 데려는 순간 누군가 논의 옷을 잡아끌었다. 

논이 놀라 뒤를 돌아보자 눈이 커다란 조그만 소년이 논의 옷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논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을 치자 소년은 한 발짝 앞으로 걸어 아무 말 없이 문을 가리켰다.


“열어 달라고?”


논의 질문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논이 조심스레 문을 열자 소년은 문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당황한 논은 문안을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하얀 구름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 아이를 찾아보려고 발을 내딛을까 했지만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름 속으로 발이 쏙 빠져버릴 거 같다는 생각에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킁킁 데는 소리가 났다. 문을 닫고 뒤를 돌아보니 플루토의 머리 셋이 바닥과 여기저기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혹시 작은 아이를 봤나?”


플루토의 가운데 머리가 논에게 물어보았다.


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운데 머리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이곳에 오다니 좋지 않아.”


가운데 머리의 말에 양쪽에 있던 머리들이 이야기했다.


“인간?”


“게가 또 왔어?”


“위험하다니까 왜 자꾸 온데?”


“이게 벌써 몇 번 짼 건지? 왜 살아있는 애가 자꾸….”


“살아있는 건 아니지… 혼……”


“야!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네가 먼저……”


“그 아이가 인간이야?”


논의 질문에 자기들끼리 말을 하던 머리들은 일제 입을 꽉 다문 채 논의 질문을 못 들은 척 딴 곳을 쳐다봤다. 가운데 머리가 논을 바라보더니 입을 떼었다.


“나는 플루토라고 하네”


“나는 플루토”


“나도 플루토”


“나는 논”


근엄한 표정과는 다르게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는 플루토를 보며 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출발할까?”


어느새 다가온 디아가 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하였다. 

플루토가 문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자 디아는 플루토에게 눈인사를 한 후 입구의 문을 활짝 열고 논이 들어갈 수 있게 문고리를 잡은 채 한쪽으로 섰다. 

문 바깥으로는 하얀 구름들이 끝도 없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논은 발끝으로 구름을 살살 밟아보았다. 

푹신한 느낌에 아래로 쏙 빠질 거 같다는 생각에 논은 눈을 질끈 감고 첫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살짝 눈을 떠보니 논은 한 발을 뗀 채로 차마 구름을 디디지 못한 채 양손으로는 문을 꽉 잡고 있었다.


“빠지지 않아.”


디아가 웃으며 들어와 논의 옆에 서서 한 손을 내밀었다. 

논이 디아가 내민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자 뒤에서 플로토의 머리가 가볍게 논의 엉덩이를 밀었다. 

논은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조심히 허공에 있던 발로 구름을 디뎠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푹신함에 발이 쑥 들어갔지만 이내 탄탄한 바닥이 발을 받쳐줬다.  

논은 디아의 손을 떼고 다시 한 발짝 내밀며 구름을 살펴봤다. 

구름 틈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발을 잘못 디뎠다간 저기로 빠지고 말겠다는 생각에 논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제일 커다란 구름 위로 가서 서 있었다.


“이제 이동할 거니까 편하게 앉아도 돼.”


논의 곁으로 온 디아의 말에 논은 조심스레 구름에 몸을 맡겼다. 

푹신한 구름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디아가 공중에 손바닥으로 선을 긋자 그 길을 따라 투명한 창의 지도가 생겼다.


“환생국”


디아의 말에 투명한 창은 이내 내비게이션 모드로 바뀌었고 구름은 서서히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잘 가”


“곧 보자”


“곧 갈게” 


세 플루토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공중으로 높이 솟구친 구름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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