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Honeymoon’
새하얀 침대보위에 새빨간 장미잎으로 적힌 글자를 보고 지아와 상우는 마주 보며 웃었다. 발리의 빛나는 날씨처럼 빛나는 결혼생활이 시작되기를 … 상우는 침대 옆에 놓여있던 샴페인 병을 흔들었다.. 뽀글뽀글 샴페인마저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듯했다.
'솨아~찰싹~솨아~’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쏴아~ 파도에 맞춰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갔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에 지아는 상우를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앗, 차가워"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첨벙첨벙 수영하며 자기도 모르게 지아와 상우에게 물을 잔뜩 튕겼다. 아이의 엄마가 다가와 사과하며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지아와 상우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따사로운 햇살에 싱그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첫 시작을 알리는 약간의 긴장감이 지아와 상우의 마음에 가득 차 올랐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지아가 음식을 뜨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끙끙 데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 만났던 작은 아이가 테이블 위의 음식을 뜨려고 하는데 키가 작아 영 뜨지를 못하고 있었다.
“Can I help You?”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테이블 위의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가리켰다. 지아는 고기를 덜어 아이의 접시에 올려주고 또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며 아이와 함께 천천히 음식을 골랐다. 그런 지아를 바라보는 상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야. 난 지금은 계획이 없어.”
식사를 하며 상우가 넌지시 아이계획에 대해 묻자 의외로 지아는 아이계획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당분간 일에 매진하고 싶어. 자기도 알다시피 지금 내 일 시작한 건 얼마 안 되었어. 이제 수입이 좀 안정적으로 들어오는데, 지금 아이를 갖게 되면 내가 좀 힘들 거 같아. 사실 자기와 결혼도 일 때문에 미루려고 했잖아. “
“그래, 하지만 너도 나도 나이가 있으니 조금 더 건강할 때 낳는 게 좋으니까 자연스럽게 갖는 게 어떨까 해서… 아까 보니 아이 무척 이뻐하는 거 같던데…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회사 남자육아휴직에 관대한 편인데…”
“아냐, 난 지금은 아닌 거 같아. 우리 신혼도 좀 즐기고… 나 일, 조금만 더 안정되면 그때 갖자. 2년 뒤쯤… 사실은 나 노키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는걸… 우리 인생 즐기기도 바쁜데 아이가 생기면 못하는 게 많으니까… 아이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내 아이에 대해는 생각해 본 적 없어.”
상우는 지아의 단호함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분명 달콤한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커피의 씁쓸한 맛만 입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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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환생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논은 환생궁 입구로 들어서는 새로운 영혼들을 맞이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플로피도 논의 옆에 서서 꼬리를 흔들며 영혼들을 환영해주고 있었다. 논과 플로피가 파트너가 되어 환생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서툰 것이 많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니 논은 어느새 환생국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갔다.
오늘은 저승에서 재판 후 환생국으로 옮겨온 영혼들을 맞이하는 날로 처음으로 디아나 다른 말라크의 도움 없이 논과 플로피가 안내를 맡기로 하였다. 스무 명 남짓한 영혼들과 눈을 마주치며 일일이 인사를 하고 마지막에 나이가 지긋한 영혼과 인사를 나누고 안내를 위해 돌아가려는 순간 마지막 영혼이 뭔가에 놀란 듯 뒷걸음을 치더니 갑자기 주저앉았다.
“영혼님, 괜찮으세요?”
“킁… 너 때문에 영혼님이 놀라셨잖아. 플로피"
“너 때문이다.”
“너 때문이지…”
“플… 로… 피…! 플로피들아!.”
논은 플로피의 머리 셋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며 노인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영혼님?”
“괜… 괜찮습니다.”
노인은 부축을 해주는 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일행들에게 다가섰다.
논과 플로피는 가디언에게 영혼들에 관한 정보를 인수받고 영혼들을 환생 상담지와 연결된 문으로 안내를 하였다. 영혼들은 이곳에서 환생국에 대한 안내를 받은 후 영혼들이 사는 마을에 각자 거주지를 배정받게 된다. 논과 플로피의 일은 이들을 환생 상담지로 모셔간 후 환생국에 대한 안내를 하는 것까지였다.
문을 통과한 후 환생 상담지로 이동하자 디아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혼들과 함께 넓은 강당으로 이동 후 디아의 도움을 받아 논은 환생국에 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재판이 끝나고 여기 계신 영혼님들은 모두 환생이 결정되신 분들이셔요. 오늘 오신 분들 중에서는 이제 첫 번째 삶을 사신 분도 계시고 일곱 번째의 삶을 준비하시는 분들까지 다양하게 계시는데요. 지금은 모두 직전의 삶 기억만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물론 죽음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잊기를 원하신 분들은 그 순간의 기억은 지워졌을 겁니다.
여러분은 조금 뒤 영혼님들이 환생을 기다리며 거주하시는 마을로 안내받으실 건데요. 그곳에 머무시다가 추후 상담을 받으시면서 전생의 기억들을 모두 찾게 되실 거예요. 그 후 영혼님들이 쌓은 선행 포인트에 따라 환생의 조건들을 고르실 수 있습니다. 상담 후에는 영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이곳에 남아계시다가 환생을 하셔도 되고, 영혼의 휴식처에서 원하시는 만큼 휴식을 취하시다가 환생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들은 영혼님들이 거주하게 되시는 자택에서 다시 안내되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물어보실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저와 이 큰 개 플로피, 그리고 여기 계신 말라크 님들을 불러주시면 됩니다. “
안내를 마친 후 영혼들의 궁금한 점들에 대한 답을 한 후 영혼들과 함께 영혼들이 사는 마을로 이동을 하였다. 이곳은 영혼들은 들어올 수 없는 말라크들의 마을과 달리 논과 플로피 그리고 다른 말라크들도 언제든 방문 가능하였기에, 논과 플로피는 오늘과 같이 안내가 있는 날뿐만 아니라 일이 바쁘지 않은 날이면 이곳에 들러 아이들의 모습을 한 영혼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모두에게 안내를 마친 후 다시 환생상담서로 돌아가는데 한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디아의 모습이 보였다. 논과 플로피는 디아를 잠시 기다렸다가 함께 환생 상담지로 이동을 하였다.
“저 영혼은 아까 너를 보고 넘어졌던 노인 아닌가?”
“너를 보고 넘어졌지.”
“아니지, 너지.”
또다시 투닥거리는 플로피를 보고 논은 그들이 귀엽다는 생각에 세 마리의 머리를 빠른 속도로 싹싹 쓰다듬어줬다. 플로피는 기분 좋다는 듯이 힘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아까는 아무 질문도 없으셨는데, 뭘 여쭤보신 거야?”
논이 플로피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디아에게 물어봤다.
“응… 현생의 기억을 모두 지우는 법은 없냐고…”
“아… 기억을 되살리는 게 아니라 지우기를 원하는 분도 계시는 구나,”
“음… 보통 영혼들이 죽음을 겪은 후 천국행이나 환생행일 경우, 네가 아는 것처럼 원한다면 죽음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는 경우가 많아. 고통스러운 기억을 주고 싶지 않은 신의 배려랄까… 지금은 그 외 현생의 기억은 다 가지고 있는 상태이지. 우리가 상담할 때 전생의 기억을 모두 살리잖아. 그때 되살린 기억들을 다시 잊고 싶어 하는 영혼들은 있어. 모든 삶이 편안한 건 아니니까.”
“환생을 결정하고 나면 저절로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냐?”
“그렇지 환생이 결정되고 영혼의 씨앗이 되면 생각과 기억, 인간형태 자체가 사라지니…그런데 이곳에는 상담 후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계신 분 들도 있잖아. 그분들 중 일부는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지만 일부는 기억을 지우지.. 대부분 아이의 모습으로 계신 분들은 기억을 잊기를 선택하신 분들이야. 그런데 기억을 되찾기 전에 현생의 기억부터 지워달라는 건 사실 잘 없는 경우야.”
“왜? 현생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으면 원할 수도 있지 않아?”
“그래, 원할 수 있지. 그런데 보통은 전생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하기 마련이야. 그래서 전생의 기억을 되살린 후 그리고 기억을 지워달라 하지.”
“아… 그렇구나. 그럼 현생의 기억을 지금 지우는 방법은 없어?”
“환생상담을 해야 하니까… 현생의 기억을 잊어버리면 사실 상담이 무의미해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현생의 삶을 그대로 살 수도 있으니…그래서 최대 상담날짜를 빨리 잡기로 했어. 저 영혼님은 이번주내로 상담을 하실 거 같아. 자… 여기서 헤어져 얄 거 같네. 난 아직 상담소에서 할 일이 남았어. “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환생 상담지에 도착한 그들은 인사를 하고 디아는 상담소 안으로 들어가고 논과 플로피는 환생궁으로 가는 출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참… 논, 네가 전에 꿨다는 그 꿈 말랴…”
가운데 플로피가 말을 하려는데 양쪽 플로피들이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그래…그 꿈… 우는 꿈… 지금도 꾸나?”
“울지 마라… 논…”
“지금 우는 게 아니잖아.”
“꿈속에서 울지 말라는 거지…”
“응… 내가 우는 건 아냐, 플로피. 어떤 여자가 계속 울어… 나는 달래려고 다가서는데 그러면 계속 깨. 그런데 말랴… 플로피"
“말해라, 논"
“아까 디아 말을 듣다 보니 그게 어쩌면 내 전생? 현생? 의 기억이 아닐까 싶어. 난 기억을 다 잊어버렸잖아. 전생도 현생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어쩌면… 내가 무의 공간에 들어가기 전 나의 모든 기억을 잊기를 내가 선택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
이야기를 하며 같이 걷던 플로피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그건 아니다. 논"
“모르네… 논… 그건 네가 선택한 게 아냐.”
“죄인은 선택할 수 없어. 넌 무의 공간에서 벌을 받았잖아.”
“벌을 받은 자는 선택할 수 없어?”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하며 말을 할 듯 말 듯 세 마리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마을을 먹은 듯 가운데 플로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옥에 가는 죄지은 자들은 그들의 행복했던 기억은 모두 지워진 채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간직하게 돼. 그들은 영원히 기억을 지울 수도 그리고 다시 찾을 수도 없지. 그리고 너나… 음… 나처럼 지은 죄를 신이 선택한 벌로 받는 자들은 기억을 모두 지우게 되지. 때가 되면 다시 기억을 찾게 되지만 그전까지는 전생도 현생도 기억할 수 없어.”
“플로피… 너도 벌을 받는 거야?”
“그랬었다. 우리는 … 긴 벌을 받았지.”
“그럼, 이제는 그 벌이 끝난 거야?”
“글쎄…”
플로피의 세 머리는 대답을 미룬 채 논보다 앞서 환생궁으로 통하는 출구로 들어갔다. 문 옆의 꽃밭에서 나는 진한 꽃향기가 논의 코 끝을 간지럽혔다.
영혼의 꽃밭에 허가를 받아 입장이 가능한 논과는 달리 플로피는 일반꽃밭까지만 출입이 가능했기에 플로피는 리셉션에서 가브리엘라를 돕기로 하였다.
논은 자신에게만 허락된 문을 통과해 영혼의 꽃밭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영혼의 꽃만이 풍기는 진하고 달콤한 향기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달콤한 향까지, 과거의 기억이 있던 없던, 이 순간만큼은 꼭 기억해야지 생각하며 논은 평화로운 풍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영혼의 꽃들은 일반 꽃들과 달리 벌레가 달라붙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았지만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햇살이 좋으면 그 크기가 더욱 커지고 밝은 빛을 내며 더욱 진한 향기를 풍겼다. 그만큼 꽃 속에서 잠든 영혼들도 더욱 평화롭고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논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들려 꽃들을 관리했다. 꽃밭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꽃 하나가 유달시리 밝은 빛을 내며 춤을 추듯 살살살 흔들거리고 있었다. 논은 그 꽃을 더욱 잘 보기 위해 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옆꽃들과 비교해 보았다. 분명 어제까지는 이런 꽃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꽃만 다른 꽃들보다 오 센티 정도는 키가 크게 솟아 올라와있고 꽃 잎 하나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이 꽃은 바람이 불지 않는 순간에도 춤을 추듯 멈추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살랑거리는 꽃잎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논은 손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 끝에 꽃잎이 닿자 어디선가 ‘까르륵' 아기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논은 다시 한번 꽃잎에 손가락 끝을 대어 보았다. 또다시 아기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논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꽃을 바라보았다.
“환생 준비가 끝난 꽃이에요. 이 아기를 위해 점지 준비를 해야겠네요.”
어느새 삼신이 다가온 삼신이 논 뒤에서 함께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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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응… 몸살 기운 있다며 너도 쉬엄쉬엄 해. 사랑해"
“사랑해"
지아는 상우가 나가자 쪼르르 베란다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밖으로 나온 상우가 보인다. 지아는 상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해서 주말도 쉬지 않고 바쁘게 달린 탓인지 지아는 며칠 전부터 몸이 으실거리고 좋지 않아 이번주는 집에서 근무를 하기로 하였다. 최근에 좋아하게 된 과일향이 진한 허브차를 머그잔 가득히 타서 책상에 앉아 이번주 마무리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데 문득 책상에 있는 작은 달력이 눈에 띄었다. 지아는 다시 한번 달력을 보고 날짜를 체크하고는 뭔가 깨달은 듯 주섬주섬 겉옷과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 어떡해….”
양성이었다. 새빨간 두줄.
서둘러 나가 약국에서 구입한 임신 시약기 다섯 개는 모두 원망스럽게도 새빨간 두줄을 보였다.
얼마 전에 따낸 큰 계약부터, 자잘한 일들까지 도저히 일 년 안으로는 쉴 틈이 없는데….
한숨을 쉬던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