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로 이 분들이 후보라고요?”
논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삼신과 함께 본 영상에서 첫 커플의 여성은 임신을 거부했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에게 수술에 대해 이야기했고 부부는 이 주제로 크게 말다툼을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커플은 임신을 원하기는 했지만 논이 보기에 전생에 선행을 많이 한 깨끗하고 귀한 영혼의 부모로서는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혼분이 원하시는 환생의 첫 번째 조건이 뭔지 아시나요?”
삼신이 미소를 지으며 논에게 물어봤다.
논은 환생할 영혼의 정보가 적힌 문서에 나왔던 글을 기억해 냈다.
“부모의 사랑…이 우선 이셨죠. 그 무엇보다 듬뿍 사랑받고 싶다고요.”
“네, 맞아요. 이 세부부는 그 누구보다 아이를 듬뿍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부족함이 보이는 부부들이지만 환생하실 영혼님이 고르신 그 외 조건들에도 모두 맞는 분들이랍니다.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환경,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모님 그리고 형편이 나쁘더라도 점차 좋아질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나쁘지 않은 외모를 바라셨는데 세 커플 모두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계시죠.”
“하지만…첫 번 째 부부는… “
‘상우 씨 때문이잖아. 제대로 피임만 했어도… ‘
‘난 도저히 지금 아이 못 낳아. 병원 가자, 우리'
‘이제 착상한 거잖아. 수술할게…간단하데…’’
논의 귓가에 첫 부부의 아내 목소리가 맴돌았다.
삼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들도 처음이랍니다. 한번 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선 두려움을 갖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랍니다.
이 세 부부 중에 어떤 부부가 환생할 영혼님께 가장 맞는지는 다음번 회의 때 정해보도록 하지요.”
삼신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도 논은 일어나지 못하고 세 부부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첫 부부는 아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상황만 아니라면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각자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었으며 무엇보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각자 하는 일에서도 능력 있는 이들이었고 특히 아내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부분을 살려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으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아이보다는 일에 집중할 가능성이 보였다. 특히 아내는 현재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논은 첫 번째 부부의 아내, 엄마가 될 사람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두 번째 부부는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딱 좋을 사람들이었다. 부부가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고 온화한 사람들이었다. 장애를 가졌지만 아내는 글을 쓰고 남편은 직장을 다녀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부부가 다 청각장애를 지닌 데다 양가 일가친척이 없어 아이가 태어난다면 집안에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세 번째 부부의 집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 하지만 다복한 집이었다. 부부는 신앙심이 깊은 목회자부부이고, 일곱 명의 아이들은 다투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서로를 위하며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식구가 많은 탓에 매번 새로운 사건이 생기고 형편 또한 넉넉지 못해 새 옷 한번 사지 못하고, 가족 다 함께 배불리 외식한 번 못하는 형편이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사이가 좋다지만 이 집의 여덟째로 태어나는 것이 환생자를 위한 좋은 선택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논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들고 회의실 안을 왔다 갔다 하며 후보 부부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영혼의 꽃이 환생할 시기가 되면 삼신과 말라크들은 점지를 준비하게 되는데, 랜덤점지의 경우는 말라크들이 영혼의 정보와 현생의 부모 정보가 담긴 정보들을 돌려 프로그램으로 매치를 하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 업무는 삼신과 함께 점지국에서 일하는 말라크들이 하고 있는데 일대일로 하는 점지는 말라크의 도움 없이 모두 삼신이 일일이 선택한다.
즉, 오늘 선택된 세부부 역시 모두 삼신이 직접 선택을 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분명 논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논은 다시 한번 그들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논은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켠 후 첫 번 째 부부의 영상을 살펴봤다. 환생국에서는 점지 대상의 예비 부모의 행동 중 자녀와 관련된 모습을 일부 볼 수 있는데, 이는 삼신과 삼신의 허락을 받은 말라크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논은 지금 상담을 하고 있는 영혼의 예비 부모에 관해서만 임시적으로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영상 속의 장소는 어두운 방안이었다. 커튼이 모두 쳐져있고 빛이라곤 침대 옆의 조그마한 독서등이 다였다. 어둠이 가득한 방에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논은 이 장면이 자신의 꿈속 장면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둠 속에 울고 있는 여자는 늘 보던 그녀가 아니라 첫 번째 부모 후보, 지아였다.
어둠 속에서 지아가 침대 위에 앉아 흐느껴 울고 있었다. 문틈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더니 문을 열고 상우가 방 안으로 들어왔지만 흐느끼는 지아에게 말을 걸지 못한 채 침묵 속에 서있기만 했다.
영상을 보다 답답한 마음에 논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화면을 껐다. 이건 아니다. 절대 첫 번째 부부가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 원하지도 않은 아이를 갖는 것은 부부에게도 아이에게도 행복이 될 수 없다고 논은 생각 했다.
논은 다른 부부의 영상도 모두 확인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류를 정리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논은 집으로 가려다 디아와 플로피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환생 상담지로 발을 돌렸다.
멀리서 디아가 옆의 일행과 상담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행분은 전에 논과 함께 마주쳤다가 넘어졌던 노인영혼인듯했다. 현생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더니 하루라도 빨리 상담을 받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고 논은 디아를 기다리기 위해 디아가 상담하는 곳 근처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어디선가 안정적이고 깊은 숨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논이 앉은 소파 뒤편에 플로피가 고개를 맞다고들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논은 플로피들이 세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잠을 자면서도 플로피는 여전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사람들 대화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보니 어느새 논도 모르게 잠이 들어있었고 그 사이 잠을 깬 플로피가 논의 발치에 앉아있었다. 논은 플로피를 보며 미소를 짓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함께 디아에게 다가갔다.
디아 옆의 영혼이 디아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리는 데 들어갈 때의 노인 모습은 사라지고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 순간 논의 머릿속에 전에도 울렸던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과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꺼져버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으면. 너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나도 내 삶을 원해.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순간 논의 눈에 앞에 있던 영혼이 좀 더 젊고 앳된 모습을 지닌 채 두세 살짜리의 아이를 두고 저주를 퍼붓는 모습이 보였다.
“음… 마… 엄.. 마…”
말도 잘하지 못하는 아기는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는 여자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여자는 매정하게도 아기를 내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엄… 마….”
논은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깝짝 놀랐다.
“논… 우나?”
“논.. 눈물이 난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논은 영혼에게 다가갔다.
“엄… 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논 앞의 영혼은 멍한 눈빛으로 논을 바라봤다.
“논, 이 영혼분은 이미 지난 전생들과 이번 삶의 기억 모두 잊어버리셨어. 이제 이 분은 환생준비에 들어가셔야 해. 안돼. 네가 기억을 찾았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이분과 얽혀있다 해도… 더 이상은 안돼…”
디아의 말림에도 논은 자신도 모르게 앞에 있는 여성에게 한발 짝 더 다가섰다.
“엄마…. 날…. 날…”
논의 눈앞에 과거의 일부분이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라고 불리는 젊은 여자는 논을 버리고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논을 그렇게 버려두고 울며 뛰어나간 그 여자는 그 뒤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논을 버렸다.
“지금… 영혼님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모습을 유지하는 거잖아요.
30대? 이 모습이…이 모습이 제일 행복한 거라면…. 난…”
“안돼 , 논. 안돼…”
논의 귀에는 디아의 말림이 들리지 않았다. 뒤에서 플로피가 옷자락을 물고 있었지만 논은 또다시 한걸음 영혼에게 다가섰다.
“ 어떻게 지금 이 모습이 행복하지?…. 어떻게 이곳에 왔지….. 당신은 당신은..”
“안돼 논… 안돼!!!!”
“안 된다.. 킁… 안된다.”
손부터 시작해 온몸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찾아온 분노가 논의 모든 몸을 발발발 떨게 하였다. 이 분노를.. 이 화를…. 뿜어야 한다. 이 건 내 몫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다. 논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앞의 영혼에게 저주 섞인 말들을 퍼부었다.
“당신은 나를 버렸잖아! 당신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되잖아. 아기를 버렸잖아. 지옥에 갔어야지. 아니면 여기 왔더라도 행복한 모습이 적어도 전생은 아니었어야지. 어떻게 나를 버리고 행복할 수 있냐고!! 당신 같은 인간은 환생을 하면 안 되지!”
그 순간 어디선가 쨍그랑하는 소리가 낫다. 앞의 영혼이 모습이 깨지듯 사라지고 빛이 약한 보석으로 바뀌더니 다시 한번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약한 빛도 사라진채 작은 씨앗이 반 쪼개진 채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안돼!!!”
디아가 소리를 지르며 씨앗을 들었지만 이미 쪼개진 씨앗은 붙어지지도 다시 빛을 내지도 못했다.
논은 털썩 주저앉은 채 마냥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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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아 님? 성지아 산모님?”
간호사가 부르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입술만 뜯고 있는 지아의 손을 상우가 부드럽게 움켜잡았다.
“들어가자.”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진료실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자 의사와 상우가 들어왔다. 의사가 초음파기계를 데자 스크린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6주 차 되셨습니다. 아기집도 건강해 보이고요. 여기 보이시죠? 아기가 잘 자리 잡고 있네요. 어디 보자…”
의사가 기계를 이리저리 돌리자
‘쿵… 쿵… 쿵 …. 쿵… '
힘찬 심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기의 심장소리에 지아와 상우의 심장도 쿵쿵쿵 터질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기 심장소리도 좋네요. 심장소리는 녹음해서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지 들어 실 수 있습니다,”
의사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인쇄하더니 산모수첩에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넣어 지아에게 건넸다. 까맣고 하얀 것 밖에 없는 사진을 물끄럼히 바라보다 손을 내미는 지아의 손이 떨렸다.
“감사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감사의 인사에 지아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둘은 말이 없었다. 지아는 산모수첩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가를 반복하고 상우는 말없이 운전만 하였다. 주차를 하고 차에 내리기 직전… 지아가 상우를 붙잡았다.
“취소하자"
“응?”
“취소할게…그 병원… 그 수술… 안 할래… 상우 씨… 나 안 할래…”
“지아야…”
“미안해… 미안해… 아가… 엄마가… 미안해…”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울음에 지아는 어쩔 줄 모르며 아직은 납작한 배를 어루만졌다. 상우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지아를 안았다. 일단 진짜 임신인지 확인부터 해보자고 겨우 설득해서 나온 병원이었다. 그냥 대충 알아본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상우는 출산율이 높고, 산모들의 평이 좋은 개인병원을 찾아 지아를 안내했다. 임신을 확인하고도 지아가 원하지 않으면 수술을 할 병원은 따로 예약을 했다고 말은 해뒀지만 사실 상우는 마음이 약한 지아가 흔들리기를 내심 기대고 있었다.
차에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다 부부는 서로를 다독이고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상우는 미소를 지으며 지아 앞의 보관함을 열었다. 보관함 속에는 조그마한 아기 신발이 한 켤레 있었다. 신발을 꺼내드는 지아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잔뜩 걸려있었다.
“저의 엄마아빠라고요?”
어린아이의 모습을 띄고 있는 영혼이 스크린 속에서 아기 신발을 든 채 활짝 웃고 있는 지아와 상우의 얼굴을 보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스크린 속의 부부는 임신을 축하하며 작은 파티를 열고, 소소한 아기 선물들을 사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였다.
“네, 영혼님, 누구보다 영혼님을 사랑해 주실 부모님입니다.
확인차 다시 영혼님이 환생조건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환경, 가정형편이 나쁘더라도 좋아질 수 있는 환경,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가족들…그리고 준수한 외모를 원하셨죠?”
“네, 맞습니다. “
“그리고… 전생…그 전의 삶에서 부모님과 다시 만나고 싶으시다는 바람도 있으셨고요."
“네. 지금은 기억을 다 잊어버렸지만 제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 중에서는 그전 삶의 부모님에게 무척 사랑받던 추억이 있습니다. 저분들이 그럼….”
“안타깝지만 영혼님의 그 삶 속의 아버님은 이번생에서는 여인이랍니다. 이번삶에서는 어머님과 부부가 아닌 자매로 태어나셨지요. 어머님은 그대로 어머님 이시구요. 그 삶의 아버님은 이모님이 되시겠네요. “
“엄마와 이모라…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삼신님.”
“그럼 , 준비되셨을까요?”
영혼이 고개를 끄덕이자 삼신의 손에서 푸른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빛이 영혼을 감싸자 영혼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어느새 푸른빛만 깜박 깜빡이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삼신의 손바닥 위로 이동을 하자자 삼신과 논 그리고 영혼이 있었던 사무실이 어느새 푸른 숲으로 바뀌었다. 숲 가운데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삼신은 나무에 가까이 다가 간 후 푸른빛을 나무 쪽으로 띄었다. 푸른빛은 인사를 하듯 삼신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나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빛은 나무에 모두 흡수된 채로 그 모습이 사라졌다.
삼신이 나무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뒤에서 보던 논도 얼른 삼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영혼님, 이번 생도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처음으로 점지를 돕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논은 책상 위에 앉아 유리병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유리병 속에서는 깨져버린 씨앗 조각이 들어있었다.
그것이 다였다. 아기를 버린 엄마. 기억나는 거라곤 그거 하나였는데, 왜 자신이 그렇게 분노했을까… 아무리 후회해 보았지만 이미 씨앗은 빛을 잃은 상태로 조각나 버렸다.
“이것도 다 뜻이 있겠지요. 그 영혼이 이곳에 오고 논님이 여기 계신데도 이유가 있는 것처럼 두 분이 만난 것도 다 흐름이지요. 씨앗은 잘 보관해두셔요. 사라져 버릴 정도로 악한 영혼은 아니랍니다. 그분의 빛이 희미하게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
깨진 씨앗을 보고도 삼신은 논을 야단치기는커녕 다독여줬다. 자신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점지되어서는 안 될 부모 같았던 부부는 배속에 있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버렸던 엄마에게도 변화가 있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기억은 되돌아오지 않았고 깨진 유리조각처럼 단편적 기억만 떠올랐기에 생각에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논은 한숨을 내쉬고 유리병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저녁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컹!”
“논!!! 좋은 소식이다!”
“좋은지는 모르지.”
“어쨌든 나쁜 소식은 아닌 거지…”
“붙는다. 그거. 붙일 수 있다.”
건너 방에 함께 머물고 있는 플로피가 논이 방문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컹컹 데며 세 마리가 바쁘게 말을 시작했다,
“삼신이 아신다.”
“너는 참…. 무슨 삼신인지를 말해야지.”
“컹!!!!크릉……”
세 마리가 서로 말을 하려고 하자 결국 가운데 머리가 큰 소리로 짖자 나머지 두 머리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뭐가 붙는데? 삼신님은 또 무슨 이야기고?”
“응.. 네가 깨트린 영혼 조각말이다. 그걸 붙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삼신님이 세분 이신건 알지, 논?”
“응, 우리 삼신님이 두 번째 삼신님이시잖아.”
“맞다. 우리 삼신님이 삼신이 되기 전 그 전의 삼신님이 뭘 하고 계신 지 알지?”
“영혼의 씨앗을 만드시잖아. 열 번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영혼들…”
“맞아. 그런데 가끔 그 씨앗들이 실패할 때가 있다. 그것들은 보통 비료로 쓰이지. 그 비료는 우리가 밭에서 기르는 영혼의 꽃들에게서 나는 비료와 차원이 다르다. 그 비료를 이용한다면 깨진 씨앗을 붙일 수도 있다.”
한참 신나게 설명을 하는데 가운데 머리가 잠시 망설이다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논… 너는 그 씨앗을 다시 붙이길 원하나? 씨앗이 붙고 빛을 찾으면 영혼이 환생한다는 이야기인데… 논, 너는 그걸 원하는 건가?”
논은 잠시 생각을 하며 플로피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세 마리의 머리를 골고루 쓰다듬고 나면 그들의 온기가 손가락 끝을 거쳐 가슴 깊은 곳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난… 사실 모르겠어. 기억이 다 돌아온 것도 아니고… 나와 그 영혼이 무슨 관계인지 아직은 정확히도 모르겠어. 그래서… 그 씨앗이 일단은 붙었으면 해… 그리고.. 설령 그분이 죄를 지었다 해도 지옥이 아니라 이곳에 온건….”
“흐름이라고?…. 너 꼭 방금 삼신 같았다. 논.”
“모든 것은…. 흐름이지요…”
왼쪽플로피의 말에 오른쪽 플로피가 삼신말투를 흉내 내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고 세 머리와 논은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환생국에서의 하루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