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도서관은 말 그대로 태몽에 관련된 모든 도서와 자료들을 보관해 두는 곳이었다. 태몽의 역사에 관한 서적들도 수천 권이 넘었고, 태몽의 종류에 관한 코너는 천장까지 닿는 큰 책장 다섯 개를 차지할 만큼 방대한 자료들로 꽉 차있었다.
영혼들이 직접 출연하는 태몽은 특별보관실에 저장이 되어있었는데 논과 플로피는 도서관 사서에게 잔뜩 주의사항을 들은 후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특별보관실은 다른 코너와 달리 비교적 책의 수가 적었다. 세 개의 책장에 영혼의 번호 순서대로 책이 꽂혀있었고 책에는 각각 다른 제목이 적혀있었다.
“튼튼이… 복덩이….. 대박이…..”
논이 책 제목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있는데 플로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다. 논… 여기"
‘달콤이- 저자: 영혼 7542번'
논은 조심히 플로피가 가리킨 책을 꺼내보았다. 제목처럼 책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고 생각하는데 주르륵… 플로피의 세 머리가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흠… 음… 음’
특별별보관실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사서가 내는 소리에 플로피가 얼른 침을 닦아냈다.
“그 책이 맞나… 논?”
논은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펼쳐보려고 겉표지를 넘기려 했지만 표지는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책이 아닌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분명 책인 듯한데 아무리 펼쳐보려 해도 책은 열리지 않았다. 논은 다른 책을 꺼내서 펼쳐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책은 열리지 않았다. 한 권을 더 꺼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논은 책들을 들고 사서에게 다가갔다.
“이 책들이 열리지가 않는데요. 사서님.”
“당연히 열리지 않습니다. 태몽책이 열릴 리가 없잖아요. “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논의 표정을 보더니 도서관 사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쪽에 있는 보관실을 가리켰다. 논이 고개를 쑥 내밀어 뒤를 살펴보자 그곳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들과 유사한 책들이 잔뜩 있었다.
“이쪽 책들은 열립니다. 실행이 된 거니까요.”
“실행이요? 사서님… 대체 뭐가 실행이….”
“점지요. 점지가 돼야만 합니다. 태어날 아기가 없는데 태몽이 무슨 소용입니까. 아기를 점지받아야 태몽을 꾸든 말든 하지요. 논님이 가져오신 책들은 모두 점지를 아직 받지 않아 실행이 안된 태몽책들입니다. "
태몽도서관을 나오는 발이 무거웠다. 터벅터벅 힘없이 걷는 논 뒤를 플로피가 조용히 따랐다.
태어날 아기가 없으면 점지가 이뤄질 수 없고… 점지가 없으면 태몽 꿈이 소용이 없다. 그러면 이 영혼은 손녀가 아기를 가져야만 태몽꿈을 주고 그래야만 환생을 할 수 있다는 뜻인데… 대체 그 아기를 어디서 데려 온단 말인가… 현재 환생준비가 된 영혼이 없는데…
여기까지 생각을 하다 논이 걸음을 딱 멈췄다. 덩달아 따라오던 플로피도 걸음을 멈췄다.
“논.. 왜 멈추나?”
“플로피… 내가 여기 있고… 네가 여기 있는 건…. 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지?”
“응?... 논… 갑자기 무슨….”
“다 흐름이잖아. 삼신님이 그랬잖아. 모든 것에는 뜻하는 바가 있다고…”
“그렇지… 그게 왜…”
“바로 그거야… 왜 영혼님들의 환생 에러가 났을까?”
“그거야 두 분 다 요청사항 체크가 안되었으니까?”
“그래.. 그런데 왜 둘이냐 이거지. 요청사항 체크가 안된 영혼이 둘인 이유… 그건 다 뜻하는 바가 있는 거지… 한분은 인사만 완료하면 환생을 하시지. 환생을 한다는 건 부모님이 필요한 거잖아. 그런데 그 부모님이 점지를 받게 된다면 다른 영혼분이 그 점지에 태몽을 주시면… 두 분 다 요청사항이 해결되는 거지.”
“오… 논…!”
세 머리의 눈이 논을 향해 반짝반짝거렸다. 논은 앞을 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지 논?”
“꿈 찾으러..”
“꿈?”
플로피의 두 머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가운데 머리가 한심한 듯 혀를 차더니 컹 짖으며 그들을 재촉해 논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논과 플로피는 환생궁의 출입구를 이용해 환생상담지로 바로 이동을 했다. 논은 망설임 없이 미카엘의 상담사무실로 들어갔다. 첫 번째 영혼인 영혼 3512번이 환생상담을 하며 맡겨둔 것이 있냐고 묻자 미카엘은 자신의 책장을 찾아보았다. 미카엘이 건넨 파일을 열자 그곳에는 태몽도서관의 책처럼 제목과 저자 -영혼 3512번이라고 적힌 책이 들어있었다.
논이 책을 펼치자 ‘시윤'이라는 제목이 다시 한번 쓰여있는 속지가 보였다. 한 장을 더 넘기려고 하자 미카엘의 ‘흠.. 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논은 책장을 넘기려던 손을 멈추고 미카엘을 봤다.
“꿈 책은 처음 읽는 순간 실행이 된답니다. 언제 읽던 그 순간 인간은 잠에 들고 그 꿈을 기억하게 되겠지만 영혼님이 특별히 부탁하신 책이니 시기와 때를 맞춰서 읽는 게 어떨까요?”
“어떻게요?”
“가끔 이렇게 부탁을 하시는 영혼님들이 계셔서 저희가 처리할 때가 있는데…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현생의 인간이 제 때 잔 걸까… 확실히 기억나게 꿈을 꾼 걸까… 영혼님의 의견이 잘 전달이 되었나…
꿈이 저희 환생국 소관이 아니긴 하지만 환생국에도 꿈 스페셜리스트들이 있는데… 그들이라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꿈 스페셜리스트요?... 아!!! 태몽!!!”
논의 말에 미카엘이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몽이요. 그런데 저는 환생상담지에서 일하는 지라 환생궁의 태몽관에는 못 들어가는데 논님은 이곳과
점지청에 모두 속해 계시니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하는 미카에를 뒤로하고 플로피와 논은 영혼혼 3512번의 책을 들고 다시 환생궁으로 돌아갔다.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회식을 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시윤은 집으로 들어섰다. 불이 꺼진 어두운 집에 들어가 ‘탁’ ‘탁' 전등들을 차례로 켜서 집을 환하게 만들고 좋아하는 음악을 켰다.
‘오늘은 무슨 향이 좋을까?’
시윤은 거실 위에 놓인 향초 증 가장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나는 초를 골라 불을 켰다. 일반 심지와 달리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나는 향초는 시윤의 고단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사고가 났었데. 너도 알지? 그 지하철 방화범 사건… 거기에 지혜가 있었다는 소문이 있어…’
‘글쎄,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는데… 너한테도 연락 안 온 거 보면 그냥 잘 살고 있는 거 아냐?’
며칠 전 생각 난 지혜의 소식을 알아보려 했지만 시윤도 살던 도시를 떠나 서울로 온 지 몇 년째라 고향의 부모님과 아직 연락이 되는 친구 몇에게 물어본 게 다였다. 하지만 지혜도 그 동네에서 이사를 간지가 15년이 넘은지라 소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일은 초등학교 졸업장을 뒤져서라도 본인 말고 지혜를 알만한 모든 이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눈앞에 촛불이 흔들흔들 거리며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시윤아… 시윤아….”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지혜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윤은 고개를 번쩍 들고 이곳이 어딘가 싶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앞쪽으로 커다란 칠판이 있고 빙 둘러서 책걸상이 있는 것이 대학 강의실 같았다.
“아직 졸려? 곧 강의 시작되는데…”
“어?.... 그래?... 지혜… 너…”
지혜는 시윤의 앞 책상에 걸터앉더니 시윤을 바라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고 났다는 소식 들었다며?”
“어?.... 응… 너 괜찮은 거지?”
“그럼… 나 이렇게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잘 살고 있어. 매일 공부하고 싶은 거 하고 잘 살고 있지. 시윤아… 너무 보고 싶었어. “
“나도… 연락 자주 못해서 미안해… 우리 자주 보자.”
“그래… 그런데 시윤아… 나 멀리 갈 때가 있어서 너랑 그전에 꼭 인사를 하고 싶어. 인사하러 와 줄거지?”
“인사?... 그래… 어디 가는데? 외국으로 가? 공항으로 배웅 나갈까?”
시윤의 말에 지혜는 아무런 말없이 시윤을 꼭 껴안았다.
“조만간 보자… 잘 살아….”
“어?... 지혜야… 지혜야….”
“지혜야!!!!!”
본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깬 시윤 앞에 타닥타닥 촛불이 요동치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시윤은 후~~ 바람을 불어 초를 껐다.
사서가 책을 탁 덮자 논과 플로피가 보던 화면 속 시윤의 방도 깜깜해졌다.
“감사합니다. 사서님.”
미카엘의 말을 듣고 다시 태몽도서관으로 돌아온 논은 사서 뒤쪽에 보관된 태몽책들은 누가 읽은 것인지 물어봤다. 사서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당연히 자기라고 대답을 했다. 논과 플로피가 부탁을 하며 영혼의 책을 내밀자 사서는 꿈을 꿀 대상을 관찰해 보고 좋은 시기를 정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살펴본 후 드디어 사서가 생각하는 적당한 시기에 책을 읽게 되었다.
“어? 논… 에러가 안 사라진다.”
“이리 와봐라. 논"
플로피의 말에 사서와 인사말을 나누던 논이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 영혼 3512번의 요청사항에 아직도 확인 이 뜨지 않고 여전히 화면에는 에러라고 빨간 글자가 나타났다. 논과 플로피는 한숨을 쉬며 뚫어져라 스크린을 바라봤다.
“흑…. 흑…. 흑… 미안해…. 지혜야… 이제 와서…”
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사진 속의 지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사진 속 지혜는 학사모를 쓴 채 환
하게 웃고 있었다.
지혜의 꿈을 꾼 후 다음날 시윤은 초등학교 졸업장에서 전학 온 지혜와 만났을 법한 모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리고 한 친구의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지혜가 5년 전 지하철 방화 사건이 있을 때 사고로 이미 세상에 없다고… 자신은 그때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갔었다고… 연락을 안 한 지가 꽤 되었지만 필요하면 부모님의 연락처를 주겠다고…
시윤은 통화를 한 후 지혜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이렇게 납골당으로와 지혜를 만나는 순간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을 병행하며 야간대학을 다니고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 방화사건으로 지혜가 목숨을 잃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시윤은 끊임없이 눈물만 흘렀다. 자신의 꿈에서조차 대학강의실에 있었던 지혜의 마음이 느껴져 한없이 마음이 아팠다.
“지혜야, 인사하러 왔어… 늦게 와서 미안해… 지혜야… 그곳에서도 항상 행복해. 잘 가…”
그렇게 시윤은 자신의 추억을 함께 한 소중한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크…헝… 슬프다.”
“흑….”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던 플로피들이 킁킁 데며 눈물을 참았다. 논도 마음이 아파 숨을 크게 쉬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그 순간 화면에 ‘ 영혼 3512님의 요청 사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안내와 ‘ 환생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떴다.
플로피의 세 머리는 눈몰을 그렁그렁 매단 채 좋은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논이 웃자 플로피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
서진은 자신에게 뒤 돌아 있는 노인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노인은 새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넘기고 분홍책저고리에 비취색 치마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노인에게 다가설수록 서진은 너무나 사랑했으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리운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예요?”
서진은 수화가 아닌 입으로 소리를 내어 할머니를 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서진은 다시 한번 할머니를 불러봤다.
“할머니"
뒤돌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돌리고 서진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서진아, 이리 와보렴. 복숭아가 익었네.”
“복숭아요?”
“그래, 너도 하나 먹어볼래?”
할머니는 다시 뒤돌아 갑자기 나타난 복숭아나무에서 열매를 하나 따더니 그것을 서진이에게 냅다 던졌다.
복숭아를 받으려고 다가서는데 서진에게 날아오던 복숭아가 점점 커지더니 손으로 받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로 변했다. 서진은 급하게 자신이 입고 치마를 넓게 펼쳐 복숭아를 받았다.
“할머니, 복숭아가 엄청 커요.”
치마폭에 담긴 커다란 복숭아를 보고 다시 고개를 들며 이야기하는데 할머니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그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할머니!”
“어…어….”
입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서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현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무슨 꿈꿨어?’
‘응. 할머니를 봤어. 할머니가 엄청 큰 복숭아를 던졌는데…’
‘그걸 받느라 팔을 뻗어 내 머리를 잡았나 봐. 자다 깜짝 놀랐네'
서진과 동현은 웃으며 수화로 꿈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동현과 함께 눕는 서진의 입안으로 달큼한 복숭아 향내가 나는 듯했다.
‘태몽 전달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에 알림이 뜨더니 곧이어 ‘영혼의 요청사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영혼의 환생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안내가 떴다.
“컹…컹…드디어!”
“수고했어. 플로피들"
플로피 세 머리가 신이 나 서로 논의 얼굴의 핥아대는 통에 논의 온 얼굴이 침범벅이 되었다
겨우겨우 영혼 3512번의 환생준비가 시작되고 점지를 하는 과정에서 논과 플로피는 영혼 7542번의 손녀 부부 외에도 몇 명의 부부 후보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혼 3512번의 선행포인트가 워낙 높고,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 훨씬 더 좋은 조건의 부부로 점지될 확률이 높자 논과 플로피는 또 다른 환생영혼이 있는지 매일매일 영혼의 꽃밭으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영혼 3512번이 자신이 직접 고른 부모 7542번의 손녀부부에게 태어나고 싶다고 한 덕에 드디어 두 영혼의 모든 요청 사항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영혼 3512번이 떠나고 영혼 7542번의 환생날이 되었다.
삼신과 논의 앞에 있던 조그마한 아이가 환하게 웃더니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삼신은 푸른빛을 환생의 숲에 있는 큰 나무 위로 옮겨주었다. 빛은 나무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기 시작하더니 나무가 푸른빛을 내기 시작했다.
“영혼 7542번 님, 이번 삶도 좋은 여행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삼신과 논이 나무를 향해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나무의 푸른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