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도 알다시피 네가 결정한 게 아닌 것을 알잖아..”
“무슨 소리 합니까? 반장님이 배 형사와 한다고 했으니 그런 거 아닙니까?”
“야! 이 사람아! 자네 왜 그래?” 하며 몇 번 말씨름을 하다가 갔는데 맥주 한잔 먹고 자기 아파트로 가다가 음주 접촉 사고를 냈다.
그러다가 경찰청 강력계에서 한 차례 더 파트너가 되어 근무를 했었다.
2007년 여름 평소 권투 운동을 하던 최 형사는 아마추어 권투시합에 나가 1회전을 부전승으로 올라갔다가 2회전에서 판정패하며 탈락을 했다.
나를 만나서는 내년에 다시 도전을 한다고 해놓고 3일 뒤 서부 형사계에서 당직을 마치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귀가하면서 동네 병원에 들렀다가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다가 쓰러져 사망을 하였다.
그 후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과로로 인한 순직으로 처리되어 대전 국립 현충원 경찰관 묘역에 안장이 되어 가족들은 연금을 받으며 생활을 하고 있다.
연금 공단에서 처음에는 담배를 많이 피워 사망한 것으로 순직 처리를 해줄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행정소송을 하여 겨우 순직처리가 되었다.
(대전 현충원 경찰묘역에 가보니 순직 처리되면서 경사에서 경위로 일계급 추서 되어 간부 묘역에 안장되어 있었다)
공무원은 순직 처리가 되고 안 되고는 남은 유족들의 삶에는 큰 영향 끼치고 있다. 아들과 딸 남매가 남았는데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배 형사와 한조를 하다가 나는 외근 형사들의 로망인 지방청 폭력계로 발령이 났다.
배 형사와 떨어져 전에 모시던 조장과 다시 한조가 되어 근무를 하면서 실적을 많이 올렸는데 폭력계 막내이다 보니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폭력계 근무를 하면 시내 조직폭력배들을 상대로 근무를 하기에 어디를 가던지 대우(?)를 받았고 파워도 있었다.
냇가에 고기들이 놀다가 발을 담그게 되면 놀라 도망을 치듯이 시내 조폭들이 있는 거리에 우리가 나가면 ‘후다다닥’ 도망을 가고 잠시 있다가 조폭 간부들이 놀래서 “형님 어떻게 나오셨습니까?”라며 연락이 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도 좋았지만 막내가 되다 보니 사건 처리뿐만 아니라 모든 마무리를 내가 처리를 해야 되고 승진에 있어서는 항상 꼴찌였다.
경찰 들어올 때 꿈인 승진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심사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시험을 치더라도 기본 고과점수를 받아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 과장을 찾아가 일선 경찰서로 보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박 00 과장 역시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이 최우선이니 그렇게 하라며 형사기동대를 추천하였지만 이미 갔다가왔기에 내가 있던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인사이동 때 원하는 곳으로 발령을 내주었다.
서부경찰서에 오니 내 세상인 것 같이 좋았다.
떨어져 있던 배 형사와 다시 한조를 하면서 일도 열심히 했다.
당직이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야식을 들고 오는 건달들이 많았는데 내가 오기 전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김 00 형사는 나에게 불만이 많았다.
전에는 김 00 형사 당직 때 찾아오던 건달들이 전부 나에게 쏠리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와 한바탕 했다.
내가 서부서로 나온 지 몇 개월이 지난 뒤 아침에 출근을 하니 강력계 손 00 선배에게서 전화가 와서 대뜸
“김 형사 축하 한데이~”
“어이구 형님 무슨 말씀입니까?”
“폭력계 직원들 다 쫓겨나면서 자네가 다시 폭력계로 발령 났다”
“예?”
“인사발령이 나갔으니 상황실로 가봐라 “
“알았습니다.” 하고 상황실에 가서 팩스를 확인하니 조원인 배 형사와 같이 대구청 폭력계로 발령이 난 것이었다.
기존 폭력계 직원들은 그동안 조금 시끄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인사이동시킬 명분이 없었던 차에, 마약 사건을 하다가 피의자 한 명이 도주를 했는데 다시 잡아 폭력계에 데려 들어가자 유리를 깨어서 자해를 하는 등 피의자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지방청장이 물갈이를 지시하여 전부 교체가 되면서 심야에 인사회의를 한 끝에 그동안의 실적을 평가하여 발령을 냈다고 했다.
외근 6명을 청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같은 경찰서에 배치를 하지 않고 각자 1개 경찰서씩 분산 배치를 한 것이었다.
내가 계속하여 폭력계 있었으면 그러한 사고도 나지 않았겠지만 나오더라도 내가 원하는 경찰서로 못했을 것 같았다. 참말로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 형사와 같이 폭력계로 발령이 났지만 나는 폭력계 근무가 두 번째라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고 또 발령자 중에 선임이라서 폭력계가 처음인 다른 5명은 서툴러 내가 리드를 해 나가야 했다.
졸지에 막내에서 선임이 되어 버렸다.
이순신 장군의 必生則死 必死則生(살고자 하는 자 죽고, 죽고자 하는 자 산다.) 말씀이 딱이었다
기존 형사들보다는 중량감이 떨어졌지만 각 경찰서에서는 그래도 이름깨나 날리는 형사들이었으니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신생 조직폭력배들을 다수 검거하여 실적이 좋았다.
경찰청에서 실시하는 경위 특진에 실적이 좋은 내가 대구 대표로 특진을 올렸으나 점수가 제일 많은데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셨다.
왜 선택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는 불만이 있었지만 공직사회에서는 늘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낙심하여 있는 나를 본 이 00 과장께서 “걱정하지 말고 있거라. 내가 나중에 심사로 승진시켜 줄게”라며 달래 주셨고 또, 그 약속을 지켜졌다.
대구 형사들의 대부셨으며 경우회장을 하시면서, 후배들을 많이 챙겨 주셨는데 갑작스럽게 병을 얻고 몇 년 전 운명을 하셨지만 나를 정말로 아껴주셨다.
일을 열심히 한 덕택으로 경찰청에서 각 지방청 실적이 좋은 형사 1명씩 미국 FBI견학과 그랜드캐년 여행이 내려와서 배 형사를 내 대신에 보냈다.
그리고, 마약사범 퇴치를 위하여 대구 라이온스 클럽에서 매년 시행하는 마약왕에도 우리 조가 대구청 내 실적이 제일 우수하여 선발되었지만 배 형사가 상금과 패를 받도록 했다.
배 형사는 키도 크고 인물이 좋았으며 선한 이미지를 보여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나는 일 욕심 많고, 법대로 처리하는 악역만 하는 나쁜 조장인 셈이 되었다. 그렇게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어 대구에서는 소문난 환상의 파트너라고들 했는지 모른다.
2001년 내가 서부 이현 파출소장을 하고 있을 때 나랑 한 번의 상의도 없이 지방청 폭력계 근무를 하다가 사업을 한다며 돌연히 사표를 내고 경찰을 그만두었다.
내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3일이 지난 시점이라 확인을 해보니 이미 사표가 수리되어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내 형사 생활 동안 조원이었던 파트너는 2명뿐이었는데 1명은 명예보다 돈을 벌겠다며 내 곁을 떠났고, 1명은 가족들을 남겨둔 채 순직을 했다.
나의 모든 것을 주면서 아끼고 아껴 키운 후배들인데..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두 파트너를 반갑게 맞이하고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형사의 노래
형사는 고독한 성직자다
출가한 승려가 부모형제를 버리고
바울성당의 신부와 수녀가
천상의 모후와 해후를 하듯
형사는 가정을 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외면하고
외로운 길을 가야 하는 고독한 이방인이다.
형사는 진정한 사랑의 실천가다.
우직한 의리에 몸설레이고
배고파 빵을 훔치는 소년에게 따스하게 위로하고
12살 소년 가장에게 라면 한 박스, 쌀 댓박 팔아주며
이름을 같이 하는 이 시대의 조그만 사랑의 나눔자리이다.
형사는 동키호테이다.
이 땅의 악을 징벌한답시고
녹슬은 정의의 장검을 뽑아 들고
수사라는 나귀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코미디 같은 동키호테다.
형사는 바보 멍충이다.
시대에 귀 어둡고, 언론매체에 휩싸여
눈먼 강아지처럼 방울소리 듣고 따라만 가고
충성을 강요 강하여 죽을 판 살판 등짐지어
종이 조각하나 주어 달래면
히히닥 거리는 행복한 상머슴 멍통구리다.
그러나 형사는 용감한 전사다.
뉘라서 저 벌판에 맨몸으로
카인의 후예들과 대항 하리오
과연 뉘라서 은폐된 우리의 양심을
바로 잡으리오
진실로 그 누가 폭우속에 우산 받쳐 들고
우리를 그립다 하리오.
- 어느 시인의 작품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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