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형제애
1월 중순, 경남 합천군 00면 면소재지 옆 청록다방에 겨울이라 일할 것이 없는 시골 젊은이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니 어느새 5-6명이 따뜻한 연탄난로 옆에 모여 인사를 하며 다방 아가씨가 주는 엽차를 마시고 있었다.
벼농사와 비닐하우스를 하는 시골에서야 한동네 선후배들이고 서로 잘 알고 있어 바쁜 농사철에는 서로 품앗이는 하는 사이니 터놓고 지내고 있다.
평소와 같이 날이 밝자 일찍 다방에 와 먼저 자리에 앉아 다방 아가씨랑 농담을 주고받던 안병춘(가명 : 당시 38세)도 뒤에 오는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하며 있는데 30여분 늦게 들어온 고태준(가명 : 당시 40세)이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오며
“어이 안녕들 하시오?”
미리 온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며 난로 옆으로 다가와 이미 앉아 있는 안병춘에게
“야! 자리 좀 옮겨봐라 추워 죽겠다” 며 발로 안을 밀치자 그대로 앉은 자세로
“뭐가 그리 춥나? 니가 저쪽 앉아라.”
“이 자슥이 뭐라카나? 저리 안 갈래?”
“늦게 왔으면 니가 그리 가야지 왜 나보고 가라카나?”며 버티자
“이게 죽을라카나? 비키면 될낀데..”
우측 손으로 뒷 통수를 치며
“빨리 일어나라.”라고 해서 안병춘이
“와 사람을 치고 난리냐”며 소리를 쳤다.
“뭐라꼬? 이 새끼 오늘 죽을라카나?”며 농사꾼의 우악한 손으로 앉아 있는 안병춘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워 밀치니 옆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고태준은 그 자리에 앉아 버리자 덩치가 작고 나이가 두 살 어린 안병춘은 더 이상 대꾸도 못하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창피를 당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난 후 1. 31일이 설날이라 전날 대구에 살고 있는 동생 안병호(당시 33세)가 왔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난 뒤 동생을 밖으로 불러 냈다.
“병호야!”
“왜? 뭔 일 있나?”
“아이씨~ 쪽 팔려 이야기를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뭔데 그러나?”
“너 요 밑 동네에 사는 태준이 알지?”
“형아 2살 정도 선배 되는 태준이 말이가?”
“그래 그 태준이”
“갸가 왜?”
“아침에 밥을 먹고 다방에 가서 앉아 있는데 태준이가 늦게 들어와서는 자리를 비키라며 나를 일으켜 밀어내는 바람에 내가 사람 여럿 있는 곳에서 넘어지며 쪽 다 팔렸다 아이가.”
“뭐라고? 그 새끼 그냥 뒀나?”
“나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가 많은데 그곳에서 어찌 대들 수가 있겠나?”
“어이구 등신 같은 게..”
대구에서 랜트카 업체에 일을 하며 성질이 제법 깐깐한 안병호는
“이 새끼 안 되겠네.. 사람들 많은 데서 형님 쪽을 다 팔았다는 거 아이가? 알았다 내가 설 지나고 대구 갔다가 와서 해결할게”
설이 지나고 대구로 돌아온 안병호는 자신의 형을 괴롭히고 창피를 준 고태준에게 복수를 하려고 평소 랜트카 사무실에 놀러 오며 중고 자동차 매매 상회에서 일을 하는 우태하(가명 : 당시 33세)와 정국진을(가명 : 당시 32세) 불렀다.
“야들어 봐라! 나 좀 도와주라. 일을 마치면 내가 한잔 살게”
“뭔데?”
“시골에 있는 형이 촌놈한테 시시때때로 놀림을 받고 있어 버릇을 고치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
“어떤 일을 하는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들은 그냥 옆에서 바람이나 잡고 있으면 된다”
“알았다. 언제 갈낀데?”
“오늘 저녁에 가자“ 한 후 이곡 시장에 들러 청 테이프, 노끈 등을 준비했다.
2. 17. 22:00경 안병호는 우태하, 정국진과 같이 경남 합천군 00면 00리에 있는 피해자 고태준의 집으로 갔다.
형인 안병춘 보고 고태준을 불러내게 했다.
“고태준이 있나?”
“누고?”
“내다 안병춘”
“왜? 뭔 일 있나?”
“잠시 이야기 좀 하자. 밖으로 나온나”
“이 밤중에 무슨 이야기를..”
집을 나오자 옆에 있던 안병춘 일당은 고태준을 둘러싸며
“니 우리하고 같이 좀 가자”
“니 병호 아니가?”
“그래 맞다. 내가 병호 맞다. 니가 전번에 다방에서 우리 형 쪽팔리게 했다며?”
“별일 아니였는데 왜 카는데 ..”
“같이 가보자”며
밖으로 나온 고태준을 승용차에 뒷좌석에 태워 동네 입구, 인적이 없는 다리 밑으로 끌고 갔다.
“여기 내려 봐라”
“왜 카는데?”
“내려보라 안 카나? 이 새끼야!”
차에서 내린 고태준을 욕설을 하며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을 했다.
자는 밤에 홍두깨라고 다짜고짜 다리 밑으로 데려와 욕설을 하며 때리는데 정신없이 맞았다.
“이 새끼 여기서 이럴게 아니고 대구로 데려 가자”는 안병호의 지시에 청 테이프로 눈과 입을 막고 손과 발을 묶은 다음, 안병호의 뉴그랜저 승용차량 트렁크에 넣어 대구까지 55킬로미터 이동했다.
24:00경 대구 달서구 용산동 동방 카센터 내에서, 안병춘 등 4명이서 또다시 주먹과 발로, 쇠파이프, 철 의자 등을 이용하여 무차별 폭행을 했다.
“너 우리 형한테 한 행동 생각 안 나나?”
“장난 삼아 그랬는데 그걸 가지고..”
‘ 퍽 퍽 퍽’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이자슥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 너 우리 형한테 한 행동을 무엇으로 보상할래?
“어떤 보상을 말하는데?”
”우리 형 쪽 팔리게 한 것 말이다 “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보상한다면 돈으로 하면 되지..”
“뭐 돈?”
“이 새끼 더 맞아야 되겠네..”
“알았다. 알았어. 병호야! 어찌하면 되겠나?”
“우리 형을 무시하고 쪽팔리게 한 대가로 천만 원 내놓아라”
“내가 지금 무슨 돈이 있나?
“지금 돈이 없으면 차용증을 쓰라”
“알았다”
돈을 빌리거나 빼앗은 사실이 없는데도 형을 무시하고 쪽 팔리게 한 댓가라며 고태준에게 1천만 원의 차용증을 강제로 작성시켰다,
다음날 새벽 06:30 안병춘 일행은 대구 달서구 장동에 있는 진미 다방으로 끌고 가 그곳 지하창고에서 재차 주먹과 발로 폭행하는 등 14시간가량 감금 및 폭행을 하여 약 6주일간의 치료를 요하는 우측 늑골 4개 골절, 전신 타박상을 가했다.
“너 집에 보내 줄테니까 밖에 나가서 우리한데 당한 것 불면 이제는 너거 가족들까지 가만 안 둘 것이니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알았지?”
많은 시간에 걸쳐 끌려 다니며 폭행을 당한 고태준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안병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알았다. 이제 집에 그만 보내주라.”
차용증과 다짐을 받고서야 안병호는 고태준을 승용차에 다시 태워 합천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집에 도착한 고태준은 걱정하는 가족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대구로 와서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그렇게 형에게 가한 행동을 보복한 뒤 6.28 15:30경 위 진미 다방에서 감금, 폭행 현장을 목격하여 겁을 먹고 있는 그곳 업주인 최미란(가명 : 여 당시 45세)이 자신으로부터 빌려간 돈 3천만 원을 제때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도 돈을 빨리 주지 않으면 똑 같이 만들어 주겠다”라는 등의 말로 겁을 주어 이자 1천5백만 원이 포함된 4천5백만 원 상당의 차용증을 강제로 작성하게 했다.
그 후 2차례에 걸쳐 이자 명목으로 270만 원을 갈취당하기도 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신고를 못하고 있다는 정보원의 제보를 받고 피해자를 합천 시내로 나오게 하여 다시는 보복 범죄를 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하겠으며 신병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며 설득 후 피해 진술을 확보했다.
11. 1. 10:30경 달서구 이곡동 소재 성림 랜트카(가명) 사무실에서 안병호를 검거하고 공범인 우태하, 정국진을 중고차 매매단지 내 근무처에서 각 검거했다.
안병호의 형인 안병춘을 합천 주거지에서 검거하여 구속한 사안으로 무지하게 행동을 한 범인들은 중형을 받았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엄연히 법이 있고, 예의가 있는데 막무가내로 힘을 과시하며 타인을 괴롭히는 고의범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를 시켜야 한다.
#형제 #다방 #공갈 #감금 #대가 #공범 #차용증 #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