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by 이엘

나를 사랑했던 어머니는 나를 버렸다.


아버지도 나를 버렸다.


세상도 나를 버렸다.


최종적으로는 신도 나를 버렸다.


모두가 나를 버린 세상속에서는 내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태곳적


공허가 있었다.


공허에서 마고 여신이 깨어났으며


마고 여신은 곧 죽어 세상을 이루었다.


마고 여신의 살은 땅이 되었으며


마고 여신의 혈액은 강이 되었으며


마고 여신의 피부는 하늘이 되었다.


마침내


마고 여신의 눈의 흰자위와 검은 자위는 각각 태양과 달이 되었는데


그것은 두개의 태양과 두개의 달의 시작이었다.


천리를 주관하는 천지왕이 생겨났으며


지하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이 나타났다.


천지왕은 땅을 빚어 인간과 동물 식물을 만들었으며


마고 여신이 사랑한 꽃으로 인간의 왕을 만들었다.


인간의 왕은 천리에 따라 땅을 통치했으며


신수 기린의 수호를 받았으나


꽃은 아름답지만 시들기 때문에 인간의 왕은 영원히 살 수 없었다.


그렇기에 후손을 두어 왕위를 잇게 했다.


인간의 왕은 갑골문을 받아 인간들을 통치했으며


태양과 달이 뜨는 주기를 예측해 시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뜨는 쌍성일이 되었을 때


인류 문명이 태양빛에 불타 없어지고


인류 문명이 홍수에 가라앉는 것은 왕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으니


그날이 되었을 때


인간은 그저 떨어야만 했다.


인간의 왕은 쌍성일을 예측할 달력을 만들고자 했으나


모조리 실패하고


그저 신수의 보호 아래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절망의 시대였다.


그렇게 천년이 지났다.






어떤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이성과 본능의 경계선상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지 않는 세상에서


세상의 규칙을 바꾸기 위해


그 소녀는 소리치기 시작한다.






동방에 세워진 인류 최초의 국가 천나라


천지왕에게서 갑골문으로 예언을 받아 나라를 통치했으며


백성들에게서 조세를 걷고


백성들에게서 징병을 하여


요괴와 북방 민족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


쌍성일이 다가올 것이라는 그 예언이 올 때까지는 말이다.


천나라 제사장터


천나라는 공공 제의를 위해서 바깥에서 제사를 지냈다. 거북이 등껍질을 청동 그릇에 담긴 불에 쬐는 방식으로 금이 가게 한 다음 거기에 나타나는 문자를 신의 신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천나라 제사장이 하늘을 향해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거북이 등껍질을 청동 그릇에 담긴 불에 쬐었다. 그러니 천천히 등껍질에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등껍질에는 이러한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쌍성일이 곧 다가올 것이다.


제사장은 그것을 보고 등껍질을 떨어뜨렸다. 본디 등껍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신성하지 못한 행위 하지만... 쌍성일이 다가올 거란 것은 신성하지 못한 행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제사장은 하늘을 보고 중얼거렸다.


"하늘이시여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제사장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궁궐로 들어갔다. 궁궐은 거대했지만 지붕은 짚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벽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안에는 왕과 신하들이 예언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은 붉은색으로 염색된 천에 자수가 놓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신하들은 노란색으로 염색된 옷을 입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염색된 천은 태양을 의미하고 노란색으로 염색된 천은 달을 의미한다. 그들이 입은 옷은 왕과 신하가 각각 태양과 달을 상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만큼 태양과 달의 주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두 개 뜰때는... 재앙이 일어난다.


제사장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왕에게 고했다.


"왕이시여, 쌍성일이 다가왔나이다..."


그 말에 좌중은 들썩거렸다.


쌍성일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동시에 뜨는 날 하늘에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있는 이상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보통은 하나의 태양과 하나의 달이 뜬다. 하나의 태양이 뜨고 두개의 달이 뜨는 경우는 일년에 여섯번이고 두 개의 태양이 뜰 때는 12년에 한번씩이다. 하나의 달은 30일에 한번씩 돌고 또 다른 하나의 달은 20일에 한번씩 땅을 돌고 또 다른 태양 또한 12년에 한번 주 태양을 돌기 때문이다.


쌍성일이 한번 일어나면 기후는 극적으로 바뀐다. 바다와 강이 대대적으로 범람하고 태양열이 사람들을 태워죽인다. 게다가 땅은 12년에 한번 오는 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 그 정도로 한개의 '성'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수백년 전에도 쌍성일이 일어나...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떼몰살된 경우가 있다. 게다가


'궁기','도올','도철','혼돈' 등 사흉과 온갖 요괴들이 들끓는다. 그야말로 인류 문명이 종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나라 조정인들이 침울해하는 것이다.


왕은 신하들에게 주문했다.


"무엇인가... 방법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천나라 병부상서 성기는 왕에게 말했다. 그는 나이는 많았지만 건장한 체격에 그리 노회하지 않은 성격이었다.


"역시 이제 몇 만 명의 사람들을 선별하여 신수님의 힘으로 냉동해 지하 빙고에 '보관'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천나라의 명맥은 이어야지요."


냉혹하고 직설적인 그의 말 다웠다. 사실 그의 말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재앙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쌍성일이 왔다는 소문이 돌면 민심이 이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폭동이 일어날 수 있어요. 게다가 푸른 늑대 부족이 침공할 수도 있고요. 쌍성일날 버틸 땅을 찾기 위해 우리를 대대적으로 침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위협이 있는 한 이 비밀은 여기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푸른 늑대 부족


북막의 북방 민족이었다.


그들은 동쪽의 조선과 다르게 천나라가 약해질 때마다 천나라를 침공하는 북방 민족이었다. 그들은 기후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 말을 타고 정주국가인 천나라와 조선을 침공한다. 이들도 위협이었던 것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현실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도리는 없었다. 그 말을 예부상서가 반박했다.


"백성들이 쌍성일을 모르고 그냥 당하면 그건 정의요? 그리고 지하에 냉동될 사람은 누가 정하고요? 결국 우리 지도층만 냉동된다면 그건 그냥 특권일 뿐이요!!"


성기는 그 말에 또 반박했다.


"그래도 우리의 왕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불타 죽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천나라의 명맥은 이어야지요!! 폭동이 일어나면 조정이 무너집니다. 조정이 무너지면 선별도 못합니다. 선별을 못하면 인간의 재건 자체가 불가합니다. 결국 멸망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손을 올렸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에 신하들은 뒤로 물러났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소?"


제사장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약 석달... 석달 정도 남았습니다 폐하..."


왕은 좌중에 말했다. 아니 선언했다.


"그 석달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포기만 할 수는 없소 이 사태는 한달동안 비밀로 하되... 그 한달동안 냉동 보관 이외의 방법을 강구해 봅시다. 그리고 옆나라 조선에도 이 사태를 알리도록 하시오."


그 말에 신하들은 침통해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네... 폐하..."


조선 햇골


조선 남부에 있는 이 마을은 조선 조정의 영향력 아래 있는 마을이었다. 하나의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인 *박사가 다스리고 있었으며 평화로운 고을이었다.


*박사: 조선 조정의 지방관, 한 고을의 사법 행정 군사를 담당하며 조선 조정의 왕이 직접 임명한 지방 행정의 말단이다. 원래는 한 지역의 독자적인 지배자였지만 조선 왕이 지역들을 통합하면서 고을의 수령이 조선 왕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고 임명의 방식으로 고을의 지배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여기 출신 소녀 해나래는 마을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그녀는 물을 뜨러 가면서 생각했다.


달이 두 개일 때에는 강이 범람해서 강 근처에다가 밭을 만들 수가 없어.... 달이 하나였으면...


그녀는 생각했다.


태양과 달이 하나였으면


인간이 고통받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태양과 달이 하나였으면


인간이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태양과 달이 하나였으면


나의 아버지가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면 어머니도 이 고을의 수령인 이 박사에게 몸을 의탁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도대체 마고 신은 태양과 달을 두 개씩 만드신 것일까?


해나래는 마음 속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해나래야!! 여기 물 좀!!"


"네!!!"


해나래는 밝게 웃으면서 물을 갖다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방패였다.


마을 사람들은 밝게 웃는 해나래를 보며 말했다.


"우리 해나래의 웃음은 무언가 힘을 준다니까?"


"고맙습니다…”


해나래는 그렇게 웃고 뒤로는 슬픔에 잠겼다. 슬픈 감정을 감추려 웃는 표정을 짓지만 마음속에 응어리진 감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감정을 하늘을 노려보는 것으로 해소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의미없는 하루가 지났다고


오늘은 그래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어서 좋았다고


이 두 가지 모순된 생각이 해나래의 내면을 아프게도 하고 또 보듬어 주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가 자신을 또 구박하겠지.


자신이 이 박사에게 받았던 수모를 풀기 위해서 말이다.


해나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자신의 어머니 찔레가 토기에다가 조와 기장과 물을 넣고 끓이고 있었다. 찔레는 해나래가 돌아온 것을 보고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일찍일찍 다녀야지!! 나를 닮아서 예쁘장하게 생긴 애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늦게 들어오고 그래!!”


그렇게 말하고 찔레는 해나래의 뺨을 때렸다. 해나래의 뺨은 벌겋게 부풀어올랐으며 해나래는 본능적으로 부풀어오른 뺨을 만졌다.


해나래는 어머니가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여자는 예쁘면 이용당한다.’


라는 이 시대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찔레의 지아비가 달 두 개로 인한 홍수로 인해 죽고 생계가 막막해졌을 때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던 과부인 찔레를 받아주었던 것은 고을의 수령인 이 박사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선의가 아니었다.


이 박사가 찔레를 간택한 첫째 날 이 박사는 찔레를 겁간했으며 당장 생계가 급한 찔레는 이 박사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생존이라는 달콤한 꿀로 사냥감을 유인한 뒤 인정 사정 없이 잡아먹는 포식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 찔레에게 말했다.


“이 또한 천지왕의 뜻이다. 과부를 거둬준 은혜는 몸으로 갚아야하지 않겠나? 너가 거부하면 너의 생존과 명예 그 둘 다 없다.”


당시 조선에서 아내는 아내를 홍수와 기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지아비에게 철저히 복종해야 했다. 그 원칙은 과부를 거두어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조선의 *8조법은 지아비의 편이었으며 아내는 지아비의 그 어떤 요구에도 굴복해야만 했다.


* 8조법: 조선의 성문법, 지역의 관습과 국가의 권위를 대표하는 조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그 어떤 불합리한 요구더라도


찔레는 온 몸 구석구석 이 박사의 손아귀에 의해 유린당했으며 몸 뿐만 아니라 마음마저도 이 박사에 의해 대나무 마냥 꺾였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이후 인륜을 저버린 이 박사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과부를 거두어준 인덕자로 소문나게 되었고 찔레는 겁간당한 대가로 집 한채와 밭 하나를 받고 이 박사에게 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 찔레는 자신의 삶을 딸인 해나래에게 그대로 투사했다.


마치 해나래를 학대하면 자신의 불행한 삶이 보상받을 것처럼


마치 해나래를 억압하면 자신의 고통이 덜어질 것처럼


그런 사정을 알기에 해나래는 어머니 찔레의 구타를 그대로 받아내었다.


하지만


해나래는 속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러면서도 밤에는 자신을 껴안아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바랐다.


해나래는


그런 양가감정이 드는 자기 자신을 무력하다고 여겼다.


자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사랑이 동시에 드는 이 역설적인 이중성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해나래는 그런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힐 때면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자신의 삶이 나아지게 해 달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해나래는 태양과 달이 각각 두 개씩인 하늘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어느 날 해나래에게 비보가 찾아왔다.


천나라 조정


천나라의 왕 요는 제사장에게 말했다.


"다시 제사를 드려 보게 만약 우리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 방도가 있다면 그 방책을 구사하는 것이 옳은 방책이네..."


제사장은 푸른 자색의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을 휘날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천지왕께 다시 제사를 드리겠나이다. 천지와 천리의 주재자이시여."


제사장은 물러났다. 그 뒤에 천문관 지천이 요 뒤에 나타났다.


지천은 근심하는 요에게 물었다.


"근심이 있으신지요."


요는 지천에게 자신의 근심을 말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근심이 있지. 당연히 있지. 나는 오랫동안 천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일해왔다고 자부했어 달력을 만들고 수교를 만들고 수로를 개척하고 거대 공사에 백성들을 동원하지 않았지. 창힐을 시켜 문자를 만들고 준동하는 도적과 요괴들로부터 백성을 지켰고 백성이 굶주릴 땐 곡식을 풀었다네... 하지만!! 쌍성일을 예측하는 달력은 도저히 만들 수가 없었어!! 그 쌍성일이 수백년에 한번씩 오는지 수천년에 한번씩 오는지 수만년에 한번씩 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네!!! 알 수 만 있었다면 미리미리 대비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게 뭔가 마고 여신이 사랑했던 꽃이라는 인간의 왕이라는 존재가... 천지와 천리의 주재자인 내가 시간의 주재자라고 떠받들어진 내가 쌍성일을 예측하지 못하다니.... 이게 이게 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천은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왕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성 삼성이 뜨는 것은 예측할 수 있는 달력을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태양 하나 달 하나, 태양 하나 달 둘, 태양 둘, 달 하나가 뜨는 것은 예측하는 달력은 만드셨기에 지금까지 천나라가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요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의 달력'은'이라는 말에 결국 쌍성일을 예측하는 달력은 만들지 못했다는 질책이 무의식적으로 담겨있구만 그래..."


지천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도 국왕을 질책하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지천은 고개를 숙였다.


"황송하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그 말에 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 모든 건 나의 불찰이니... 백성을 위한 달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천지와 천리의 주재자인 나의 책임인데... 그걸 못했으니 질책을 받는 건 당연하지 백성들로부터도 지탄을 받아야 마땅해."


그리고 덧붙였다.


"나 하나 죽어서 이 모든 혼란이 종식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말에 지천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임금께서는 이 나라의 지존이십니다!!"


지천의 말에 천나라의 왕 요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나는 이 나라의 지존이지.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이렇게 힘없고 무력한 지존이 있을 수 있는가? 자연과 시간의 거대한 굴레와 힘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네. 난 마고여신께 묻고 싶네 왜 세상을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놔두었느냐고. 왜 인간의 지존인 나를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놔두었느냐고 난 묻고 싶네."


지천도 말했다.


"불경한 말이지만 저도 묻고 싶습니다."


"그렇겠지."


천나라의 왕 요는 계속 말했다.


"예부상서 상헌은 백성에 대한 의를 주장하는데... 현실은 그럴 수가 없으니... 이보게 지천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조정인 그 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나?"


지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겠습니다. 폐하."


"바로 옳다는 점만 같다는 점이네. 상황을 바꿀 힘은 없지. 상헌도 나도 상황을 바꿀 힘이 없어..."


그렇게 요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하늘은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쌍성일이라는 불확실한 자연 법칙 아래에서


인간의 법칙은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인간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조선의 햇골


해나래는 물항아리로 강가에서 물을 길었다. 그리고 그 물항아리를 대나무로 만든 *물구덕에 지고 밭까지 날랐다.


*물구덕: 가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지게


밭까지 물을 나른 뒤 해나래는 힘겹게 물을 밭에가 주었다. 물을 주니 해나래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물을 주는 이유는 달이 두 개 뜨는 날에는 조석력이 강해져서 강물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가 근처에 밭과 집을 짓지 않고 물을 길어 밭에다 주는 것이다.


해나래는 고된 노동에 허리를 삐끗했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언제나 하늘을 원망했다.


해가 두 개 있는 하늘에


달이 두 개 있는 하늘에


결정적으로


변하지 않는 세상에


하지만 그래도 언젠간 마고 여신이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믿고 물을 긷고 또 길었다.


성실히 일하면 언젠간 보답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찔레 또한 계속해서 생각했다.


자신 또한 순응하면


이 박사의 정식 가족이 될 수 있겠노라고


그렇게 여겼다.


그리고 그 생각은 비틀어진 방향으로 실현되게 된다.


동시기 천나라


제사장이 예언을 들고 왔다.


제사장은 기쁨과 절망 행복과 슬픔이 교차하는 얼굴표정을 한 다음 왕에게 예언 내용을 고했다.


제사장은 주름진 얼굴을 더 찡그린채로 힘겹게 말했다.


"폐하, 예언이 내려왔습니다. 신수 기린께서 방법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왕과 지천은 그 말에 무너진 하늘이 다시 올라간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제사장의 근심 어린 얼굴에서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무언가를 바쳐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왕과 지천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는 요괴와 가뭄을 막기 위해 주술과 제사가 행해졌던 시기이고 그것들을 행하기 위해 매개로 '인신공양'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왕은 제사장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방법인가? 방법이 있다면 빨리 말해보게!!"


제사장은 그 남자는 그 노인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엔 비겁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자의 절망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신수께서 쌍성일이 올 때 인류 모두를 지켜줄 수 있다고 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가장 무구한 소녀'를 바쳐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


가장 무구한 소녀? 보통 인신공양에 바쳐지는 인간은 죄수거나 포로였다. 그것도 흉악한 죄를 지은 죄수거나 가장 많은 아군을 죽인 포로가 선별되어 인신공양이 된다. 그것은 인륜을 지키기 위한 것 무구한 자를 죽이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인신공양'이 일상화 된 시대라고 해도 '어린 무구한 소녀'를 바친다는 것은 그것은 용납되지 않을 일이었다.


천나라의 왕 요는 제사장에게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라더냐?"


제사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그 소녀가.... 운명의 굴레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쌍성일을 막을 존재로 액운을 막을 존재로 애초에 그렇게 운명이 묶여 있었다는 겁니다... 이건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늘이 정했습니다."


지천은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봉지와 궁궐 목재 바닥이 보였다. 그는 땅바닥이 자신의 위치인 양 그렇게 고개를 올리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남성 천문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천명을 거스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운명에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봉지: 바지를 가리키는 궁화(궁에서 쓰는 언어)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무력감을


체험했다.


왕 또한 자신의 무력감을


체험했다.


하지만 왕은 왕


결정해야 했다.


왕은 제사장에게 물었다.


"그 소녀는 누구요?"


제사장은 말했다.


"그 소녀는 조선국의 햇골에 있는 해나래라는 소녀입니다. 쌍성일을 막기 위해 태어난 운명의 소녀이지요."


왕은 고민했다.


우리들이 살기 위해 어린아이를 죽여도 좋은지


왕은 괴로워했다.


어린아이의 생명을 팔아 목숨을 부지해도 좋을지


왕은 부끄러웠다.


어린아이의 생명을 꺼트려 늙은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


하지만 왕은 떠올렸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있고 나는.... 왕조와 문명을 계승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왕은 고뇌했다.


한 사람의 목숨의 무게와 수천만 사람의 목숨의 무게를


왕은 재었다.


한 사람의 미래와 문명의 미래를


무엇이 무거운 것인지는 왕에게는 뻔했다.


양적인 면에서는 문명이었다.


천리를 어기는 일일 지라도 말이다.


왕은 마음을 다잡은 다음 지천에게 명했다.


"내일 조회 때 대신들에게 명할 것이오... 조선에 사신을 보내... 그 소녀를 공납품으로 바치라고!!"


지천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 명령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의 그리고 세상의 냉혹한 법칙에 순응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도리가 무력하다는 것에 순응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왕은 무거운 얼굴 표정을 하며 정전에 들었다. 정전에는 신하들이 좌우로 서 있었다.


신하들은 왕의 무거운 얼굴 표정을 보며 역시나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방법은 찾았으되 그것이 얼마나 비인도적인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비열한 일인지.


왕은 수염을 휘날리면서 왕좌에 앉았다. 좌우에는 비파형 동검을 허리에 맨 호위무사가 도열했고 왼쪽 아래편에는 지천이 오른쪽 아래편에는 제사장이 있었다. 제사장과 천문관이 좌우에 있는 이유는 하늘의 별의 움직임과 하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서이다.


각설하고 왕은 그들을 좌우에 세운 후 신하들에게 신수에게 들은 말을 천근의 추를 드는 것처럼 말했다.


"오늘 경들에게 말할 것이 있어 왔소. 신수께서 백성을 가호할 방법이 있다고 쌍성일로부터 백성을 가호할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소이다."


그 말에 좌중은 들썩거렸다. 기뻐하는 신하들도 있었고 왕의 무거운 표정과 무거운 목소리에 의문을 꾀하는 자도 있었다.


병부대신 성기는 임금의 분위기를 읽고 임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왕이시여 방법이 생겼는데 왜 그렇게...얼굴 표정이 어두우십니까? 혹 그 조건이 우리가 수행하기가 어려운 것입니까?"


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끄덕임이었을 것이다.


"그렇소. 그 조건은 어떤 면에서는 수행하기 쉽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수행하기 어렵소이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왕에게 물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왕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조선의 햇골이라는 마을의 해나래라는 소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오. 그 소녀를 제물로 바치면... 신수께서 전 인류에게 가호를 내려 쌍성일에도 버틸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오."


그 말에 모두들 술렁거렸다. 어린 여자아이를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어린아이 대상 범죄는 가장 중죄로 다스려진다. 사형도 그냥 사형이 아니라 살을 저미는 능지형으로 다스려진다. 게다가 염라대왕 앞에서도 가장 중한 죄로 심판받는다고 알려진다. 어린아이를 죽이면 *육도환생 중 인간도와 천도의 환생이 불가해진다. 그만큼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은 중죄이다. 그만한 일을 그만한 업무를 할 자가 존재할 리가 없다.


*육도환생: 인간도, 천도, 아수라도, 축생도, 아귀도, 지옥도 가운데에서 한 가지로 환생하는 것


모든 신하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어린아이를 죽여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모두들 남에게 이 과업을 미루고 싶어했다. 특히 예부상서 상헌이 반대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오!! 어린아이를 그것도 무구한 어린아이를 죽여 삶을 연명하다니!! 우리들의 도와 예가 고작 이런 것이었소!! 아이를 바칠 바에는 차라리 모두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낫소이다!!"


과연 백성에 대한 의리를 주장하는 상헌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하들은 이 말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쌍성일에 불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고는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병부상서 성기가 나섰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소이까? 그 아이를 공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 것이오 설령 신수님의 능력으로 신체를 얼린다 해도 수만명밖에 얼릴 수 있는 일 모든 문명이 멸망하고 수만명으로 다시 문명을 복구할 수 있겠소이까?! 불가피한 일이오!! 그 아이를 죽인다면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소!! 천리에 하늘에 세상에 저항할 수 있소이까?!"


상헌은 성기의 말에 분통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당신의 딸이라면!! 쉽게 인신공양 할 수 있어?!"


상헌은 성기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말했다. 이제 토론은 거의 둘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성기는 상헌에게 단호히 말했다.


"문명을 유지한다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내 딸이어도... 기꺼이 죽이지... 난 그럴 수 있어... 손에 피를 묻힐 각오 없이 어떻게 삶을 연명할 수 있겠는가!!"


상헌이 입술을 꽉 깨물면서 말했다. 이제 그의 입에선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건 분노의 표시였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하!! 존엄을 잃은 문명이 어찌 이후 사람답게 살 수 있겠는가?! 사람답게 살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네?!"


성기는 그 말에 분통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그 말을 죽어가는 시체에게 해 보시지? 죽은 시체에게 존엄이 어디에 있는가?"


"그만 그만!!!"


천나라 국왕 요가 소리를 질렀다. 그건 운명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의 발작같은 것이었다.


천나라 국왕 요는 병부상서 성기에게 물었다.


"정말 그대가... '제사'를 집행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대가 그대의 손에 피를 묻힐 수 있겠는가?!"


"정말 그대가 무구한 어린아이의 피를 묻히고도 밤에 잠이 들 수 있겠는가?!"


병부상서 성기는 천나라 국왕 요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예 폐하 손에 피를 묻힐 각오 없이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천나라 국왕 요는 손이 벌벌 떨렸다.


역사가 자기를 어떻게 기록할지


자신은 어떻게 될지


자신은 내세에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것이었다.


병부상서 성기는 그것을 알고 왕에게 고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제가 지겠나이다. 지옥도 제가 가겠나이다. 저는 왕과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평생을 바치기로 맹세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왕은 그 말을 듣고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말했다.


"병부상서 성기에게 명하네... 조선의 햇골의 소녀 해나래를 끌고 올 것을 명하네!! 자네에게 전권을 부여하네!!"


병부상서 성기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폐하 기꺼히 도살자가 되겠나이다!!"


"조회는 끝났소."


그 말에 신하들은 모두 물러갔다. 그러나 예부상서 상헌은 허탈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이제 우리 천나라는 '존엄'을 잃었네... 이제 도와 예를 모르는 변방 오랑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천나라 조정 궁궐 안뜰


천나라 조정 궁궐 안뜰은 풀이 가득했으며 풀벌레가 삑삑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비와 꿀벌이 날아다녔으며 꿀벌은 꽃가루를 흩날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폭풍 앞의 고요였다.


그 폭풍 앞의 고요 속에서 상헌과 성기는 걷고 있었다. 성기는 상헌을 붙잡으려 했다.


"이보게 이보게!!"


상헌은 성기를 향해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홱하니 돌렸다.


"어린아이를 도살하고자 하는 개새끼만도 못한 자와 할 말이 없네."


성기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어쩌면 아니 정말로 그 말이 맞아 난 개새끼만도 못한 자가 맞지 자네는 정말 역사에 남을 성인군자이고 말이야."


상헌은 그 말에 목소리를 떨면서 분노를 표했다.


"지금 비꼬는 건가?"


그 말에 성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네는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다르게 신념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진짜 조정인이야. 자네는 정말 성인이 맞네. 하지만 말이야. 세상은 성인의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아. 때로는 백정의 논리도 필요하지."


상헌은 고개를 돌렸다.


"뭐라?"


성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여자애가 쌍성일에 죽든 제물로 죽든 다를바는 없네 오히려 제물로 죽으면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살릴 수 있어, 그 고통스러운 불길과 물길 속에서 말이야. 절의를 지키다가 고통스럽게 죽으면 그 무슨 허무인가? 세상 사람들이 다 자네같은 줄 아는가?"


“뭐라?!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옳다 생각하는가?”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성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여자아이가 제물로 죽을 때 이득되는 것을 알려주지. 수백 년 전 쌍성일이 찾아왔을 때 천나라는 고작 수만명만 남고 전부 죽었네 그 때문에 천나라 문명이 다시 재건되는 데에는 수백년이 족히 걸렸지. 쌍성일이 앞으로도 반복되면 이러한 회귀는 반복될 거야 문명이 파괴되고 다시 재건하는 데에 시간을 소모하겠지."


"하지만 그 여자아이가 죽어 문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재건하는 데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네. 그러면 우리는 쌍성일을 예측할 수 있는 달력을 만들 수 있어,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지. 뿐만 아니라 쌍성일의 불길과 물길에서 인간을 보존할 수 있는 기술 또한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결정적으로... 정주 문명과 유목 문명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어... 지금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정주 문명이 말을 타고 떠돌아다니는 유목 문명보다 약하지만... 그 격차는 점차 좁아지고 마침내 우리는 유목 문명을 뛰어넘게 될거야. 정주 문명은 유목 문명과 다르게 기록과 지식을 축척하기 때문이지. 알겠는가? 이건 싸움이네 미래를 위한 싸움!!"


상헌은 그 말을 듣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 미래에 인간의 도리는 없는 것인가?"


그 말에 성기는 반박했다.


"살아있어야 인간의 도리가 있는 것일세."


상헌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아무 힘도 없는 듯이


역사의 파도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아무리 올바른 이상을 품고 있어도


현실 앞에서는 뜻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상헌을 미치게 했다.


상헌은 말했다.


"이것이 수라의 세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아귀의 세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지옥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짐승의 세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성기는 그 말을 받아쳤다.


"자네의 말이 다 맞네 이 세계는 지옥이야. 그러니 이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옥의 옥졸이 되어야 하네!!"


상헌은 두 팔을 쫙 펴면서 말했다.


"하하하... 지옥 옥졸이 되어야 한다니... 지옥에서는 의가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는 것인가?"


성기는 조용히 말했다.


"지옥에도 의는 필요하네... 하지만 세상은 자네같은 의와 나 같은 백정의 도리를 동시에 필요로 하네 결국 우리 둘은 하나이네 하나이면서 둘이고 알겠는가?"


상헌은 성기의 말을 슬픈 표정으로 들었다.


그건 의가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 불완전한 세상에 대한 한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