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해나래와 지천 성기 일행은 천나라의 수도 황허로 갔다.
해나래는 조선의 고향 햇골과 다른 천나라의 수도 황허에 압도되었다. 수도 황허는 햇골 따위보다도 더 웅장했다.
우선 동굴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인공 냉동고가 있었다. 그 빙고는 얼음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그 벽돌은 정사각형 모양이었고 또 빙고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졌기에 해나래는 빙고가 네모나다고 느꼈다. 해나래는 빙고 옆의 얼어붙은 얼음과 남자들이 그 얼음들을 정으로 자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남자들은 정을 얼음에다 망치로 박고 두들겼다. 그리고 얼음 균열에 밧줄을 매고 당겼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남자들이 그렇게 외치자 얼음이 갈라졌다. 큰 얼음이 갈라지자 남자들은 정으로 얼음을 네모나게 깎기 시작했다.
해나래는 빙고와 그 노동 현장을 보고 지천에게 물었다. 인간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서였다.
“저 빙고는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지천은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친절하게 해나래에게 빙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해 주었다.
“빙고는 겨울에 얼어붙은 강물을 잘라 만든 얼음으로 만들어진다. 하역자들이 얼음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라 마치 벽돌처럼 만들지… 이렇게 정사각형 모양으로 만드는 이유는 평시에 식량을 최대한 적재하고 또 쌍성일 같은 유사시에 사람들을 냉동해서 보관하기 위해서다. 빙고를 짓는 하역자들은 ‘빙세’를 낼 수 없는 빈민들로 구성된다.”
“빙세요?”
“그래 빙세… 빙고는 홍수와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천나라의 핵심 시설이기 때문에 넓고 크게 짓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짓는 데에 별도의 재원이 필요하지 그래서 조정에서는 황허 백성들에게 빙세를 걷는다. 빙세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빙고를 짓는 노역에 동원된다.”
해나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 햇골을 생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에서도 일정량의 조, 피, 수수, 물고기 등을 ‘박사’ 등의 지방 관료가 거두어갔다. 조선은 소출량의 약 3할 정도를 가져갔는데 여기에서는 세금이 분할되어 있다는 것이 해나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천나라의 세금은 어떻게 걷나요?”
지천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의 세금은 크게 역과 세로 나뉘어진다. 세역이라고 하지, 여유가 있는 사람은 물품과 돈으로 세를 내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노동력으로 역을 낸다. 이 역은 군대, 대공사 등등에 쓰인다.”
“빙세는 세역과 별개인 건가요?”
해나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질문했다. 그 말을 듣고 지천은 이 아이가 참 궁금증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빙세는 세역과 나뉜다. 결국 저 거대한 빙고도 백성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는 거지…”
“그렇군요!!”
해나래는 다시금 보았다. 거대한 빙고에 그러한 사정이 있었다니 정말 신기하고도 서글펐다.
모든 문명에는 인간의 피와 땀이 있었다.
그 역설에 해나래는 속으로 탄복했다.
해나래는 강 근처에 있는 수교를 보았다. 그 수교는 강의 상류 쪽에 있었고 둥그런 원형의 모양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위를 건너고 있었다. 그 밑은 네모난 수문이 달려 있어 문의 개폐 여부에 따라 물이 지나갈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되었다. 해나래는 이것을 강의 잦은 범람을 막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였다.
수교 근처에는 목간과 석필을 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해나래는 이들이 이 박사와 같은 옷을 입은 것을 근거로 관직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해나래는 지천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건가요?"
지천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저 사람들은 수문상서 밑의 사람들이다. 강물의 범람 때문에 흩어진 땅을 다시 재측정하는 거지."
해나래는 신기하게 그걸 받아들였다.
"수문상서요?"
“그래, 수로와 관련된 일을 하는 전문 관료이다.”
일행이 들어가니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건 군세의 위세 때문일 것이라고 해나래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처마 밑에 서 있었다. 해나래는 처마 밑을 계속 걸으면 비도 맞지 않겠다 생각했다.
해나래는 황허 수도 내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와 생활 풍습 등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 공간은 강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흙, 짚,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구하기 쉬운 재료로만 만든 이유는 홍수때 무너지면 다시 빨리 짓기 위함일 것이라고 해나래는 생각했다. 그것은 해나래가 살고 있는 햇골도 황허와 마찬가지로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짚으로 움집을 짓기 때문이다.
해나래는 사람들이 탁자 위에서 물레로 명주옷을 짓고 있는 것과 그 옷을 기름통에 끓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해나래는 물레로 옷을 짓는 것은 햇골에서도 보았던 풍경이었기 때문에 익숙했지만 명주옷을 기름에 끓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해나래는 이것 또한 지천에게 물어보았다.
“지천님 왜 사람들은 기름에다 옷을 끓이지요?”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지천도 이제 슬슬 지쳤다. 귀찮아서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어른으로서의 책무 이 두 개의 마음이 지천의 마음속에 공존했다. 지천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표정으로 해나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건… 옷을 기름으로 절여야 옷이 기름에 막혀 비에 잘 젖지 않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세계는 비가 일년에 절반 내린다. 그건 두 개의 태양으로 인한 열기를 식히기 위함이지.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동물 기름에 옷을 절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가축이 없는 가구도 있고 그들은 추위에 떠니까.”
지천은 말을 끝냈다. 해나래는 지천의 지친 표정을 보고 이제 예의를 위해서라도 그만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해나래는 계속해서 지천을 따라 길을 갔다. 거기에서 처마 가장자리를 보게 되었다.
처마 가장자리에는 돌로 된 관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생활용 오물이 흘러나왔다. 해나래는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아마 저 관은 미세하게 각도가 기울어져 있을 거야 강이랑 연결되어 있을 거고 햇골은 오물이 생기면 가축에게 먹이거나 밭에 뿌렸는데 신기하네?
해나래는 계속해서 황허를 보았다.
황허 속에서는 석관에 있는 물로 장난치는 소년들이 있었고 거주지와 떨어진 논밭에서 물을 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시장 안에서는 사람들이 칼날처럼 생긴 작은 쇳덩이를 저울에 재면서 물건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으며 시장 안으로 지게로 힘겹게 물건을 나르는 노역자들이 있었다. 해나래는 그것을 보고 세상은 넓다고 생각했다.
해나래는 신기해하면서 궁성 안으로 들어갔다. 궁성 밖엔 해자가 삥 둘러싸 있었고 궁성은 높은 언덕에 있었다. 해나래는 이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한 안배라고 생각했다.
해나래는 궁성 안 *사랑방에서 금색 자수가 새겨진 옷으로 갈아입혀진 후 천나라 임금 요를 만날 준비를 했다.
*사랑방: 손님을 대기시키는 공간
병부상서 성기는 당부했다.
"왕 앞에 갈 때에는 고개를 숙여라. 명령이 있을 때만 대답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인이라 답하거라."
해나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나래는 정전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왕 요를 만나게 되었다.
천나라 국왕 요와
햇골 소녀 해나래는
서로 만났다.
해나래는 고개를 숙였지만
요는 왜인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강인함을 느꼈다.
요는 왕으로의 책임을 다하려는 듯이 독하게 말했다.
"너가 불려온 이유는 알터 너가 죽어야 모두가 산다 알겠느냐? 거부는 없다. 기일을 정해줄 테니 그때까진 편히 살아라 예부에 지시해 필요한 물자를 보내주라 명할 테니."
그야말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건 다 하라는 소리였다.
그건
도살자의 호의인가?
아님
인간의 양심인가?
해나래는 왕 요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신께서 저의 죽음을 바라시는 것이 맞나요?"
왕 요는 해나래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
"그렇군요.."
해나래는 고개를 숙였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결과가
이꼴이라니
그녀는 존재론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그래서 해나래는 물어야 했다.
"만약 신이 틀렸다면.. 인간이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요?"
"!!!!!"
그 말은 인간 제물을 반대한 예부상서 상헌의 마음을 마치
파도처럼
강타했다.
왕 요는 단호히 말했다.
"신이 틀렸다면 세상이 틀린 것이다. 그럼 너는 세상에 반역하겠는가?"
해나래는 대답했다.
"전 그저 질문하고 싶을 뿐이에요. 이 잔혹한 세상에... 신이 정말로 옳은지."
왕 요는 단정짓듯이 말했다.
"신은 옳다. 늘 옳았다. 의심하는 것은 중죄이다."
이 말은 정전에 울려퍼졌다.
해나래는
이것이
변하지
않을
숙명임을
깨달았다.
해나래는 자신이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해나래는 알현을 마치고 예부상서 상헌의 안내를 받아 예부에 갔다. 거기에는 비단이불과 쌀이 있었다.
상헌은 축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나약함을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렴."
해나래는 쌀을 처음 보고 놀랐다. 하얀 알곡 그건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물은 무엇인가요?"
상헌은 그 말을 듣고 이 아이가 참으로 호기심이 많다고 여겼다. 죽기전 호기심이라도 풀어주고자 상헌은 말했다.
이것은 벼라고 불리는 작물이다. 조와 기장과 달리 일조량과 물의 정밀한 조정이 필요한 작물이지 천나라 왕실의 온실에서 재배한다.
"온실이요?"
해나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그도 그럴게 자신의 고향 햇골에서는 물을 일일히 길어 논밭에 물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재배하다니 그건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상헌은 온실에 대해 해나래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온실은.. 밀폐된 공간에서 일정한 수준의 온도를 지닌 공간이다. 일년에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건 너도 알겠지. 우리는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한 온도를 지닌 장소를 만들었고 거기에 벼를 심은거다. 물은 너가 궁성으로 올때 봤던 해자에서 댄다."
"그 온실은 어떻게 만들지요?"
상헌은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그는 기술관료가 아니기에 과학적 지식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황토로 만든다. 황토로 온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온실은 지하에 짓는다. 지상에 지으면 온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핵심은 온기 보존이다. 지하수 공수 목적도 있고."
"물론 완전히 지하에 짓는 건 아니다. 반지하에 짓는 거지. 천정은 가죽으로 덮고 온기가 부족할 땐 지하에서 불을 땐다."
해나래는 신기했다. 그동안 신의 행위라 생각했던 일교차 또한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인간의 예지는.. 해나래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해나래는 물었다.
"그럼.. 그 기술이라는 걸로 쌍성일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헌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 그동안 천문관들이 심지어 이국의 천문관들도 쌍성일을 예측할 달력을 만드려고 했어. 결과는 실패였다. 별의 미세 운동이.. 작은 변수를 만들고.. 그 작은 변수가 수백 수천년의 큰 변수를 만드는 거라고 천문관 지천이 말했다. 그래서 예측 불가능해. 설령"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설령 달력을 만들어도 쌍성일의 재앙을 막을 기술력은 현재 인류에게 불가능한 과제이다. 결국 이건 피할 수 없는 하늘의 숙명이다."
해나래는 그 말을 듣고 절망했다.
인간의 기술로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해나래는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루가 지나고 해나래는 도성 안을 더 둘러보고 싶었다.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을 더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서 보았던 칼날처럼 생긴 작은 쇳덩이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상헌에게 도성을 한번만 구경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이에요 상헌 님 죽기 전에 도성 한 번을 구경하고 싶어요…”
상헌은 그 눈빛을 그 호기심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조정 대신이었다. 거부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안 된단다.”
“……”
해나래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슬픔이 동했다.
그는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소원 하나 이뤄주지 못하는 것이 무슨 어른인가?
이미 난 비겁한 어른인데…
그 생각이 든 그는 단 한번만 도성 안을 구경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단 한번만이다.”
그 말에 해나래가 활짝 웃었다. 해나래는 흰 옷으로 갈아입더니 옥 장식과 금비녀로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은 황금 조롱의 새가 잠시 바깥으로 나간 모습과도 흡사하다고 상헌은 생각했다.
치장을 하고 해나래는 도성 바깥을 구경했다. 도성 바깥에는 정말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수로 근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사람들 도성 밖 논밭으로 물을 수차로 대는 농민들이 보였다.
해나래는 그 중에서도 시장이 굉장히 신기하게 보였다. 전에 황허에 들어왔을 때도 보았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칼날 모양의 작은 쇳덩이와 물건을 서로 교환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그 옆에서 상인들이 장사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상인은 목간에다가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해나래는 그것이 직감적으로 물건의 출납을 기록하는 장부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 물건을 교환하는 곳 해나래가 전에 살던 햇골에서도 서로 간의 물물 교환은 있었지만 이렇게 *유악을 펼쳐 만든 건물에서 물건을 교환하는 체계가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광경이 해나래를 설레게 했다.
*유악: 기름에 절인 명주로 만든 방수포 비를 막기에는 재격이다. 원래는 군수물자였다가 법이 바뀌어서 육의전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은 누가 운영하는 건가요?”
그 말에 상헌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예부에 진상되던 물품들을 떠올렸다. 지금 그는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상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육의전: 각각 소금, 청동, 어물, 땔감, 그릇, 작물 등을 파는 상단, 조정에 상공을 바치고 수도 황허에서 독점 상업권을 얻는다.
“시장은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상단이 운영한다. 각각 수도 황허에서 소금, 청동, 어물, 땔감, 그릇, 작물 등을 팔지 그들은 지방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이 수도에서 판다. 가끔 주변 변방국으로도 무역을 가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다. 그 이유는 운송비와 보관비가 많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주변 변방국 즉 남만, 서역, 조선, 북막의 물건들은 황허에서 비싸게 팔린다.”
해나래의 눈은 사람들이 작은 쇳덩이를 물건과 교환하는 것을 쫓았다. 그 작은 쇳덩이가 무엇인데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지 해나래는 궁금했다.
“저 작은 쇳덩이는 무엇인가요?”
그 말을 듣고 상헌은 눈을 감았다. 탐욕의 근원이자 교환의 매개를 저 소녀가 궁금해한다는 것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저건 *명도전이라고 하는 돈이다. 교환의 매개이지. 저것만 있으면 시장에 있는 물건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명도전을 만드는 구리광의 생산 여부나 물건의 생산 여부에 따라 돈의 가치는 얼마든지 떨어지거나 늘어날 수 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명도전은 조선과 남만 서역 그리고 북막의 일부 지역등에서 통화로도 사용된다. 이 명도전이 너희 나라에서도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지.”
*명도전: 칼날 모양의 작은 돈, 청동으로 만들어진다. 천나라의 구리광에서 생산된다. 물가의 증감 때문에 생산량은 엄격히 통제되고 조정이 육의전을 통해 시중에 유통한다. 유통량은 조정 회의에서 결정한다. 그 때문에 구리광은 국가에서 엄격히 관리한다. 광산을 관리하는 직책을 덕대라고 부른다.
“사람을 죽인다고요?”
해나래가 경악하면서 놀랐다. 사람을 죽인다니 그건 해나래에게는 거의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 사람을 죽인다. 집을 털러 온 강도가 집주인을 죽이고 돈을 가져가거나 하는 식이지… 결국 돈은 탐욕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그렇군요…”
“게다가… 육의전의 상인인 도고가 홍수일에 필수품을 사재기해서 가격을 높게 책정한 적이 있다. 결국 폭동이 일어났고 그 도고는 왕명으로 참수형을 당했지. 도고가 사재기를 하는 경우는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적인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난전이라고 불리는 잡상인이 대표적이지. 병부와 육의전에서는 무력을 동원해서 난전을 제압하는 경우가 많다. 성기가 대표적 강경론자이다. 조정이 재난에 대비해 물자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전: 육의전과 반대되는 비공식 상점, 육의전의 물가와 난전의 물가와 다른 경우가 많다. 주로 난전은 시중의 물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만 육의전의 물가는 조정 회의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육의전은 지방에 있는 주요 물산들에 대한 유통 창구를 가졌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난전은 시중 물가를 그대로 반영하고 다른 물건도 취급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해나래는 시무룩해졌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기쁨과 인간의 악한 면모에 대한 양가 감정이 해나래를 괴롭혔다.
해나래가 그렇게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시장에서는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 물건 가격을 이렇게 후려치기 하다니 말이 돼?!!”
“말이 안되긴? 조정 회의에서 결정된 거야 청동 한근은 명도전 다섯 개의 가치를 지녀!!”
“시중 물가와 차이가 나는데 무슨 얼어죽을 조정 회의!! 너희 도고가 짜고 친 거지!!”
“짜고 치긴!! 조정에서 발행된 *조보를 보게!!”
*조보: 천나라 조정에서 발행하는 조정의 소식지 기록을 담당하는 홍문관에서 발행한다.
“조정에서는 시중 물가를 바탕으로 육의전 물가를 결정한다고 *통법에도 적혀있는데 시중 물가와 육의전 물가와 다르다는 게 말이 안돼!! 너희 도고가 조정 대신들에게 줄 댄거지!!”
*통법: 천나라의 관습과 왕명을 담은 법, 왕 조차도 이 법을 함부로 어길 수 없다.
“무슨 그런 모함을!! 우리 도고는 신용을 바탕으로 장사해!!”
“이 새끼가!!”
그 말을 끝낸 손님은 도고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맞은 도고는 맞주먹을 휘둘렀으며 곧 병부의 병사들이 와서 상황을 진정시켰다. 상헌은 그것을 보고 심란하게 말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유통량을 줄이고 물건 가격을 높인 것이 악수였군…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보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해나래는 그것을 듣고 돈에 대한 인간의 명암을 보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악한
것인가?
해나래는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