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by 이엘

한편


해나래가 꿈을 꿀 동안 조선 조정의 태자 대부 그리고 조선왕 찬과 천나라 병부상서 성기는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조선왕 찬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답례품 은괴를 5배로 늘려주시오 그리고 내 딸을 천나라 왕실에 시집보내어 우리 나라를 부마국으로 격상시키는 것까지 약조하셔야 합니다? 또한... 해나래를 데리고 가는 일은 우리가 개입하지 않겠소 공식 문서에도 남기지 않을 것이오. 그대들이 끌고 온 군대가 해나래를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과연 정치 고단수 다웠다. 어린 여자아이를 조선이 넘긴다는 '공식 기록'은 남기지 않고 대가만 가져가려는 것이다. 병부상서는 그것을 읽고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쌍성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약조를 지키지요. 구두 약속입니다."


태자 대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신께서는 용서해 주시겠지요?"


병부상서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이미 우리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소이다. 살기 위해 짐승이 되었는데... 공식 기록 남기지 않는다고 짐승이 짐승 아닌게 되겠소? 답례는 확실히 드리겠소."


태자 대부는 고개를 숙였다. 명백히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을...칼로 덮으려는 것이었다.


조선왕 찬은 봉서를 내리고 인장을 찍었다. 그리고 병부상서는 그 봉서를 가져갔다.


병부상서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천과 천부장에게 명했다.


"햇골로 출발한다!!"


그러자 모두가 외쳤다.


"네!!"


절망의 서곡이었다.


병부 상서 성기는 3명의 천부장과 3천 군사를 이끌고 햇골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옥졸들이 행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가는 발길마다 풀벌레가 도망쳤고


그들이 가는 발길마다 사슴이 도망쳤고


그들이 가는 발길의 진동에 호랑이마저도 벌벌 떨었다.


그들의 군세가 천하를 울리고 있었다.


그 군세가 햇골에 다다랐다.


햇골의 지배자이자 해나래의 법적 아비인 이 박사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천부장이 나와 선언했기 때문이다.


천부장은 선언했다.


"조선왕 찬이 해나래를 내놓았다!! 해나래는 쌍성일을 막을 제물로 간택되었다!! 당장 해나래는 나와라!!"


이 박사는 처음에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자신에게 어떤 공문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저 군세


저 갑옷


천나라의 것이다.


그리고 쌍성일은... 누구나 아는 재앙이다.


이 박사는 저 군세에 맞설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박사는 쌍성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박사는 기왕에 자신의 배다른 딸을 치워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완벽한 가족이 될테니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쌍성일에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이 박사는 자신의 휘하 군졸을 데리고 해나래의 집으로 갔다.


해나래의 집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례없는 삼천 군사의 도래를 보고


또 그들이 해나래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보고


해나래를 데리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박사의 군졸들은 사람들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저리 비키게 해나래를 저들에게 바쳐야 할 것 아닌가!!"


사람들은 그 말에 분노했다.


어찌 사람이 저렇게 매정할 수 있을까?


어찌 아비란 자가 저렇게 매정할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생각했다.


어린아이를 지켜야 하는 어른의 의무를!!


하지만


이 박사는 외쳤다.


"쌍성일에!!"


"우리의 목숨과 우리의 자식을 잃고 싶은가!!"


처음에 사람들은 그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굳게 사람의 도리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점차 두려움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구전으로 전해져온 쌍성일의 재앙


대홍수가 나서 모든 것이 잠기고 작렬하는 태양열로 모든 것이 불타 버리는 것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휩싸였다.


상상이 두려움을 더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흔들렸다.


사람들은 흔들렸다.


이 박사는 쐐기를 박았다.


“자신의 아이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 말에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주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하지만 찔레가 남아 있었다.


이 박사는 찔레에게도 말했다.


"해나래를 넘기면 너를 정식 부인으로 삼아주마."


찔레는 그 말에 흔들렸다.


정식 부인?


소박받은 내가?


이제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아이 하나를 희생시켜서 얻는 대가로는 너무 달콤했다.


해나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 신은 나를 구원하지 않는구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나를 버렸구나.


아 신은 날 구원해 주지 않는구나…


내가 아무리 빌어도 신은 응답해 주시지 않으셨구나…


아 신은 날 구원해 주지 않는구나…


내가 부당하다고 여겼던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그렇게 속에 내재된 분노를 품고 해나래는 스스로 혀를 깨무려고 했다.


하지만


해나래의 무의식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것은 삶의 본능일까?


아니면


신의 뜻일까?


그도 아니면


해나래의 의지인가?


해나래는 고민했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의미를 남기고 죽자….


해나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다.


"여러분 제가 가겠습니다."


"쌍성일을 막기 위해서."


"또 여러분을 위해서..."


그 말을 하면서 해나래는 이 박사 일행을 따라갔다.


찔레는 해나래의 뒤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명백히 미련이었다.


해나래는 찔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반항이었다.


해나래는


찔레를 저주했다.


세상 그 누구부다도


그렇게 어머니를 저주하면서 해나래는 삼천 군사들에게 끌려갔다.


병부대신 성기는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다.


"너가 죽으면 모두가 살 수 있다."


해나래는 본래 착한 아이 그 말의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쌍성일은 재앙


난 제물


나만 죽으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해나래는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제가 희생하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니"


성기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아 이 아이는


불행한 삶을 살았구나


이제 제물로서


불행한 삶의 화룡점정을 찍겠구나


하지만


성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이민족 포로들을 매장한 몸이다.


손이 이미 피로 물들었는데 어린아이의 피라고 대수겠는가?


"가자."


해나래는 그 말과 함께 성기를 따랐다.


그렇지만


해나래의 마음속에는 균열이 일었다.


행복한 세상이라 한들 거기에 내가 없으면.. 의미 없잖아.. 아무리 내가 죽어서 의미를 남겨도 그 세상에 내가 없으면!! 나는… 행복할 수 없잖아!!!


사신단이 대륙 중부로 가고 한 사흘째 되는 날


달이 두개가 떴다.


달이 두개가 뜨는 바람에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졌으며


그 때문에 강이 범람했다.


하지만 사신단은 천문관 지천을 대동했기 때문에 달이 두 개 뜨는 시기를 미리 알아 강가를 피해 갈 수 있었다.


해나래는 그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인간의 기술에


자연을 극복하는 인간의 기술에


해나래는 인간의 기술을 더 알고 싶어했다.


그동안 다가설 수 없던 세계의 본질에 다가서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지천에게 물었다.


"지천님 어떻게 달이 두 개 뜨는 줄 알았어요?"


지천은 해나래를 불쌍히 여기는 자 해나래가 죽기 전에 궁금증이라도 풀어주고자 달력에 대해 말했다.


"일년은 우리의 땅이 태양을 한바퀴 도는 시기로 정해진다. 우리의 땅이 태양을 한바퀴 도는 시간은 약 365일이지 그리고 달 두 개가 우리의 땅을 도는 시간은 각각 30일과 20일이다 그러면 수학적 원리에 따라 달 두개가 뜨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지."


해나래는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쳤다.


"아! 그럼 일년에 달 두 개가 겹치는 시간을 재면 되겠군요. 최소공배수를 사용하면 약 6번 두 달에 한 번 달이 뜨는 군요! 그리고 일년에 5일이 남으니까.. 그건 어찌하나요?"


지천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저렇게 총명하다니 5일이 남는 건 12년에 한번 돌아오는 윤년으로 처리한다. 윤년의 개념까지 알다니..


죽기엔 아까운 소녀였다.


사내였으면 제자로 삼았겠지.


지천은 일단 그 생각을 감추고 말을 이었다.


"5일은 윤년으로 처리한다. 12 곱하기 5는 60 그러니 12년에 한번은 달 두 개가 7번 뜨는 거지. 12년에 한번 그 때를 대비해서 양식을 저장하는 건 너도 알거다. 해가 두 개 뜨는 해이기도 하니. 농사를 지을 수가 없거든."


"그리고 12년 주기로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는 건 너도 알거다. 그건 태양 두 개가 뜨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아."


해나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12년에 한번은 지옥도이지요. 지천님 그럼 태양과 달이 각각 하나씩이라면 어찌되나요?"


태양과 달이 각각 하나씩? 지천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천문주기를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천문주기를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되겠지."


"두 달이 포개어 져서 보이는 것도 사라지고"


"야행성 동물이 인간을 해치는 시간이 줄어들 거다."


"요괴들이 날뛰지 않을 거고"


"지진과 해일도 자주 일어나지 않겠지."


"결정적으로 쌍성일도 없어질거야."


쌍성일이 없어진다.


그건 거탄이었다.


해나래는 자신이 던진 질문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쌍성일이 없어진다.


그건 부조리한 세계가 바뀌는 일…


어쩌면 거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해나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에 해나래의 눈빛은 달라졌다.


그 눈빛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것 이었다.


하지만


후세 역사가는 그 눈빛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질서를 해체하고 새 질서를 세운 눈빛이라고


신이 아닌


인간의 질서를 세운 눈빛이라고


조선 햇골


자신의 딸을 팔아넘긴 찔레는 이제 벼슬아치의 아내가 되었다.


하얀 소복에 뼈 장식이 아닌 비단 옷에 옥 반지를 치창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나래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걸렸다.


해나래는 자신을 미워하는 것일까?


그토록 정식 아내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마음만은 편치 않았다.


찔레는 서역에서 들어온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거울 속에서는 후회와 탐욕의 수라가 보였다.


찔레는 깨달았다.


“아 내가 얻은 것은 없었구나.”


“나는 소중한 것을 팔아 곧 없어질 것을 얻었구나…”


“난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찔레는 후회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늦은 후회였다.


소중한 것은 품에 넣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품에서 떠날 때야 비로소 그것이 소중한 줄 알기 때문이다.


이전 02화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