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by 이엘

도성에서 돌아온 뒤로 해나래는 예부에서 비단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기껏 동물 가죽밖에 덮지 못한 그녀에게 그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천은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비단은 누에에게 뽕잎을 먹여 키운다. 뽕잎을 먹은 누에는 실을 뽑아내고 그 실을 궁인들이 베틀로 짜 비단을 만드는 거지 뽕나무는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자 근처에서 키운다."


해나래는 천나라에 오고 나서 모든 것이 신기했다.


빙고


수문



돌 석관


해자


온실


궁전


시장까지


모두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에 해나래는 놀랐다. 하지만


쌍성일은 막을 수 없었다.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생각나는 의문이 있었다.


정말 마고 여신과 천지왕께서 내 죽음을 바라시는 것이 맞나?


그동안 해나래는 신의 말에 복종하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복종을 위한 것이여야 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해나래는 이것이 옳은지 의문이 들었다.


해나래는 처음으로 신이 옳은지 마음속으로 질문했다.


밤이 되고


부엉이가 울때


해나래는 땅 밑을 보았다.


땅 밑에는 식물들이 있었다.


식물들은 잎이 두껍고 뿌리가 깊었다.


천문관 지천 님이 말해주신 대로라면 이 현상은 두 개의 달과 두 개의 태양에서 수분을 저장하기 위한 식물의 적응 행태일 것이다.


하늘에서는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해나래를 소름돋게 스쳤다.


만약


쌍성일을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


식물들은 변화하겠지?


야행성 동물은 밤중에 오래 있지 않겠지?


회귀는 멈추겠지?


해나래는 궁금해 하면서 잠에 들었다.


그때


해나래의 꿈과 해나래의 무의식은 서로 공명했다.


해나래는 자신이 하늘을 가르는 꿈을 꾸었다.


해가 두 개 뜨고 달이 두 개 떴을 때


해나래는 활을 들어 해 하나 달 하나를 쐈다.


해나래는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고


이것이


자신의 삶을 위하는 일이라고


해나래는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서 있었다.


그건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전환되는 분기점이었다.


해나래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해나래는 비단이불을 바라보았다.


해나래는 그것이 제물에게 주어지는 자비 아닌 자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나래는 꿈을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비단이불을 바라보았다.


해나래는 자신이 자유하지 않다고 여겼다.


누군가를 위해서 죽는 삶이


세상을 위해서 죽는 삶이


신의 뜻에 따라 죽는 삶이


자유롭지 않다고 여겼다.


해나래는 자신이 황금조롱에 갇힌 새라고 여겼고


더이상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아이가 되지 않기로 했다.


신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그렇게 따랐던 어머니 찔레에게


반역하기로


결심했다.


한편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는 천구단에서는 인신공양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각종 짐승들이 잡혀왔으며 비단들이 준비되었다.


대신들은 비단들로 천구단을 꾸몄으며


악사들은 악기를 준비했다.


궁인들은 천구단을 쓸고 닦았으며


왕 요는 모든 죄수들을 풀어 주었다.


제사장 천지는 해나래를 찌를 칼을 갈았으며


천문관 지천은 별을 보고 길일을 잡았다.


각종 군사들이 도열했으며


왕의 옥좌와 대신들이 설 자리를 준비했다.


3일


2일


1일


도살의 날이 준비되었다.


해나래의 마지막 날


해나래는 토란을 씹고 있었다. 그리고 북극성을 바라보았다.


해나래는 전에 상헌에게 물어본적이 있었다.


"토란은 어디에서 온 것이나요?"


상헌은 해나래에게 대답해 주었다.


"토란은 열대성 지역인 남만 지역에서 조공으로 들어온 것이란다. 비엣 조정에서 우리에게 조공으로 바쳤지. 우리는 답례품으로 벼를 준다. 비엣 조정은 평지에 세워진 우리 천나라하고는 다르게 산지에 세워졌다. 계단식으로 밭농사를 짓기 때문이지."


"왜 계단식으로 밭농사를 짓나요?"


"그건... 남만 지역은 열대성 습윤 지역이고 산에 비가 자주 내린다. 그래서 산에다 농사를 짓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올라오는 열기를 배출하기에도 좋고 말이다. 토란을 주로 심는 이유는 그것이 관개성 식물이기 때문이다."


"관개성 식물이라... 남만 지역도 수로가 있군요!!"


"그렇다."


해나래는 하늘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북극성은요?"


"북극성은 천지의 주재자이신 천나라의 임금님을 나타내는 별이다. 늘 북쪽에 있기에 뱃사람들이 북극성을 보고 길을 잡지. 그래서 임금님은 뱃사람의 수호신이라고도 불린다."


해나래는 그 말을 듣고 세상에는 자신이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 한가지가 남았고 해나래는 그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요괴는요?"


상헌은 어두운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요괴는... 짐승과도 다른 생명체지 오로지 인간만을 노리고 인간만을 잡아먹는다. 쌍성일에 날뛰는 것도 바로 요괴이다... 조정군은 이 요괴를 퇴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실제로 너희 나라 조선의 준경 장군이 수백의 요괴를 벤 용장이다."


"그렇군요!!"


해나래는 요괴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무엇인가 기시감이 들었다. 무언가.... 요괴는 무엇인가 비밀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괴는 어떤 생물인가요?"


상헌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요괴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짐승의 한 형태라고도 주장하는 학자가 있고 인간의 변이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 누군가는 인간의 악한 마음의 변주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악한 마음이라고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꾸며진 신화만 있을 뿐... 너를 죽여야 하는 입장에 무슨 진실이 있겠는가?"


해나래는 상헌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한 진실이 많다고


동시에 해나래의 마지막 날


왕 요의 아들 걸은 민가에 사냥개를 풀어놓고 사냥을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가축화할 수 있는 짐승은 거의 없고 식용으로 할 수 있는 짐승은 더더욱 없는 이 세계에서 사냥은 금기였다.


그것도 민가에 말을 타고 돌아다닌 다는 점에서 엄청난 민폐였다.


본디 걸은 성격이 포악한 자 코가 오똑하고 긴 검은 장발에 8척이나 되는 키와 탄탄한 근육 결정적으로 명석한 머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이어받을 세자로서의 면모는 하나도 보이지 못한 터였다,


아니 그러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아니었다.


수문을 고치고 있는 노역자를 기분이 나쁘나는 이유로 때려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시정잡배와 어울리면서 민가의 재물을 약탈했다.


그러면서 지껄였다.


"난 신수 기린의 수호를 받는 자다!!"


하지만 왕 요는 그 행위를 막을 수 없었다.


어질었지만


자식 문제에서는 엄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걸이 한번 가는 곳마다 행정이 마비되었고


사람들이 도망갔다.


오죽하면 홍수보다 두려운게 걸이라는 소문까지 돌았겠는가?


상헌은 그 꼴을 보면서 한탄했다.


"해나래의 죽음으로 저 개망나니까지 보호받다니 신이 정말 있나이까?"


해나래의 희생 전날에도


걸의 횡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마지막 날 밤이 지나고


해나래는 제물로 바쳐지기 시작한다.


해나래는 금빛 자수로 된 비단옷을 입고


왕 요는 천구단에 있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천문관 지천은 왕의 왼편에 있었고


제사장 천지는 왕의 오른편에서 칼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날씨는 푸르렀다.


일년에 절반 이상이 비가 오는 때에 드문 창창한 날이었다.


왼편과 오른편에 신하들이 도열했고


밑에는 비단이 깔렸다.


해나래는 그 비단 밑을 걸었다.


해나래는 천구단의 계단 위를 올랐다 그리고 해나래는 임시로 마련된 제단에 양팔과 양 다리가 묶였다.


하늘은 푸르렀다.


왕은 제사장 천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사장 천지는 제사문을 읊었다.


"마고 여신이 천지를 창조한 이래로."


"하늘에는 천지왕이."


"지하에는 염라대왕이."


"지상에는 천지와 천리의 주재자이신 중원의 왕이 즉위하였으니."


"천지는 균형을 바로잡았으니."


"이에 쌍성일의 재앙을 바로잡고자 제물을 바치는도다!!"


"신수 기린이시여!!"


"우리에게 가호를!!"


그렇게 제사문을 낭독한 직후 천지는 칼을 들어 해나래의 심장을 꺼내려고 했다.


해나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난 반드시 여기를 나갈 것이라고


난 반드시 질서를 바꿀 것이라고


난 반드시 자유를 찾을 것이라고


해나래는


다짐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하얀색 번개가 내리쳤다.


아무도 기도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천지왕의 이름도 불리지 않았는데도


번개는 마치 누군가의 결심에 응답하듯 밧줄과 지붕을 정확히 태워 버렸다.


콰콰쾅!!


천구단은 무너졌으며 해나래의 두 팔과 두 다리를 구속하던 밧줄은 풀렸다.


좌중은 어리벙벙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두 태양과 두 달이 그려져 있는 천구단의 지붕은 박살이 났으며


왕과 지천 그리고 천지는 주저앉았다.


그 때 해나래는 도망쳤다.


해나래는 비단옷을 벗어던지고 달렸다.


자유의 순간이었다.


상헌은 그 순간을 보며 말했다.


"신이 신의 질서를 부정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신의 질서를 부정한 것인가?"


해나래는 흰 옷을 입은 채로 달렸다.


해나래는 느꼈다.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왕과 천지 그리고 지천은 정신을 차렸다.


왕 요는 뒤늦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쌍성일까진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았다.


그 때까지 막지 못하면....


왕 요는 지천에게 물었다.


"쌍성일까지 공양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지천은 두려움에 떨면서 고했다.


"사실 공양해도 수백만은 죽습니다. 4개의 별이 공명함으로써 벌어지는 대홍수는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쌍성일 바로 이전에 공양하면 그래도 수천만이 태양열으로부터 살 수는 있습니다."


왕 요는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곧 결심했다.


왕 요는 밑에 있는 병부상서 성기에게 명했다.


"성기!!"


성기는 왕 요의 부름에 무릎을 꿇었다.


"네 폐하!!"


"온 천하의 군세를 동원하여 해나래를 잡으시오!! 온 천하를 뒤져서라도 해나래를 잡으시오 이건 어명이오!!"


성기는 백정의 마음으로 대답했다.


"네 폐하 온 천하의 군세를 동원하겠나이다!!"


그리고 바로 사라졌다.


왕 요는 해나래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신의 뜻은 누구도 거역하지 못한다!!"


병부상서 성기는 한 명의 만부장과 열 명의 천부장을 도열시켰다.


만부장은 황개, 그는 80세 이상의 노인이었지만 담직하고 근력이 넘치는 사내였다. 천근의 종을 들 만큼 괴력이 넘쳤으며 10척의 키를 갖고 있어 거인같이 보였다. 그리고 희고 긴 수염과 머리는 그가 신선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북막에서 수천의 이민족을 베었으며 수백의 요괴를 벤 용장 중 용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무서움은 명령이 주어지면.. 들개처럼 물어뜯는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무 '질문'없이 말이다.


병부상서 성기는 황개에게 명했다.


"왕실의 명이오.. 도망친 제물 해나래를 산채로 잡아오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오. 아시겠소? 해나래를 잡아오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하오!"


"네 병부상서 국왕 폐하의 명을 받잡겠나이다!"


병부상서 성기의 말에 황개는 무서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 표정을 본 휘하 천부장들은 그 해나래라는 소녀는 반드시 잡히겠다고 생각했다.


천부장 일천은 회의감이 들었다.


우리가 한 여자아이를 잡기 위해 훈련했는가?


우리가 도살자인가?


우리는 그럼..요괴와 다를 바가 무엇이지?


하지만


일천은 쌍성일이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 저항할 수 없었다.


거대한 운명 앞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일천은 따랐다.


곧 군사들이 도열했다.


기마대 일천


전차대 일천


살수대 오천


*제운병 삼천


*제운병: 식량과 물자를 나르는 군종


도합 일만의 군대가 해나래를 잡기 위해 모였다.


동시에


사흉도 모였다.


도올, 혼돈, 궁기, 도철


그 모두가 모였다.


그들은 어둠이었다가 점차 형상을 취했다.


도올은 멧돼지의 형상을 취했고


혼돈은 늑대개의 형상을 취했고


궁기는 호랑이 얼굴에 날개를 가졌고


도철은 양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도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인간이 해나래를 잡는데!


궁기도 맞장구쳤다.


해나래는 위험해!


혼돈도 말했다.


해나래는 인간의 시대를 열거야!


도올도 말했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면 우리는 사라져!


그러자 사흉수가 동시에 소리쳤다.


해나래를 죽이자!


한편


해나래는 길바닥을 뛰어갔다.


발은 찢어졌으며


숨은 가빴다.


하지만


해나래는 외쳤다.


"난 황금조롱에 갇힌 새가 아니야! 세상 전부와 싸워서라도 부조리한 질서를 바꾸겠어! 반드시!"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외쳤다.


“난 이제 자유로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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