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요가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해나래는 달렸다.
달리고 달렸다.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달리고 달렸다.
그녀는 숨이 가빴는지 잠시 쉬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추격자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사흉이 해나래를 보고 있었으니...
해나래는 뛰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는 몰랐다.
온 세상이 자신의 적이었다.
달리고 달리면서 그녀는 세상 중심에 있는 천태산으로 가게 되었다.
해나래가 달리는 동안
천나라 수도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조정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조정이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쳐 쌍성일을 없애려 한데…”
“쌍성일이 온다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말들이 모이고 모여 민심을 형성했다.
민심은 곧 불안이 되었고 곧 필수품에 대한 사재기로 이어졌다.
물가는 올랐으며 사람들의 불안 정도는 더욱 올랐다.
군이 소문을 내는 자를 추포하고 육의전을 통제해 필수품이 나가는 것을 방지했지만
소문과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진실은 멈추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리 없는 말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천태산
마고 여신의 배가 솟아오른 곳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언젠가 지천이 해나래에게 말했었다.
"천태산은 인류 과학 지식으로도 설명되지 않은 신화의 땅이란다."
그 신화의 땅에 해나래는 가고 있었다.
운명일까?
인간의 의지일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운명과 인간의 의지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녀는 운명의 실타래에 얽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천태산에 가게 되었다.
해나래가 천태산에 도착한 날
왕 요는 어전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좋지 않은 얼굴빛을 하면서 모였다.
왕 요는 손을 들어 명을 내렸다.
“쌍성일로 민심이 이반하고 있소… 명도전의 발행량을 통제한 다음 세역과 빙세 그리고 상공의 액수를 더 늘려 물가를 통제하고 만일… 정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물자를 비축하라 하시오. 또한…..”
"조선국에 사신을 파견하시오. 해나래를 추격할 군사를 징발하라는 공문과 함께..."
신하들은 웅성웅성했다.
동원한 전력도 한 명의 소녀를 추적하는 데에는 과잉전력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군까지 동원한다고?
이건 명백히 국왕의 과잉반응이었다.
하지만 쌍성일의 위협 앞에서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상헌만 반대했을 뿐이다.
"폐하, 이것은 인륜을 어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상대로 1만 군사를 동원하고 거기에 조선의 군까지 동원하다니요... 그것은... 폭력입니다."
왕 요는 예부상서 상헌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대는 늘 정론만을 말했지. 하지만 쌍성일의 위협 앞에서 정론이 통하던가? 상헌? 수천만이 죽을 위협에서 문명이 불타고 물에 빠질 위기에서 정론이 소용이 있던가? 상헌? 지금도 백성들은 불안에 떨고 물가는 오르고 있소!!!"
상헌은 왕 요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것 모두 어린 여자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의 정당한 요인은 되지 못합니다. 폐하."
왕 요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새겨졌다. 성군이라 칭송받았던 왕 요는 이제 두려움 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제 천지의 주재자이자 북극성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그에 반해 상헌은 두려움이 없는 진짜 인간이었다.
상헌은 말했다.
"천지왕께서 정말로 어린 여자아이의 해나래의 공양을 바랄까요?"
왕 요는 그 말을 듣고 상헌을 노려보았다.
"뭐라?"
"해나래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얀 번개가 내리쳐서였습니다. 그건 자연현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정말 천지왕께서 어린 여자아이를 공양하길 원한다면 이 같은 현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설령 원하신다면... 천지왕은 악신입니다!!"
신성모독이었다. 신하들 사이에서 두려움의 목소리가 퍼졌다. 왕 요도 그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
왕 요는 생각하는 것이 두려웠다.
쌍성일의 결과를 책임지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라는 요괴가 정전을 뒤덮기 시작했다.
왕 요는 상헌에게 두려움을 담아 외쳤다.
"닥쳐라... 신성모독이다!! 감히 천지왕을 모독하다니!! 여봐라!!"
그 말에 군사들이 들어왔다.
왕 요는 군사들에게 명했다.
"상헌을 궁중 옥사에 가두어라!!"
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상헌은 군사들의 두터운 손에 끌려갔다.
끌려가면서 상헌은 중얼거렸다.
"두려움이 진실을 이겼군...."
왕 요는 병부상서 성기에게 명령했다.
"조선군까지 모두 끌고 해나래를 찾으시오 알겠소?"
병부상서 성기는 무릎을 꿇고 왕명을 받들었다.
"네!! 폐하!!"
이후 성기는 왕명을 받들기 위해 나갔다.
밖으로 나간 성기는 조선으로 가기 전에 옥사에 있는 상헌을 보았다.
"자네가 그런 꼴이 되다니.... 안타깝군."
상헌은 말했다.
"성기 자네는 명령만을 따르지... 하지만 명령이 과연 옳다고 볼 수 있는가? 우리의 왕도 과연 옳다고만 볼 수 있는가?"
성기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생존을 위해 명령을 따를 뿐이네... 나도 명령이 옳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상헌."
성기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상헌이 묵묵히 대답했다.
"행동 없는 생각은 공허한 법이라네."
그 말에 성기는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할 일을 하러 갔다.
도살자로서의 자신의 일을
성기의 삶이 옳은지 그른지는
그의 마음과 행동의 일치에서 나올 것이다.
해나래는 천태산 근처에 도착했다.
천태산 아래에는 *잎이 넓은 나무가 있었으며 그 나무들은 땅속에 깊숙히 뿌리내렸다. 산위에는 *바람 구멍이 있었으며 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었다.
*잎이 넓은 나무란 것은 활엽수다 천태산은 태양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산이기 때문에 광합성 효율이 좋은 활엽수가 많이 자라게 되었다.
*바람 구멍은 풍혈이다. 주로 화산 활동이나 지질 활동으로 인해 생기게 된 구멍이다. 이 구멍은 천태산이 화산 활동으로 생겼음을 시사한다. 풍혈에서는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나와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곳의 마을을 보게 되었다.
이 마을은 천나라와 비슷한 건축 양식을 가진 마을이다.
짚을 섞은 흙으로 벽을 만들고 볏짚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붕을 짚줄로 매었다. 또한 아궁이 그에 이어진 굴뚝이 있었다. 그리고 탈곡하기 전의 농작물을 단으로 묶어 쌓아 두거나 탈곡하고 난 후의 짚을 쌓아논 눌과 그 눌을 돌로 받치고 있는 눌굽이 있었다.
눌굽의 길이는 팔뚝 하나의 길이 만큼이었으며 길이가 길지 않았다. 집의 가장자리에는 짚으로 만든 *촘과 촘에 맺힌 물을 담는 촘항이 있었다. 촘항은 넓은 잎을 가진 나무 옆에 존재했다. 귓퉁에는*돗통과 그 옆에서 돼지가 똥을 받아먹고 있었다.
이 마을이 이런 구조를 가진 이유는 이 마을에는 강이 없기 때문이다..
강이 없어서 빗물을 받아 생활하거나 암반에서 나온 물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다.
*촘: 짚으로 댕기머리처럼 만든 빗물 정화 기구, 빗물은 이 촘을 따라 정화된다. 정화된 물은 촘항에 모인다.
*돗통: 돌로 쌓은 똥통, 돼지는 옆에서 돗통에 모인 똥을 먹는다.
해나래는 지천에게 배운 것을 떠올렸다.
"굴뚝이 있다는 건 온돌이 있다는 거란다. 우리 세상은 비가 자주 와서 춥기 때문에 온돌 문화가 발전했지. 아궁이에서 불을 땐 다음 연기는 굴뚝으로 내보내는 거란다."
해나래는 ‘이 집에도 온돌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삶에 대한 갈망과 인간에 대한 절망을 병존해 놓은 듯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천하대장군 장승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있었다.
마을 정중앙부에는 돌로 쌓은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에는
피가 가득했다.
닭이나 돼지는 많이 길러봐서 안다. 이 피 냄새는 짐승의 피는 아니었다. 오히려 짐승을 사냥하다가 상처를 입은 사냥꾼의 냄새였다.
제단에는 밧줄이 있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자신도 제단에 밧줄로 묶여본 경험이 있다.
설마?
설마하는 생각에 해나래는 마을 주변을 돌아보았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천태산 암반 아래에 물이 있고 그 물을 꺼내는 우물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천나라와 다른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건 사람이었다.
사람이 없었다.
왜 사람이 없을까?
나를 인신공양 할 때에도 천나라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해나래는 몸을 숨기고 마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니 나무 감옥에 갇힌 한 소녀가 보였다.
자신보다 어린 소녀였다.
검은 머리를 가지고 '비단옷을 입은 소녀'였다.
그 소녀는 덜덜 떨고 있었다.
해나래는 직감했다.
이 마을
천나라와 같은 구조 속에 있구나.
그 소녀는 덜덜 떨고 있었다.
해나래는 그 작디작은 소녀에게 물었다.
"너는 왜 여기에 갇혀있니?"
그러자 그 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건 체념이었다.
해나래는 그 체념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본인도 그 체념을 실현한 존재이기에
그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해나래는 그 소녀에게 눈을 맞추었다.
"괜찮아."
"나도 너와 같았어."
"나도 너와 같은 희생 제물이었어."
"하지만."
"탈출할 수 있어."
그 소녀는 해나래의 말을 듣자마자 해나래의 눈을 보았다.
해나래는 자신과 같은 희생 제물
하지만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
그 소녀는 해나래의 눈빛에서 직감했다.
아 이 아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거대한 운명을 거스르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깨닫자마자 그 소녀는 엉엉 울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천천히 말하였다.
"흑흑... 마을 사람들이 나를 제물로 바치려고... 했어..."
해나래는 그 말을 듣더니 그 소녀에게 물었다.
"왜 어째서?"
그 소녀는 그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원래 이 마을은 마고 여신을 섬기던 마을이었어... 하지만 수백년 전 쌍성일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고 여신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어... 마고 여신이 자신들을 지켜 주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마고 신앙을 버리고 흑모라는 새로운 여신을 섬기기 시작했어."
그 소녀는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그 흑모는 처음에 우리를 도와주었어 집을 지어주고 우물을 만들어 주었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을 세워 요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했어. 하지만... 그 흑모는 원하는 것이 있었어. 바로 어린 여자 아이 순진무구한 어린 여자아이를 일년에 한번 죽이라 그 흑모는 명령했어. 그 여자아이는 제비뽑기로 뽑혔고 올해는 내가 뽑힌 거야."
해나래는 그 소녀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마을의 번영을 위해 너가 죽는 거네?"
그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나래는 속으로 무언가가 툭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전체를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거지?
해나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
왜?
왜?
왜 신의 명령으로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거지?
그게 신인가?
해나래는 분노했다.
해나래는 근처에 있던 청동 낫을 들었다. 그리고 나무 감옥을 부수었다.
그 소녀는 그 행동에 깜짝 놀랐다.
"이래도 돼?"
해나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너가 죽을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건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