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by 이엘

천태산 아래 마을 소을촌


소녀가 사라진 직후


소을촌은 그동안 흑모에게 어린 여자아이를 인신공양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소을촌은 요괴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우물을 만들 수 있었고 일년에 절반 이상 비가 오는 세상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평화가 깨졌다.


그 제물로 바쳐질 어린 소녀 해례가 도망을 친 것이었다.


없었던 일이었다.


그동안은 제물이 순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물이 반항했다.


소을촌장은 해례 혼자서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을촌장은 뇌까렸다.


"반드시 누군가가 있다. 외지인이 있을거야."


소을촌장은 나무 감옥 옆 사라진 청동 낫을 보았다. 그리고 천태산 쪽 숲으로 사라진 발자국들을 보았다.


그리고 소을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제물이 사라졌네!!"


"흑모께서 노하실 거야!!"


"해례를 찾아야 하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심동체로 해례를 찾기 위해 나섰다.


몽둥이를 들고


청동 낫을 들고


그도 없는 이는 맨주먹으로


해례를 찾으러 갔다.


흑모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흑모는 조용히 속으로 말했다.


인간들이 스스로 불의를 위해 움직여 주다니


그 악행이 쌓이고 쌓여


인간이 스스로 운명을 바꾸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흉께서도 칭찬하시겠지.


그렇게 흑모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소을촌의 주민들은 발자국을 중심으로 해례와 해나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햇불을 들고 찾으니


비가 내렸고


비가 내리니


진창에 그들의 발이 빠졌다.


번개가 쳤고


그들은 두려워했다.


해나래와 해례는 그들을 보았다.


해나래는 그들의 눈빛에서 악귀를 보았다.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죽이는


그런 악귀


해나래와 해례는 바위 틈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해나래는 물었다.


"너의 이름은 뭐야?"


해례는 말했다.


"나의 이름은 해례 너의 이름은?"


"나의 이름은 해나래야."


"이름 예쁘네..."


그들은 천천히 웃었다. 하지만 포위망이 점차 좁혀졌다. 그들은 더이상 바위틈에 숨을 수 없었다.


해나래는 해례에게 물었다.


"달릴 수 있어?"


"이 마을 밖으로?"


해례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백짓장처럼 변했다.


평생 마을을 세상으로 여겨온 탓이었다.


마을이 세상인데 마을 밖으로 나가라고?


해례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난 못해... 이 마을이 전부였단 말이야..."


그 말에 해나래는 화를 내었다.


"정신 차려!!"


해나래의 화에 해례는 깜짝 놀랐다.


"살기 위해선 나가야 해!!"


해나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런 단호함이 해례에게는 없었다.


해나래는 해례의 손을 잡아 끌고 바위 틈 밖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해나래와 해례를 발견하고 추격했다.


"저기다 쫓아라!!"


해나래는 달렸다.


하지만 해례는 달리지 못했다.


해례는


발을 헛디뎠다.


해례는 넘어졌고 해나래는 해례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샛길을 통해 돌아왔던 마을 사람들이 해나래 앞을 가로막았고


해나래와 해례는 포위되었다.


소을촌장은 해나래에게 청동 칼을 들이대었다.


"감히 너 따위가 마을의 질서를 박살내려고 해?!"


해나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폭발했다.


"아이를 죽이는 게 마을의 질서야?! 그게 질서라면 난 그 질서를 부수겠어!"


소을촌장은 해나래의 빰을 때렸다.


"우리 마을의 역사도 모르는 주제에,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 희생을 치르는지 알고나 하는 말이냐?"


그렇게 말하는 소을촌장은 해나래의 눈에 거대해 보였다. 흰 백발이 서려 있는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몸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건 벽이었다.


그건 운명이었다.


해나래는 그 운명에 맞서기 시작했다.


"희생? 희생이라고 했어? 그럼 한가지 물어보지? 늙은 너는 왜 희생을 하지 않았어?"


그 말에 소을촌장은 굳었다.


그 말이 소을촌장의 마음을 양심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흑모는 소을촌장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흑모는 소을촌장에 속삭였다.


너는 옳아.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쯤이야.


그리고 흑모는 속으로 비웃었다.


소을촌장이 해나래를 죽이면 죽은 해나래로써는 마고 여신의 뒷다리뼈로 만들어진 활과 화살을 쏠 수 없다.


그 활과 화살을 쏘지 못하면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은 영원할 것이며


인류 문명은 영원히 회귀를 거듭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흑모는 소을촌장에게 명령했다.


죽여!! 해나래를!!


소을촌장은 칼을 들어 해나래를 죽이려 하였다.


자신의 의지였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로 해나래를 죽이려는 찰나


해나래가 거의 죽으려는 찰나


해나래는


깨달았다.


슬픔 없는 세계의 불완전한 역설을


아 내가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구나


해나래는 낫을 들어 소을촌장의 심장을 찔렀다.


소을촌장의 심장에선 피가 났고


해나래는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끔찍했다.


해나래의 마음속에 무언가 죽는 감정이 들었다.


해나래는 생각했다.


아 이젠 난 착한 소녀가 아니구나.


나는 이제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구나.


해나래는 주저앉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조차 없었다.


해나래는 해례의 손을 잡고 외쳤다.


“난 더이상 착한 아이가 아니야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런 다음 해나래는 해례의 손을 꽉 붙잡고 그 도가니를 빠져나왔다.


용기 있게 삶의 의지를 증명해낸 순간


그 순간 해나래는 활과 화살을 쥘 자격을 얻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새겨졌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해나래와 해례의 마음속에는 용기가 새겨졌다.


그 용기는


겁으로 이루어졌던 흑모를 죽였다.


흑모는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운명에 맞서는 인간에게


역설에 맞서는 인간에게


폭력에 맞서는 인간에게


흑모는 두려움에 떨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소멸되면서 흑모는 중얼거렸다.


너무 두려워


선을 품은 인간은


의지를 품은 인간은


악을 품은 인간이 있어야 내가 살 수 있는데...


흑모는 깨달았다.


사흉의 시대는 점차 끝나가고 있음을

keyword
이전 07화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