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어떤 난관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우리가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는 난관도 세상에 존재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러한 난관이 있었다. 조선의 병자호란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병자호란은 조선의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촉발된 전쟁이고 조선의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인해 패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636년 당시 조선의 상황은 몇 명의 명신의 통치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청과 군신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고 청은 그런 조선을 정복해야만 했다. 또한, 조선군은 청군에 비해 야전에서 약했기 때문에 산성에서 청군을 맞아서 싸워야만 했다. 청군은 그런 조선군의 전략을 간파하여 조선의 산성을 지나쳐 내려왔고 예상치 못한 청군의 진군 속도에 인조의 조정은 강화도가 아니라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야 했다. 남한산성에 입보한 조선군은 일만명 남짓 심지어는 남한산성에는 성에 입보한 인원을 먹일 수 있는 식량도 충분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추위도 군사들의 기력을 빼앗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칠복이가 추위에 떠는 군사들이 많다는 말을 한 것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거기에 더해서 성안에 조선 조정이 고립되었기 때문에 성 밖의 근왕병은 조정의 지휘를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개인과 집단의 노력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수많은 악재가 겹쳐 있었다. 영화에서는 영의정 김류와 척화 대신들의 무능한 대책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우리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들의 무능함이 있건 없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범의 아가리 속에서도 치욕 속에서도 삶은 있다고 주장한 최명길, 치욕 속의 삶은 죽는 것보다도 못하다고 주장한 김상헌 그 둘 중에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최명길의 말이 옳다고 여긴다. 실현되지 않을 이상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보통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적에게 비굴하게 무릎을 꿇으면서 삶을 구걸하지 않으려는 김상헌의 이상이 과연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살면서 이상적으로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해서 무언가를 이상적으로 이루려는 시도와 의지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결국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살아남고 이상을 주장했던 김상헌이 자결한 것처럼 현실은 히어로 영화처럼 정의가 이상이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냉혹한 현실 속에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상은 패배하고 결국 남에게 무릎을 꿇는 상황만이 더 자주 일어날 뿐이다. 앞서서 사람들은 이상을 주장하는 김상헌보다 삶과 현실을 주장하는 최명길에게 더 동의한다는 말을 한 것은 이러한 맥락과 결국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의가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내가 거기에 굴복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해서 그대로 무기력하게 살아야 하는가?
영화에서는 또 다른 한 가지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무기력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서날쇠란 대장간을 운영하는 천민이 나온다. 그는 김상헌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무기를 고치고 임금의 격서를 성 밖에 있는 근왕병에게 전달해 주는 등 조선 조정을 돕지만, 그것은 조선 조정의 명분과 체면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과 자신의 동생 칠복이 살기 위한 것이었다. 서날쇠가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입니다. 저 같은 놈들은 그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를 곪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칠복이 죽고 국왕이 성을 나서서 항복했을 때도 그는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김상헌이 맡긴 나루라는 아이와 함께 평화롭게 삶을 살아나간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정의는 늘 승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는 상황만이 더 많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영화의 서날쇠와 같이 계속해서 담담하게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평범히 사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상이 통하지 않는 잔혹한 세상에 저항하는 한가지 방식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