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과 그 이유

by 이엘

개요


1. 중국의 동북공정


동북공정이란 중국 공산당 중앙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가 동북지역 3개 성과 연합하여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 2002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중국정부프로젝트이다. 정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이다.


동북공정의 과제영역은 일반 연구과제, 번역과제, 당안 정리과제, 응용과제, 자료실 구축으로 구분되었으며 과제들은 위탁과제과 공모과제로 구분되어 운용되었다. 그 두 가지 중에서 위탁과제의 비중이 더 높았으며 과제선정 내용이나 위탁상황에 대해 비공개로 진행하였으며 응용과제의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공개된 과제들의 면면을 보면 중국 동북 지방사와 민족사 같은 것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전통적인 한국의 역사와 현재와 미래의 한반도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이 동북공정의 목적은 통일적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변강을 안정시키고 소수민족과 한족과의 단결 즉 하나의 중국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중국 당국은 지방과 그 지방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역사를 연구하여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본론


1. 동북공정의 배경


중국이 이러한 동북공정을 실시한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에 전술한 동북공정의 목적과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소련도 해체되었다. 이에 중국이 느끼는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본인들의 영토 중 대부분이 본래 소수민족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청나라 강희제 당시 청나라는 중국 지역에 존재했던 여러 왕조 중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한 나라였다. 이것은 이민족들의 영토를 정복하여 나온 성과였다. 이후에 성립된 중화민국 정부는 청나라가 지배한 이민족의 영토를 승계 받을 역사적 문화적 정통성이 없어 이민족의 영토를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포기한 영토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으로 다시 빼앗았다. 이것이 청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청나라는 북방 안정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포용 정책을 실시해 정복한 이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영토 통치의 정당성을 얻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무력으로 찬탈함으로써 정당성을 얻지 못한 것이다. 정당성을 얻지 못했기에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여 중국 영토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중국이 붕괴될 수 있을 가능성을 조기에 막을 논리적 명분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역사를 강제로 중국 역사에 편입시켜 소수민족이 한족에 동화되게 만들기 위해서 동북공정을 실시한 것이다.


2.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분쟁 그리고 오늘날


중국 당국이 조선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를 편입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위에서 말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문제만이 아니다. 조선족의 분리독립 문제만 보자면 그것은 당장에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조선족 대부분이 자신을 중국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고 한국 내부에서의 반 조선족 감정은 극에 달해 있다. 당장 최근에도 조선족 포주를 상대로 일어난 살인사건이 국내에서 옹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족이 한민족에 부화뇌동하여 독립을 주장할 것이라는 것은 사실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동북공정에 나선 이유는 바로 만주 영토의 귀속 문제하고 연관이 되어 있다. 일찍이 청나라는 자신들의 발원 지역인 만주 땅에 봉금령을 선포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였다. 그러나 만주와 인접한 조선에서 계속 사람들이 건너와 산삼을 캐는 등 봉금령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자 청나라는 조선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조선과 국경 문제를 매듭짓기를 원했다. 그래서 청 사신 목극동과 조선 관원들이 압록강과 두만강 부근을 탐사하고 백두산 정상에서 동남쪽 방향 아래로 4km 떨어진 부근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문제는 백두산 정계비의 내용이었다. 백두산 정계비에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조선과 청 간의 경계로 삼는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는데 토문강이 두만강을 일컫는 것인지 아니면 압록강으로부터 북쪽으로 뻗은 강줄기인 토문강을 일컫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기에 후세에 또다른 불씨를 남긴 것이다. 당시 조선 관원들은 백두산 정계비에 적혀 있는 토문을 압록강으로부터 북쪽으로 뻗어 나온 토문강이라고 생각하여 그 경계선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이후로 조선은 그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 되었고 대한제국 당시에는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삼아 간도에 있는 대한제국 국민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1909년에 무산되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양도받은 일본 제국과 청 제국이 간도협약을 맺은 것이다. 일본은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양도받은 대가로 청 제국의 간도 통치권을 인정했고 간도에 살던 조선 백성은 청 제국의 백성이 된 것이다.


이렇듯 간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로 한반도가 독립하고 남북한이 갈라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 간도 협약을 체결한 일본 제국은 해체되었다. 게다가 간도 협약 자체가 당사국인 대한제국을 배제하고 성사된 협정이기에 대한제국을 계승한 나라인 대한민국은 협정 자체가 국제법을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간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중국과 혈맹관계인 북한이기에 간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지만, 만약 남한과 북한이 서로 통일한다면 통일한국과 간도가 서로 국경을 맞대게 되므로 간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족과 한민족은 고구려에서 고려, 조선, 한국에 이르기까지 공통의 역사관과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조선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고민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게 큰 위협이기에 중국 공산당이 동북공정을 행하는 것이다.


3. 중국의 역사왜곡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역사왜곡을 행하고 있을까? 중국은 우선 만주에 있던 이민족 왕조들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나라와 당나라와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 왕조가 사실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규정하는 식이다. 수양제가 백만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공한 역사가 사실 수나라가 반란을 일으킨 고구려를 진압한 것이라고 말하거나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공하고 나중에 고구려를 점령한 것도 고구려 지방정권을 복속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틀린 사실이다. 수나라와 고구려 당나라와 고구려의 싸움을 묘사하는 역사서를 뒤져보아도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했다고 나오지 수나라와 당나라가 반란을 일으킨 고구려를 진압한 것이라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위지 동이전을 살펴보아도 거기에 기록된 조선, 부여 고구려 예맥 등이 중원에 있었던 왕조와 별개의 왕조로 나오지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나오지 않는다.


동북공정에 참가한 역사가들은 또한 옛날에 있었던 조공 책봉 관계를 종주국과 종속국의 관계로 확대 해석하려고도 한다. 주변국이 중원에 조공을 바치고 답례품을 받아갔던 것을 중원이 종주국이고 주변국이 종속국이어서 예속의 의미로 조공을 바쳤다는 것으로 확대해석을 한 것이다. 당연히 이것도 틀렸다. 조공 책봉 관계는 당시 동아시아에 있었던 외교 관례이자 질서였을 뿐이다. 조공을 바쳤던 국가는 중원에 존재했던 왕조보다 훨씬 더 국력이 강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도 종주국과 종속국의 관계인가? 조공 책봉 관계는 중화질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소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그 당시에 있었던 문화 상업적 교류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조공과 답례품을 주고받는 것으로 서로 간의 문화와 기술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역사왜곡에 대응하여 동북아 역사재단을 세우고 중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한 여파로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2008년에 중단했지만, 계속해서 이와 같은 역사왜곡은 늘 이루어지고 있다.


결론


중국은 한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자국의 국력을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소수민족의 독립과 그에 따른 이탈과 영토 손실을 불허한다. 그것을 위해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편입시키려 한다. 하지만, 타국의 문화와 역사를 탄압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리어 소수민족의 반발과 한족과의 분쟁만을 낳을 것이다. 설령 하나의 중국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타국의 문화와 역사와 정체성을 말살하는 것은 그 민족이 유지해온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국가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서로 간의 공존이 아니고 억압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는 금방 밑천이 드러나게 된다. 마음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그들의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제국은 곧 망한다. 현 중국 정부도 이것을 깨닫고 타민족의 역사를 훼손하는 일을 멈추고 주변국과 소수민족 간의 공존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차이나는 클라스 동북공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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