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by 이엘

해나래와 해례는 오르고 또 올랐다.


오르고 또 오르면서 화살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 마음


그래서 활을 얻었다.


그 다음 가지고 있는 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여전히 몰랐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해나래는 계속 생각했다.


그 순간


해나래는 자신이 활과 화살로 해와 달을 하나씩 떨어뜨렸던 것을 떠올렸다.


그건 재앙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은 아니라면 도대체 뭐지?


어느 순간 해나래의 머리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천의 말이었다.


지천은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태양과 달의 주기를 보고 달력을 만든다."


"달력을 만드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움직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이지."


해나래는 지천의 말을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하늘의 움직임 그것은!!


....... 이었다.


마침내 해나래와 해례는 산 정상에 올랐다.


해나래는 산 정상에 올라 속으로 외쳤다.


제발 화살아 나와라!!


하지만 화살은 나오지 않았다.


해례는 물었다.


"설마... 실패한 거 아니야?"


"......"


해례의 말에 해나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내린 답이 틀린 것일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화살이 해나래의 빰을 스쳤다.


황개가 쏜 화살이었다.


황개는 말했다.


"제물!! 순순히 죽어라!!"


성기도 외쳤다.


“모두를 위해 죽어라 질서를 위해!!”


해나래는 외쳤다.


"난 제물이 아니야!!"


해례도 외쳤다.


"우리는 자유한 사람이야!!"


황개는 그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우리는!! 쌍성일의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준경과 동수는 가까이 있던 해례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 목에 칼을 겨누었다.


준경은 말했다.


"너가 죽지 않는다면!! 이 아이는 죽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해나래는 대항할 수 없었다. 해례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말도 못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난 쌍성일의 운명을 막기 위해 이 산을 오른 거야!! 이 활로 이 활로 이 활로!!! 태양과 달을 하나씩 떨어뜨릴려고!!"


일천은 그 말에 동요했다.


이 작은 아이가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는 것에


거대한 어른에 맞서려고 한다는 것에


그리고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어른의 나약함에


그래서 일천은 결단했다.


일천은 칼을 뽑고 준경과 동수의 목을 갈랐다.


순식간이었다.


해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황개는 일천에게 소리쳤다.


"네이놈!! 국왕 폐하의 명을 거스를 셈이냐!!"


일천은 대답했다.


"국왕 폐하의 명도 어린아이를 죽일 수는 없소 난 더이상 비겁한 어른으로 살지 않아!!"


"네이놈!"


황개는 창을 뽑아 일천에게 달려들었다. 일천은 그 창을 가까스로 피했다. 황개보다 무용이 낮은 일천으로써는 창을 피함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 고작이었다.


황개는 외쳤다.


"쌍성일의 운명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천지왕께서 정해준 시간의 질서를 우리는 피할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황개와 일천은 계속 싸웠다.


그 모습을 혼돈은 보고 있었다.


사흉은 몸보다 마음에 먼저 뿌리를 내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겁과 거짓에 기생하는 놈은 마음이 바로잡히면 사라졌고


쇠붙이와 피에 기생하는 놈은 불과 칼로 베어야만 했다.


오직 혼돈만이 네 별이 나란이 설 때 비로소 세상 위로 솟구쳐 나올 수 있었다.


혼돈은 울부짖었다.


그렇게 계속 싸워라. 나는 궁기, 도올, 도철의 창조자 혼돈이다. 모든 악의 근원 혼돈이다. 태초부터 있었던 혼돈이다. 쌍성일의 혼돈은 너희 인류를 영원히 지배할 질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태양 둘


달 둘이


일렬로 정렬했다.


하늘의 네 별은 약속된 자리에 도달했다


지천이 계산해 두었던 공양의 기일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 있었고


이제는 누구를 제물로 바쳐도 쌍성일의 발동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죽음


모든 절망


모든 재앙의 시작인 쌍성일이 고개를 들었다.


두 개의 태양은 서로 겹쳐 형이상학적인 빛을 내뿜었으며


두 개의 달은 태양빛을 반사해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다.



대기가 요동쳐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비와 태양빛이 만나 무지개빛 다리를 만들어내었다.


그 무지개는 파괴적인 숨결과 아름다운 죽음을 품고 있었다.


네 개의 별은 각각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쉬고 있었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쉬면서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네 개의 별이 공명함으로써 조석력이 강해졌으며


그 조석력으로 인해 강물과 바다는 폭발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불어난 대양은 비와 만나 대지를 휩쓸었으며


인류의 이룬 모든 것을 하루 만에 짓밟았다.


우르르르르르릉


홍수는 괴물 같은 소리를 내면서 대지 위의 모든 것을 쓸었다.


산 사람은 오로지 산 위에 올라간 사람뿐이었다.


인류가 만든 집


인류가 만든 다리


인류가 만든 궁전도 모두 물에 잠겼다.


물에 잠겨 죽은 이들이 속출으며


절망하는 이들도


수없었다.


지위


신분


재산


모두 물이라는 절대 재앙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으며


모두가 물 앞에서는 평등해졌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


물에 빠진 가족을 구하려는 사람


재산을 건지려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었으며


그건


어른


아이


노인을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소리쳤다.


“살려줘!!!”


“살려줘 어푸.. 어푸…”


“날 꺼내… 줘…”


혼돈은 해나래에게 이 모든 광경을 보여주었다.



너가 죽지 않아서 생긴 일이야


너가 죽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거야


너가 쌍성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너가


반복된 시간의 굴레를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해나래는 고개를 숙이고 팔을 바르르 떨었다.


모두가 내 탓인 것 같았다.


내가 죽었으면 다른 사람들이 살았을 텐데...


내가 죽었으면...


내가 죽었으면...


내가 죽었으면...


내가 죽었으면?


시간의 굴레를 끊을 수 없었겠지!!


그래 시간이다.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 그건 바로 시간이다.


태양 하나와 달 하나를 떨어뜨린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들을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해나래의 손에 두 개의 화살이 생겼다.


해나래는 활에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태양 하나와 달 하나를 쏘았다.


태양 하나는 점멸하면서 빛을 내면서 부서졌고


달 하나는 잔해만을 남기면서 부서졌다.


그 순간


땅을 20일간 돌던 달은 사라졌으며


중심에 있던 태양을 12년간 돌던 태양도 사라졌다


영원 회귀의 종말이었다.


단일 시간의 강림이었다.


신의 시대의 종말이었으며


인간의 시대의 시작이었다.


쌍성일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을 괴롭혔던


굴레는


끝이다.


이 모든 것을 본 지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굴레 속에서 인간을 벗어나게 하려는


계획이었던가?


천지왕 아니 해나래...


천문관 지천은 이제 하늘을 보고 말했다.


"이제 신의 시대는 갔고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신의 뜻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지인가?"


지천은 쌍성일을 끝낸 것이 인간의 의지인지


신의 뜻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는건


모든 인간의 선택이 이 결과로 이끌었다는 것


마침내


황개도 일천의 손에 죽고 혼돈도 사라졌다.


성기만이 겨우 그 혼란 속에서 벗어나 산을 내려갔다.


그렇지만 혼돈은 사라지면서 말했다.


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난 인간의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다. 해나래!!


쌍성일은 끝났고


대홍수도 끝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뻐했으며


다시 문명을 건설했다.


해나래와 해례도 산 밑으로 내려와 오순도순 살았다.


하지만


태양 두 개와 달 두 개를 전제로 한 문명인 천나라는 존속했고


태양 하나와 달 하나를 기준으로 삼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했다.


요 임금은 죽었고


걸 왕자는 살았다.


아직


인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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