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by 이엘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


궁궐의 *서리가 자신에게로 왔다.


*서리: 궁에서의 문서 작업을 돕는 최하급 관료


그는 자신에게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병부상서 어르신… 지금 예부상서께서… 포고령을 어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간에…해나래의 진… 아니 ‘그것’을 담고 있습니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그 서리를 쳐다보았다. 그 서리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옅보였다.


명령을 어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왕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성기는 그 서리의 두려움을 읽고 말 없이 예부상서 상헌에게로 향했다.


병부상서 성기가 예부상서 상헌이 있는 방으로 향하자 성기는 상헌은 목간에다가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바로


해나래가 쌍성일을 끝냈다는 것


그것을 보고 성기는 상헌을 만류했다.


형식적으로


"자네 국왕의 명을 거스르다니 미쳤는가? 죽게 될.. 아니 더한 최후를 맞이할 걸세!"


상헌은 글을 쓰고 성기를 단호한 눈빛으로 성기에게 말했다.


"난 그 망나니를 국왕으로 인정한 적 없네. 부녀자를 겁탈하고 노약자를 때려죽이고 이제는 진실을 죽이려는 폭군을 난.. 용서하지 못하네."


상헌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진실을 알잖는가?"


성기는 다시 진실을 되짚어보았다. 운 좋게 천태산 위에서 목숨을 건지고 해나래가 태양 하나와 달 하나를 없애는 것을 본 것은 사실이다.


"진실을 안다. 하지만 진실을 공인하면 백성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다. 쌍성일 그 이상의 인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상헌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성기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변하지 않는 역사 때문이었을까?


"결국 쌍성일 때도 재해를 막기 위한다는 핑계로 해나래를 죽이려 했고 그 이후에도 인재를 막기 위한다는 핑계로 진실을 죽이려 하는군. 이봐 성기 자네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 말에 성기는 처음으로 묵묵부답했다. 열입을 가져도 할말이 없었다.


인류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었다.


상헌은 말했다.


"난 지천이 일러준 대로 인간의 시대를 열겠네. 자네는... 자네의 시간을 살게나."


성기는 상헌에게 물었다.


"그건 저주인가?"


상헌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나아가라는 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


그리고 상헌은 바깥으로 나갔다.


상헌은 성기와 대화를 마친 후 목간에 있는 기록을 저자에 붙였다.


저자에 있는 기록을 보고 백성들은 해나래가 쌍성일을 끝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하늘이 왕에게 답변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깨달았다.


천명은 하늘이 아니라 백성에 있음을


왕은 하늘의 존재가 아니라 백성에게서 나는 존재임을


하늘은


사람을 규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 흐름을 알아차린 왕 걸은 체포령을 내렸다.


범인은 금방 잡혔다.


상헌이 정전에 출두했기 때문이다.


왕 걸은 분노하면서 상헌에게 물었다.


"네놈은 어째서 거짓을 말했느냐!"


상헌은 받아쳤다.


"왕이 말하면 거짓이 진실이 되오? 걸?"


신하가 왕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건 금기 상헌이 걸이라고 말하지마자 정전 안은 술렁거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상헌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왕 요와 다르게 왕 걸은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걸은 이 모든 것을 알았다.


자신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걸


신하들마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공포가 필요했다.


"네놈은 거짓을 말하고 백성을 선동했다! 반역자 범죄자란 말이다!"


그 말에 상헌은 또 받아쳤다.


"범죄자라 범죄자는 부녀자를 겁탈하고 민가에 개를 풀어 사냥을 하며 노약자를 때려죽인 당신과 그걸 용인한 신이지 내가 아니다!"


상헌의 말이 끝나자 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네놈.. 뭐라 했느냐!"


"네놈은 망나니 범죄자라 했다!"


왕 걸은 책상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명했다.


"저 놈의 눈을 뽑고 귀에 황산을 뿌려라! 손가락을 자른 뒤 저자에서 거열해!"


그건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군사들이 우물쭈물하면서 명을 따를까 말까 고민하자 왕 걸은 칼을 집어 군사 하나를 베었다.


"끄악!"


그 군사는 단발마를 지르면서 죽었다. 그러니 놀란 군사들은 명을 받들었다.


"네..네!"


마침내 상헌은 끌려가고 정전에는 적막이 흘렀다.


성기와 지천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왕 걸에게는 왕의 자질은 커녕 인간의 자격도 없다고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무엇이 옳은 것이었을까?


상헌은 끌려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두 눈이 뽑히고


두 귀에 황산이 뿌려지고


모든 손가락이 잘려갈 때


그는 이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그 생각 뿐만이 아니라


하늘은


해나래가 쌍성일을 끝내고 인간의 시대를 끝내는 것도 계획하고 있었을 거라고


상헌은 생각했다.


죽기 직전에 생각했다.


인간의 선택과 신의 결정은 하나구나


결국


신은 인간의 자유를 원하는구나


그럼



고통을 통해 주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상헌은 거열틀에 묶였다.


소 두 마리는 각각 상헌의 팔과 밧줄로 연결되었으며


말 두 마리는 각각 상헌의 다리와 밧줄로 연결되었다.


죽음이 임박할 때


상헌은 생각했다.


해나래도 죽음 직전에 이렇게 두려워 했었구나.



어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헌은 죽음을 기다렸다.


마침내 왕 걸이 손을 내렸다.


그러자 처형관이 소와 말에 채찍을 때렸다.


소와 말은 깜짝 놀라더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소와 말에 연결된 상헌의 손과 다리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찢어졌다.


피가 분수처럼 났다.


하지만 쉽게 죽지 않았다.


뼈가 탈구되었다.


살이 찢어졌다.


고문과도 같은 아픔이었다.


그렇지만 상헌은 초인적인 힘으로 참았다.


그리고 외쳤다.


"진실은 죽지... 않는다!"


그것을 병부상서 성기와 천문관 지천 제사장 천지가 지켜보고 있었다.


백성들은 상헌의 죽음으로 깨달았다.


왕 걸은


자신을 보증할 인간까지 죽였다고


왕 걸은


왕의 자격이 없다고


그 생각을 한건 성기도 마찬가지였다.


태양과 달이 각각 하나여서 왕의 신성이 부정된 마당에


의례를 주관하는 예부상서 상헌을 죽인 건 왕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한 행위다.


이제 왕은 폭력으로만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


천명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니다.


성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천도 생각했다.


왕 걸이 저러는 건 인간의 시대가 왔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이라고


인간의 시대가 왔음을 인정하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할 수 없으니...


제사장 천지도 생각했다.


신이 왕 걸을 버렸다고


아니


왕 걸이 먼저 천명을 어겼다고


상헌이 죽은 후


성기는 생각했다.


상헌이 찢겨 죽는 광경을


그가 선택한 침묵이 상헌의 팔다리를 찢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왕조를 지키겠다는 생각은 상헌의 비명보다도 더 무거웠다.


이후 왕 걸은 상헌을 죽이고 미쳐갔다.


진실을 말하는 자의 눈을 뽑고


귀에 황산을 뿌리며


손가락을 잘랐다.


백성들의 분노를 그렇게 짓눌렀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위와 아래 그 본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전국의 세역량을 몇 배로 늘렸다.


통법을 어기는 일이라고 관료가 말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았다.


한 조정 회의에서였다.


“전국의 세역량을 몇 배로 늘려라!!!”


그 말을 들은 한 형부상서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왕 걸에게 말했다.


“통법에 따르면 민정문서에 기록된 수량 이상의 것을 걷는 것은 왕이라도 불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세역을 거두면 백성들이 반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왕 걸은 칼을 들고 형부상서의 목을 겨누면서 말했다.


“죽고 싶은가? 천지왕의 가호를 받은 나에게!!!”


병부상서 성기는 그것을 보고 왕 걸을 막아섰다.


“폐하… 홍수가 난 상황에서 세역량을 몇 배로 늘리면… 백성들의 삶의 근간이 아예 파괴됩니다. 지금은 세역을 거둘 것이 아니라 선왕께서 적재해 두셨던 빙고의 곡식을 풀어 백성들의 삶을 돌보는 것ㅇ…”


“닥쳐라!!!”


왕 걸은 병부상서 성기의 뺨을 쳤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그 옆의 서리를 죽였다. 그러자 형부상서는 엎드려서 두려움에 떨었다.


“폐…폐하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통법은 고치면 되옵니다!!!”


그 말을 들은 왕 걸은 드디어 껄껄 웃기 시작했다.


“드디어 위와 아래의 본이 보여지기 시작했구나 허허… 형부상서 통법을 고쳐 세역량을 몇 배로 늘려라!!!”


형부상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대답했다.


“네… 네!!!”


왕 걸은 옥좌에 걸터앉아 조서를 내렸다.


“전국의 세역량을 몇 배로 늘려라!! 그리고 그 세역을 거둘 징세관은 짐이 직접 임명할 것이다!!!”


거탄이었다.


원래 징세관은 구실아치, 왕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방관이 재량껏 임명하는 이속인데 왕이 직접 임명하겠다는 것은 왕이 직접 세금을 착복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병부상서 성기는 그 말을 듣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말했다.


“이 나라는 망했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 걸은 옥좌에서 내려와 지껄였다.


“그럼 이제 내 별궁에서 허리운동 하러 가야겠군… 나머지 일은 경들이 알아서 하시오!!!”


그리고 이제 왕 걸은 미동들을 성폭행하러 별궁으로 갔다.


이후 왕 걸은 징세관을 임명했다.


왕 걸이 임명한 징세관은


굶주린 자의 양식을 빼앗았으며


세간살이까지 털어갔고


없는 자는 자식까지 빼앗아갔다.


이것을 행하는 징세관을 마치 호랑이와 같다 해서 맹호라 불렀다.


맹호들은 주먹으로 굶주린 백성들의 양식을 빼앗았으며


그 중 일부를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세역은 당연히 재해 복구에 쓰이지 않고


왕 걸의 호화생활에만 쓰였다.


매일같이 잔치가 벌어졌으며


왕 걸을 피둥피둥 살이 쪄갔다.


왕 걸이 그러는 이유는 단 하나


권력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불안함을 호화생활로 덮으려는 것이었다.


어린 미동과 아름다운 여자는 왕 걸의 침실에 불려갔으며


충격에 자살하는 자도 있었다.


간언하는 관료도 있었지만


왕 걸은


"감히 위를 거스르려는가? 천지왕의 가호를 받은 자를?"


라고 말하며


그 관료의 팔다리를 베어 죽였다.


하지만 왕 걸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군사들은 이제 왕 걸이 아니라 자신의 상관 즉


성기를 따르고 있음을


성기는 왕궁 근처를 돌아보았다. 풀벌레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상헌과 성기가 처음 제물 의례를 두고 다투던 곳이었다.


성기는 혼자 중얼거렸다.


"결국 결과는 이리되는 것인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성기의 모습을 천문관 지천이 보았다. 천문관 지천은 그 모습을 보고 성기에게 인사를 했다.


"병부상서 어르신 기체 만수무강하십니까?"


성기는 지천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긴 정적 끝에 성기는 한마디를 꺼냈다.


"할 말이 뭔가?"


"지금의 왕에게 왕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문관 지천은 그때 해나래가 쌍성일을 끝낸 것을 본 이 그래서 그의 질문은 큰 무게를 가졌다.


"그건 왜 물어보는가?"


지천은 말했다.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시간이 멈추어 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폭정에 시달려야 합니까?"


성기는 그 말의 뜻을 잘 알았다.


지천은 인간이


백성이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기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선택의 책임을 지지 못하네 그리고 사람들은 하늘의 뜻에 자신들의 뜻을 맡겨 놓아야 하네 그래야 혼란이 없고 그래야 살상이 없네 모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 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 그건..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성'이네. 그 불완전성을 막기 위해 난 그 옥좌에 앉은 버러지를 지키는 거고 천나라를 지키는 거네."


지천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생각도 병부상서의 선택이 아닙니까!"


병부상서 성기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맞네 난 선택하겠네. 사람들의 선택을 막는 선택을."


"변화보다 안정을."


지천은 그 말을 듣고 성기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걸 보고 성기는 한마디를 밷었다.


"걱정 말게. 방법이 생기면 옥좌에 앉은 그 망나니는 처리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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