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by 이엘

왕 요가 죽었다.


쌍성일의 홍수로 인해서 죽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걸 왕자는 남았다.


그는 포악한 자


천나라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는 구 질서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어야 한다.


진보는 멈추어야 한다.


그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걸 왕자는 깨달았다.


쌍성일이 사라지면서 그에 기반한 달력 체계가 무너졌음을


쌍성일이 사라지면서 그에 기반한 제도가 무너졌음을


쌍성일이 사라지면서 그에 기반한 시간의 권력이 무너졌음을


그것은 신질서의 도래를 뜻했다.


외세의 도래를 뜻했다.


외세 또한 독자적인 역법을 쓰기 때문이다.


달력을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였던 권위는 사라진다.


물을 다스리는 국가는 이제 없다.


이제


권력은 끝난다.


신수 기린의 신탁도 들리지 않는다.


물론 천지왕의 신탁도 들리지 않는다.


그건 하늘이 천나라를 버렸다는 것


걸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에게 명했다.


"지금껏 그래왔던 대로 제사를 지내라... 천지왕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탁을 내린다."


그 말을 듣고 제사장 천지는 생각했다.


여자를 겁탈하고 노역자를 때려죽이는 이지만... 시간을 멈추는 데에는 명백한 재능을 보이는군.


걸 왕자의 즉위식


모든 군사는 도열했고


비단으로 왕이 가시는 길을 장식했다.


왕을 상징하는 꽃으로 비단길을 장식했으며


신하들은 깃털을 관에 꽂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대홍수가 지나간 다음이었지만


왕위 계승식은 화려했다.


백성에게서 물자를 뜯어내어 왕위 계승식을 화려하게 치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왕이 건재함을 보이는 것


천나라가 건재함을 보이는 것


그래서 백성에게서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백성에게서 생필품을 뺏아간 대가로 천나라 조정은 백성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전 왕은 그래도 세금을 가혹하게 걷지는 않았어!!"


"홍수가 끝난 지가 언젠데 세금을 이렇게 가혹하게 걷는단 말인가!!"


"하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나라는!!"


그런 백성의 저주를 받으면서 왕위 계승식은 이루어졌다.


하늘이 하늘이 아니고 백성이 하늘이라 했던가?


천나라는 중요한 것 하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나라는 망한다는 것을


권위를 아무리 세워보았자


백성의 마음이 떠난 나라는 망한다는 것을


예부상서 상헌은 그 꼴을 보면서 한탄했다.


"이 나라는 망했군."


왕위 계승식이 끝나고


왕 걸은 역사서를 다시 편찬하기 시작한다.


왕 걸은 사관들에게 명령했다.


"들어라!! 해나래가 쌍성일을 없앤 것이 아니라 애초 천지왕이 자비를 베풀어 주어서 태양 두 개가 태양 하나로 달 두 개가 달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그렇게 기록해라!! 그것이 진실이다!! 진실 아닌 것을 말하고 기록하는 자의 눈을 뽑고 혀를 자르고 손가락을 뽑아라!!"


그 말에 사관들은 두려워하면서 역사 기록을 고쳤다. 해나래라는 이름을 역사서에서 완전히 지우고 천지왕의 자비로 태양 두 개가 하나로 달 두 개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조작된 '진실'을 역사서에 실었다.


천태산에서 겨우 생존해서 돌아온 병부상서 성기는 그것이 허위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는 없었다.


진실을 파묻어서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해나래가 영웅시 되고 있다.


그것은 위험하다.


반란의 전조가 될 수 있다.


허위 진실이 이것을 덮을 수 있다면 반란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황개도 없다.


일천도 배신했다.


조공국 조선에게 권위도 세울 수 없다.


이제


이 방법밖에 없다.


왕 걸은 친히 정전 앞으로 나와 백성들에게 포고령을 내렸다.


1. 쌍성일이 사라진 것은 천지왕의 자비다.


2. 해나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 두 가지 '진실'을 왕 걸은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하지만


믿는 이는 없었다.


왕 걸을 존경하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왕 걸을 호위하는 군사들이 없었다면


포고령을 들은 백성들이 왕 걸을 그 즉시 때려죽였을 것이다.


왕 걸의 목숨은 그저 군사들의 복종으로만 부지되고 있었다.


병부상서 성기는 백성들의 눈에 있는 사나운 불꽃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우리 천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성기는 그 눈빛에 있는 불꽃을 보고 회의했다.


자신이 이렇게 진실을 감추는 것이 옳은지.


그 순간 성기는 떠올렸다.


옥사에서 예부상서 상헌이 했던 말을


"행동 없는 생각은 공허한 법이라네."


그 말을 떠올리고


성기는 어째서 그 말이 떠오르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라는 걸


한편


예부상서 상헌은 포고령이 떨어진 후 생각했다.


왕 걸은


아니 걸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신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인간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모르고 있다면 알려주면 된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상헌은 목간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동시에


병부상서 성기는 생각했다.


왕 걸을 지지하는 것이 옳은지.


그는 세자 시절부터 부녀자를 겁탈하고 노역자를 때려죽이던 이다.


왕의 자질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니


인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왕 요의 정통 후계자이다.


그리고 그의 방식은 질서를 지키기에는 맞다.


시간을 멈춘다.


그건 질서를 지키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왕 걸은 그걸 알고 있었다.


질서와 폭정 그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성기 자신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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