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by 이엘

석달 뒤


쌍성일 때문에 일어난 홍수로 인해 생긴 식량 부족


육의전의 폐쇄로 인한 상공의 끊김


필수재 단절에 의한 물가의 폭등


기근


재해


짐승의 습격


도적의 준동


수탈까지


한 지역에서는 이런 일까지 일어났다.


징세관 맹호가 세역을 거두자 지역 가구들이 집단 이주를 시작했고


떠난 집의 세역까지 남은 집이 떠맡아야 하는 기괴한 현상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집단 이주를 한 가구들은 곧 모여 도적이 되었고


중앙으로 가는 세역 수레를 훔쳐 착복했다.


자연스레 중앙의 조세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왕 걸의 폭정은 멈출 줄을 몰랐다.


참다 참다 못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곳곳의 징세관들이 즉었고


그들의 목은 장대에 매달렸다.


반란을 막아야 할 지방관들도 도망을 쳤다.


지방군도 폭도들에 동조했다.


왕 걸은 갈갈히 날뛰면서 모두를 참수하겠노라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병부상서 성기에게 반란을 진압하라 명령을 내렸다.


성기는 아직 왕 걸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군사를 출동시켰다.


하지만


쌍성일 홍수로 인해 출동시킬 수 있는 군대는 고작 2천 남짓


반란을 진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성기는 이 같은 상황이 성가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왕조는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반란을 진압하고 반란 주동자를 거열형에 처했다.


계속해서 죽였다.


그러다 보니 군사들도 피로해졌다.


"언제까지 저 왕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지?"


"저 왕 놈은 우리를 졸로 부려먹기만 하고."


"같은 나라 백성을 죽이다니."


그 시각 관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성의 민심이 떠났어


우리도 가만 있으면 폭정에 가담한 신하라는 평판이 붙을 거야


우린 죽기 싫은데...


그런 마음이 모이고 모여


성기에게 힘이 쏠리기 시작했다.


한편


반란의 주동자들이 잡혀왔을 때


왕 걸은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저들을 모두 죽여라!!"


하지만 군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왕 걸에 대한 짜증이 날 대로 났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을 멈춘 것은 성기였다.


성기는 그 단단한 몸짓으로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처형해라."


그제서야 군사들은 반란의 주동자들을 처형했다.


왕 걸은 이제야 만족했는지 미동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러 침실로 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관료들은 깨달았다.


권력이 성기에게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을


왕은


그저


허수아비임을


그날 밤


성기는 밤까지 일하고 있었다.


성기는 서리를 진두지휘하면서 각 현에서 올라온 민정문서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민정문서들과 과거의 기록을 대조해라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현재 거둘 수 있는 세역의 양을 측정해라 또한 황허의 밭을 재측정하라!!”


“네!!”


서리들이 한 목소리로 성기의 명령에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성기가 그렇게 바쁘게 일하고 있는 와중


제사장 천지가 찾아왔다.


병부상서 성기와 제사장 천지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궁중에서 잠시 만났다.


제사장 천지는 궁중에서 대놓고 성기에게 물었다.


"권력이 병부상서께 이동했는데... 어찌하실 것인지요?"


병부상서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제사장 천지에게 말했다.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움직이는 건 자네와 나 그리고 천문관 지천이지. 왕 걸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해 하지만 왕 걸을 그대로 놔두는 이유는 그런 허수아비라도 있어야 천나라가 유지되고 천나라가 유지되어야 지방에 있는 토호들과 외세가 침공하지 못하네... 천나라의 정통성을 떠받치고 있다는 '허상'이라도 유지되어야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네."


제사장 천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왕의 가혹한 조세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왕을 제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병부상서 성기는 그 말에 단호히 대답했다.


"그 폭동의 공통점은 바로 왕이 임명한 *군수와 *현령은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네... 구실아치인 징세관은 불에 태우고 목을 잘랐을지 몰라도 왕이 임명한 지방관은 모욕을 주는 선에서 그쳤지... 아직까지는 백성들이 천나라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네... 그런데 내가 왕을 죽여 왕조 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참고 참았던 백성들이 폭주하게 될 걸세, 곳곳에서 왕을 자처하는 자들이 늘어날 거고 전국은 난세가 되겠지... 쌍성일 만큼의 지옥이 도래하게 될 걸세. 그것만큼은 막아야 하네. 난 관리자야 난... 천나라의 마지막 수호자야... 천나라가 망하게는 둘 수 없어!!"


* 군수: 천나라 지방 행정의 말단, 군을 지배하는 지방관이며 군의 군사 사법 행정을 맡는다. *민정문서를 작성하여 고을의 모든 것을 조사한다. 군수 밑에는 *판관과 군관 그리고 징세관과 *육방이 존재한다.


* 현령: 군수 위에 있는 지방관 군수는 현령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며 현령 밑에는 10개 내지 20개의 군이 있다. 현령은 군수에 대한 동원령과 감찰권을 가지고 있다. 천나라는 총 26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 민정문서: 군의 가구와 식생, 지리에 대해 조사한 관찬 보고서 천나라는 이것을 기반으로 세역을 걷는다.


*판관: ‘군’의 사법을 담당하는 지방 관료 징세관과 다르게 중앙에서 임명하는 정식 관료이다.


* 육방: 각각 인사, 재무, 의례, 군사, 치안, 공사를 담당하는 구실아치 정식 관료가 아니다.


천지는 관복을 펼치면서 말을 했다.


"그래도 지금 왕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맞네 지금 왕을 그대로 두는 건 악수 중 악수지 그 성폭력에 미친 색귀 자식.... 그 자식 때문에 죽은 미동과 여인이 몇인지... 그대로 두진 않아... 조만간 '적절한' 왕족 하나를 찾아 왕위 계승을 시킬 생각이네. 그때 자네가 정통성을 보증해주게."


천지는 병부상서가 왜 자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았다. 지금 왕은 남몰래 교체한 다음 천나라 왕족의 피가 흐르는 아무나에게 정통성을 부여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즉 천명이 필요한 것이었다.


즉 성기는 왕 걸을 버렸다.


하지만 천나라를 포기할 생각도 없는 듯 했다.


지천이 말한 대로 인간의 시대를 인정할 마음도 없는 듯 했다.


그래서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한 것이다.


그래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한 것은 왕 걸의 뜻이 아니라 병부상서 성기의 뜻이었다.


천지는 병부상서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병부상서를 따르겠나이다."


성기는 천지를 그저 쳐다보았다.


"고맙네."


"고맙긴요."


그러고 천지는 나갔다.


천지가 나간 후 성기는 상헌의 말을 되새겼다.


"행동 없는 생각은 공허한 법이라네."


성기는 그 말을 되새기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상헌, 난 선택하겠네. 안정을."


한편


민간에서는 반역 모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일개 반란 따위가 아니었다.


천나라에게 반역하자는 것이었다.


이 모임의 지도자 '주'는 하늘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질서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인간의 질서는 인간이 세워야 하고 백성의 천명을 받은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주는 선언했다.


"해나래가 쌍성일을 없애고 인간의 시대를 열었는데도 왕 걸은 그걸 인정하지 않고 폭정을 벌이고 있소이다. 왕 걸은 상헌을 죽임으로써 스스로의 정당성을 죽였고요. 우리는 이제 지방관을 죽이고 천나라라는 왕조를 없애버립시다. 인간의 천명이 지도자를 뽑는 새 시대를 엽시다."


좌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주'의 대답에 응했다. 그들은 사발통문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었다.


사발통문이란 원형으로 반란자들의 이름을 쓰는 것 원형으로 썼기 때문에 주모자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도 존재한다.


그들은 지방관을 죽이고 왕 걸을 죽이기로 맹세했다.


그건


천나라를 거스르는 반역이었다.


하늘을 거스르는 반역이었다.


주는 말했다.


"거악 천나라를 무너뜨리면 천명을 받은 자를 왕으로 옹립합시다."


모두는 그 말에 동의했다. 천명, 백성의 동의, 그걸 받은 자는 왕의 자격이 있다. 그것이 인간의 시대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천명이라는 것은 피로 쓰여진다는 것을 말이다.


천명을 받기 위해서는 경쟁자를 모두 죽여야 한다는 그 역설적인 명제를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 자신이 하늘이 되고자 하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성기가 막고자 했던 혼란이었다.


성기는 궁정 바깥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밤을 거닐고 있었다. 기둥 사이로 달빛이 새어나와 묘한 분위기를 주었다. 성기는 그것이 지금 현 상황과는 걸맞지 않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궁정 안은 적막했다. 벌써 궁인의 절반 이상이 이탈했다. 궁인 뿐만이 아니라 실무를 맡은 관료 대부분이 도망을 치거나 쌍성일 홍수 때문에 죽었다.


천문관 지천이 고민하고 있던 성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지천과 성기는 천태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즉 진실을 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는 방향은 달랐다.


지천의 말에 성기는 대답했다.


"고민이 많지,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상서는 쌍성일 홍수에 죽고 수교와 수차 그리고 수로를 담당하는 수문상서는 도망쳤어 그 밖에도 많은 상서와 실무 관료 그리고 궁인들이 도망치거나 죽었지. 이 나라는 굴러가는 것이 신기하네."


지천은 고개를 굽히면서 말했다.


"지금 대부분의 업무를 병부상서께서 하시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렇다. 지방 반란 진압, 재정 관리, 궁 관리, 수도 치안 관리, 반역자 색출까지 모두 성기 혼자서 담당하고 있다. 성기가 조정의 실세인 것이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옥좌에 앉은 그 짐승이 제 할일을 안하니 나라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지천은 성기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왕은 전 왕 요와 다르게 사치와 항락 그리고 성폭력에만 빠져 있는 짐승만도 못한 요괴이다. 지방 반란과 쌍성일 홍수로 인해 지방에서 오는 세금이 급감한 와중에 왕 걸은 사치와 항락을 일삼으면서 거의 없는 국고를 거덜내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궁인들은 죽이기까지... 궁인들이 탈출하는 건 왕 걸의 영향이 제일 컸다.


성기는 작금의 상황을 지천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반란은 속출하고 있어 하지만 이를 진압할 관료들과 중앙군은 턱없이 부족하지. 쌍성일 홍수 이전에는 중앙군이 예비대까지 포함해서 2만 가까이 되었지만 이젠 쌍성일 홍수 때문에 중앙군은 2천도 되지 않네.”


성기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지방군까지 반란군과 도적떼에 가담하는 실정이야. 반란과 홍수로 인해 소출이 줄어든 것 때문에 지방에서 오는 세금이 급감했고 관료와 군사들에게 줄 수 있는 급료도 줄었다네... 급료가 줄어서 관료와 군사는 더더욱 줄고 있고 육의전에서 오는 상공마저도 끊겼다네 게다가..."


성기는 계속 말을 이었다.


"수도 황허의 인구도 20만에서 3만으로 급감했지 쌍성일 홍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은 데다가 수교와 수차 그리고 수교도 박살나서 오물을 처리할 방도도 없어졌기 때문에 전염병이 돈 탓이야. 수도의 사람이 줄어들면 세금도 걷을 수 없고... 수도로부터의 세금까지 감소했기에 지금 조정은 겨우 기적적으로 돌아가는 판국이야. 그 와중에 걸 그 망나니는 사치와 항락에 빠져 있고 말이야. 내가 없으면... 조정은 그냥 무너질 걸세."


지천은 그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병부상서께서는... 해나래의 선택을 증오하십니까?"


병부상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그건


증오인가?


아님


체념인가?


어쨌든 해나래의 선택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난 인간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네 알겠는가?"


지천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사람의 선택을 인정할 생각 자체가 없구나.


그저 질서를 유지할 생각 밖에 없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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