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by 이엘

다음 날 아침


왕 허의 조서가 거리에 나붙었다.


우선 사람들은 걸이 죽었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며


새 왕이 14살 정도의 어린 소년이라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조서의 내용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도 주변의 도적단이 내려왔으며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세역이 걷히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조세 수입도 약간이지만 늘어났다.


왕 허는 배고픔 때문에 도적질 한 자를 해방시켰으며


그들에게 왕궁 온실 논빝 일을 맡겼다.


수도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으며


삼시 세끼를 먹는 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축산을 시작했고


전염병 시체를 불태우고 왕명으로 빙고에 남아있는 곡식을 꺼내 백성을 구휼했다.


빙고에 그나마 곡식이 남아있는 까닭은 왕 요가 쌍성일 홍수 직전에 백성들에게서 상공과 빙세 그리고 세역을 거두어 물자를 비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어하튼


왕 허는


잡혀 있던 미동도 해방시켰다.


그렇게 민심이 안정되고


관료들은 지방관의 재파견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간자를 통해 알아낸 주는 흘러가는 상황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꼭두각시 왕이 생각 외로 유능하다니... 빨리 결판을 볼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2만의 군대를 수도 황허로 진격시켰다.


황허로 반군이 오게 됨에 따라 조정군은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진압군은 2천 남짓


그 상황에서 성기는 왕 허에게 전군 동원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원래 병부상서 성기는 현재로써는 거의 섭정의 위치 국왕 명 없이 군대를 동원할 수 있지만 굳이 국왕의 발병부를 요청하는 이유는 국왕의 권위를 세우고 천나라에 아직 국왕이 건재함을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반군들은 난세를 불러오는 적이었다


왕 허는 피비린내가 나는 것이 싫었다. 그것도 자신의 결정으로 그렇지만


왕은 선택해야 했다.


결국 왕 허는 선택했다.


병부상서 성기에게 발병부를 내리기로


이제


천하를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



왕 허는 지천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천문


지리


행정


문자


역사


윤리까지


원래라면 궁내부의 *상국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왕 걸이 공부하기 싫다며 처형하는 바람에 천문관 지천이 대신하는 것이다.


*상국: 왕의 스승


"그렇다면 지천 경 말대로 해나래가 해 하나 달 하나를 없앴기 때문에 이제 쌍성일은 없어진 것이오?"


지천은 왕 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땅은 주 태양을 일년 365일 돌고 달은 우리의 땅을 30일간 돕니다. 별의 미세 움직임에 의한 변수가 사라졌으니.. 이제 쌍성일은 없습니다."


왕 허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달 두 개가 뜬 것 때문에 홍수가 자주 났었는데.. 이제 그건 사라지겠어.. 이제 쌍성일도 사라졌으니 문명이 소멸하고 다시 생성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겠군."


지천은 고개를 숙였다. 왕 허의 말이 맞았지만 그 운명이 사라진 탓에 천나라는 하늘의 천명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 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쌍성일이 끝나 우리 천나라가 존재의의를 잃었더라도 백성만 무사하면 되네. 어차피 나라라는 건 백성을 위해 있는 것 아닌가?"


왕 허는 지천에게 물었다.


"해나래 그 아이 나와 동갑인 그 아이는 어떤 아이였지? 지천 경?"


지천은 해나래를 회상했다.


해나래는


질문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운명에 저항한 아이였다.


지천은 그저 왕 허에게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해나래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새장속에 갇히지 않는 아이였나이다."


왕 허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천에게 물었다.


"지천 경 난 자유롭지 않은가?"


지천은 그 말에 대답했다.


"그건 폐하가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자유로운 것이고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면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 말에 왕 허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간은 때론 상황을 이기지 못해 나도 왕의 자리를 감당 못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지."


지천은 그 소리를 듣고 왕 허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백성의 보호자


모든 백성의 어버이


그 모든 수식어가 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고


저 아이의 자유를 박탈했다.


인간의 시대가 이런 것이었는가?


선택의 자유가 이런 것이었는가?


지천은


어째서


하늘이


고통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는지 궁금해했다.


그건 상헌이 가졌던 의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의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 허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날아가는 새를 보았다.


그 새가 자신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다음날 아침


정전 회의


병부상서 성기는 왕 허에게 발병부와 *부월을 받고 군을 준비시켰다.


*부월: 왕을 상징하는 도끼


병부상서는 관복을 입고 부월을 받았다. 사실 성기는 관복을 입지 않고 전신 갑주를 입은 채로 부월을 받으려고 했다. 그래야지 어린 왕이 실세가 아니라 자신이 실세임을 각인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디 왕 앞에서 전신 갑주를 입는 것은 반역 그렇기에 성기는 왕을 존중하기 위해 갑주를 입지 않았다.


그것은


왕 허를 인간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나온 결정


왕 허를 진짜 왕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나온 결정


왕 허를 객체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결정


왕 허 앞에서 갑주를 입으면 왕 허는 허수아비로 전락한다. 관복을 입을 때 성기는 왕 허를 같이 가야 할 동반자로 인정한 것이다.


신하로써 말이다.


성기는 왕에게 고했다.


"폐하 반역도를 모두 소탕하겠나이다.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왕 허는 관복을 입은 성기의 눈동자를 보았다.


신념이 있었다.


질서가 있었다.


안정이 있었다.


그 특유의 직감력으로 왕 허는 성기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었다.


그래서 왕 허는 성기를 격려하기로 했다.


왕 허는 성기에게 말했다.


"잘 다녀오시오... 반역도를 소탕하면... 한 명의 왕을 죽인 것은 용서하도록 하겠소이다."


"!!!!!!"


명백히 성기가 왕 걸을 죽인 것을 공론화 한 것이었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저 소년왕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왕을 교체한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다니.... 이건 반란을 진압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동시에... 자칫하면 날 갈아치울 명분까지 공식석상에서 공론화한 것이 아닌가?


명민한 왕이었다.


책임감 있는 왕이었다.


강한 왕이었다.


그 생각에 성기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왕 허를 선택한 것은 옳았다.


아니


왕 허를 모신 것은 옳았다.


성기는 자신의 마음속에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충성심이 생기는 것을 목도했다.


왕 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기는 왕 허에게 고했다.


"폐하... 이 몸 폐하에게 영원토록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그리고 부월을 들고 말을 탔다.


하지만 성기는 몰랐다.


영원이란 단어는 없다는 것을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반군 지도자 주는 군대 2만을 진군시켰다.


주는 생각했다.


훈련되지 않은 군이었다.


지휘 체계는 잡혀있지 않았고 중간 장교도 없었다.


게다가


소년왕 왕 허의 치세가 널리 알려진 탓에 사기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는 하루 빨리 수도에 입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보망이 없다.


군량은 각자 들고 온 식량밖에 없다.


하루빨리 수도를 탈환해야 약탈이 일어나지 않는다.


약탈이 일어나면 민심을 잃는다.


관료들의 관심도 잃는다.


만약


수도 공성전이 지속되어서 성기가 공문서들을 다 태워버린다면 수도의 행정을 파악할 수가 없다.


빨리 함락해야 한다.


수는 많지만 지금은 불리하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왕 걸이 계속 집권했다면... 좋았을텐데..."


만약 지금 사라진 해나래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정치적 중심은 그녀에게로 이동한다.


해나래는 상징으로 남아야 한다.


만약 해나래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죽여야겠지."


그는 다짐하듯 말했다.


마침내 그의 군은 수도 황허에 닿았다.


그의 군과


성기의 조정군의


대결이다.


주의 군대가 오기 몇 시진 전


왕 허는 군사들 앞에 나와 연설했다.


"군사들이여 수도로 반역군이 오고 있다. 반역군이 오면 수도가 멸망한다. 수도가 멸망하면 그대들의 가족이 죽는다!! 그러니... 염치 없지만 부탁한다. 싸워다오... 그것이 무능한 내가 할 수 있는 부탁이다."


그때 창을 거꾸로 쥔 병사가 한 사람 있었다. 그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덜덜 떨고 있었다. 왕 허는 그 자를 바라보더니 그의 이름을 말했다.


"자네의 이름이 형진이지 아마?"


그 병사는 왕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깜짝 놀랐다. 전 왕은 자신들을 부려먹기만 했는데 이번 왕은 자신들의 이름을 기억해준다. 그것이


병사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왕 허는 계속해서 말했다.


"두려운 것 알고 있네 하지만 여기에는 형진 자네의 가족도 있지 않나? 조정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주게."


창을 거꾸로 쥔 그 형진이라는 군사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창을 다시 제대로 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모든 군사들이 왕 허에게 환호성을 질렀다.


"왕 만세 만세 만세!!!"


그것은 군심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성기는 그것을 보고 어쩌면 이 싸움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법이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후 대치가 시작되었다.


칼 대 칼


창 대 창


활 대 활 이었다.


주는 신중한 자 민병들이 공성전에 약한 것을 알고 무조건 돌격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하지만


외쳤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가 되었다. 천명은 이제 백성에게로 돌아왔다!! 언제까지 낡은 왕조에 복종할 생각이냐!!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


그렇지만 전군 총사령관 성기는 그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하늘의 질서는 영원하다!! 너희는 천명을 어긴 반역도다!! 왕을 어긴 반역도다!! 반역자는 너희들이다!!"


그리고 성기는 활을 쏘았다.


화살은 주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주는 담력이 있는자 그것은 그자가 옛 처형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헌을 처형한 처형관이었다.


상헌을 처형한 처형관으로써 천명이 끝났다는 것을 체감한 사람이었다.


그의 담대한 몸집, 그의 눈빛, 그의 단단한 근육은 그의 진정한 힘이 아니었다.


그의 힘은 힘이 진리라는 사상 즉 생각이었다.


그는 스스로 외쳤다.


"나는 왕 걸의 명으로 상헌을 죽인 처형관!! 그때 깨달았다. 힘이 곧 진리라는 것을!! 천명은 이제 백성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을!! 성기 너는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꿈쩍하지도 않았다.


이미


질서를 위해 죽기로 마음먹은 터


저자는 반드시 죽인다고 맹세했다.


주는 말을 돌려 되돌아갔다.


탐색전의 끝이었다.


성기는 부관과 함께 작전 회의를 열었다.


부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군량도 부족하고 말먹이 풀도 부족합니다. 성벽도 군데 군데 뚫려 있고 결정적으로 숫자가 열세입니다. 이럴 때는 수성전으로 나가야 합니다."


주변의 모든 부관들도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관이 한 말이 정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기는 생각이 달랐다.


"난 생각이 다르네... 군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연전을 펼치면 우리가 안에서 무너질 수가 있어 민심이 무너지면 끝장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단기전으로 끝내야 하네..."


부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어떻게 단기전으로 끝내실 생각이십니까?"


성기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2천의 군사를 성 밖으로 끌고 가서 기습한다. 주 공격 전법은 화공으로 한다. 적들은 훈련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껏 쌓아온 실전 경험이 있다. 그 차이는 크다. 게다가... 적들은 우리가 수성할 것이라 생각하지 기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기습해서 적의 물자 중심으로 태운다."


부관은 성기를 만류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적의 본대에 의해 본성을 뺏길 수 있습니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게 적의 허를 찌르는 거네... 적들은 우리가 본진을 비우리라고는 절대 생각도 못할 테니까."


그 말에 좌중은 조용해졌다.


성기는 부관들에게 일렀다.


"군사들에게 무장을 최소한으로 하라 이르고 기름통을 들라 명하게 이번 작전은 오늘 밤 이루어지네 최대한 적의 수를 줄여 놓아야 하네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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