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군사들은 경장을 하고 기름통을 들었다. 그리고 성 암문으로 은밀히 나왔다.
군사들은 적의 보초를 은밀히 죽인 후 적진을 포위했다.
그런 다음 적들의 군막과 군량통에 기름을 부었다.
성기는 기름을 다 부은 것을 확인하고 손을 내렸다.
성기가 손을 내리자마자 병사들은 기름에 불을 붙였다.
삽시간에 군영에 불이 붙었다.
바람까지 더해지면서 불은 삽시간에 군영 밖으로 번졌다.
반군들의 군량과 반군들의 무기 그리고 반군들의 몸과 생명은 화마에 타기 시작했다.
지글지글지글
"이게 무슨 일이냐!!"
반군 지도자 주가 상황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관이 주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기습입니다. 적들이 군막에 불을 질렀습니다!! 지금 아군이 불에 타고 있습니다!!"
"뭐라!!"
주는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온 주의 눈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천나라 조정군의 칼에 맞아 죽는 병사
불에 타 죽는 병사
오인받은 칼에 맞아 죽는 병사
각종 방식으로 병사들이 죽기 시작했다.
주는 이빨을 갈면서 말했다.
"젠장 성기 놈이 기습을 쓰다니!!"
하지만 주는 지도력이 있는자 금방 정신을 차리고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불을 꺼라!! 군량과 군막에 붙은 불부터 꺼야 한다 사람은 나중이다!! 사람에게 붙은 불은 나중에 꺼라!!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주의 지도에 따라 반군들은 물통을 들고 군막을 왔다갔다 했다.
주의 빠른 판단 덕분에 불은 진정되고
반군은 태세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성기는 반군이 태세를 정비한 것을 알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후퇴하라!!"
그렇게 천나라 조정군은 본성으로 후퇴했다.
하룻밤 사이에 죽은 반군은 무려 오천명이었다.
대승이었다.
주는 기습이 끝난뒤 생각했다.
성기 놈이 기습을 한 것은 저들도 급해서라고
하지만
적들은 우리 편을 절반도 죽이지 못했다.
아직 수적 우위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
계속 들이치면 된다.
주는 자신의 막사에 들어온 부관에게 명령했다.
"총공격해라."
다음날 아침
적 민병들은 활을 쏘고 돌팔매질을 하고 사다리를 성벽에 걸면서 올라갔다,
천나라 조정군은 끓는 물을 붓고 돌을 던지고 화살을 쐈다.
때론 적의 상처에 오물을 투척했다.
주는 명령했다.
"총공격하라!! 적이 숨쉴 틈조차 주지 마라!!"
그러자 부관이 주에게 걱정하듯 말했다.
"지난밤 적의 화공으로 오천이 당했습니다. 우리 측의 사기가 떨어진 마당에 총공격이라니 패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때 주는 부관의 뺨을 쳤다.
"경거 망동 하지 말게 패한다니..."
부관은 부푼 뺨을 어루만지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는 부관에게 설명했다.
"잘 듣게 적은 우리보다 숫자가 적고 우리는 적보다 숫자가 많네 그렇기에 우리는 군사를 교대시키며 싸울 수 있지만 적은 군사를 교대시키며 싸울 수가 없어 성벽이 비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총공격을 명한 거네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언젠간 틈이 보이니까!! 그것도 내가 설명해주어야 하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말을 듣고자 함이 아니야. 자네는 어서 가서 후방에 물린 군사들의 사기와 체력이나 돌보게 이제부터 체력전이네 알겠는가?"
"네!!"
한편
도성 안 천나라 조정군 진영
성기는 적들의 총공격을 막아내느라 지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지휘했다.
때론 직접 적을 죽였다.
성기는 생각했다.
적 지도자가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걸? 바로 총공격이라니... 젠장 사기가 떨어질 틈조차 주지 않고 있어 이렇게 된다면 우리 군의 체력이...
그때 부관이 성기에게 다가왔다.
"서쪽 성벽의 *대정 한사람이 죽었습니다!! 장교를 지정해 주어야 싸울 수 있습니다!!"
*대정: 현대로 치면 중대장
성기는 그 말을 듣고 속전속결로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용맹한 사람을 대정으로 뽑고 계속해서 전투를 하라 이르게!! 그리고 병사들에게 잠시 눈을 붙이라고 명하게 이제부턴 쉴 틈도 없을 거야!!"
"적들이 너무 저돌적입니다!! 너무 저돌적이어서... 무섭습니다..."
성기는 화살을 한대 쏘면서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네 이제부터!! 천나라 조정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렸어!!"
부관은 소리쳤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쪽 성벽으로 사라졌다.
성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왕조를 지켜야 한다."
하루는 조정군이 반군에게 활을 쏘았고
이틀에는 반군이 활에 맞서 방패를 들었다.
사흘 지나서는 반군과 조정군 모두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반군들은 연속적으로 공격했고 조정군은 그 공세를 계속해서 막아내었다.
그러다 보니
반군도 지쳤고
조정군도 지쳤다.
그 둘 모두
전쟁의 의미를 몰랐다.
왜 이 전쟁을 해야 하는지
왜 목숨을 바쳐야 하는지
천명이 무엇인지
조정군
반군
모두
가족과 저녁밥을 먹으면서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서로 칼로 베고 싶어하진 않아했다.
그들도 사람이다.
내가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이면 그 감촉이 칼끝으로 전해져 온다.
그 느낌은 더이상 내가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느낌
미래의 시간을 꺼뜨렸다는 느낌
도살자가 되었다는 느낌
내가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내 마음의 무언가가 꺼져간다.
군사들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수 있나?
살아갈 수 있나?
가족을 만날 수 있나?
병사들의 마음 속에 회의감이 들면 들수록 조정군과 반군 모두에 탈영병이 늘어났다.
그건 주와 성기 모두에게 막아야 할 문제였다.
그들 모두
전쟁을 일찍 끝내야 했다.
천명은 군사들의 마음 속에 있지 않고 그들의 마음 속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만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빠르게 전쟁을 끝내야 했다.
그래서 반군 지도자 주는 꾀를 내었다.
성 안을 무너뜨리기로
주는 밀사를 성 안으로 몰래 파견했다.
밀사는 주의 편지를 갖고 가장 낮은 성벽을 타고 넘었다.
주는 밀사에게 말했다.
"절대 성기에게 가지 말아라. 성기는 절대 전쟁을 멈출 사람이 아니다. 성기 주변의 사람을 포섭해라."
밀사는 그 말을 듣고 성기의 부관의 막사로 향했다.
성기 부관의 막사는 허름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호위 군사도 없었다. 하긴 성벽을 지키는 데 군사들을 모두 소진했을 터이니 부관을 지키기 위한 군사가 있을 턱이 없었다.
밀사는 부관의 막사로 들어갔다.
부관의 막사로 들어가자 짚으로 만든 침대가 보였다. 하지만 그 침대에는 부관이 없었다.
밀사가 부관의 막사로 들어간 순간 서늘한 칼날이 밀사의 목에 닿았다.
"누구나!! 적이냐!!"
밀사는 두 손을 든 다음 저항할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저는 저항할 의지가 없습니다. 저는 주 님의 밀사입니다."
"뭐라? 밀사가 여긴 왜 찾아온 것이냐!! 죽이기 전에 답해라!!"
밀사는 생각했다.
당장 죽이지 않는다는 뜻은... 당장은 우리 입장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 성기였으면 바로 나를 죽였겠지.
밀사는 주의 밀서를 부관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주 님의 뜻입니다."
부관은 주의 밀서를 펴 보았다. 거기에는 주의 말이 적혀 있었다."
"하늘이 누구든 무엇이 중요하겠소... 전쟁은 영웅을 만들지 않고 과부와 죽은 어린아이만 남깁니다. 이제 실수는 충분히 저질렀으니 전쟁을 끝냅시다. 장군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부관은 생각했다.
돌아가길 원하는 병사들의 눈빛을
팔이 잘려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들의 신음을
화살에 맞아 썩어가는 병사들의 살을
전쟁은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생각에 밀사는 쐐기를 박았다.
"군사들이 이동할 길만 알려주신다면... 항복한 병사들의 신변은 보장하겠습니다. 이건 주 장군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부관은 흔들렸다.
정말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단 말인가?
내 선택으로?
부관은 밀사에게 물었다.
"정말로 항복한 병사들의 신변은 보장해주는 것이 맞나?"
밀사는 단언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 말에 부관은 마음을 굳혔다.
전쟁을 멈추기로
성기를 배신하기로
"길을 알려주지."
부관은 암문을 알려주었다.
그 암문으로 반군이 쏟아져 들어왔다.
갑작스런 기습으로 성기는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냐?"
하지만 항상 왔던 부관은 달려오지 않았다.
여기서 성기는 부관이 본능적으로 배신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성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성기는 칼을 들고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반군들이 조정군을 죽이고 있었다.
사실
전의가 상실한 조정군은 이제 무기를 버리고 있었다.
반군들은 성기를 찾아다녔다.
"반역자 성기를 찾아라!!"
"반역자 성기를 찾아라!!"
"반역자 성기를 찾아라!!"
성기는 이제 패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왕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깨달았다.
왕에게 충성을 바쳤다.
왕은 지켜야 한다.
왕은
어리다.
이 난세에서 보호해줄 어른이 한명이라도 없으면 그 아이는 무슨 힘으로 난세를 살아가겠는가?
성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성기는 궁중으로 갔다.
궁중은 텅 비었다.
모든 관료와 궁인은 도망쳤다.
천문관 지천만이 남아 있었다.
성기는 지천에게 말했다.
"자네 빨리 도망치게나..."
지천은 성기에게 단호히 말했다.
"저는 이 역사를 후대에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제 눈으로 이 역사를 목도할 생각입니다. 저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성기는 말 없이 지천의 어깨를 만졌다.
"......"
그렇게 성기는 정전으로 갔다.
정전으로 가니 왕 허가 옥좌에 앉아 있었다.
왕 허는 마지막 조정 회의를 주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 조정회의였다.
단지 성기만이 남아 있는 조정 회의였다.
성기는 왕 허에게 처음으로 울면서 고했다.
"도망치십시오!!!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이 조정 회의를 열어보았자 무슨 소용입니까!! 도망치십시오!! 옥좌에 앉아 죽으면 개죽음이 고귀한 죽음이 된답니까!! 도망치십시오!!"
왕 허는 두려움에 떠는 손을 억지로 붙잡으며 성기에게 말했다.
"고맙소... 경이라도 남아주어서... 하지만 난 도망치지 않겠소... 난 책임을 지겠소... 천나라의 '마지막' 왕으로써 백성에 대한 책임을 지겠소!!"
성기는 그 말에 죄책감이 들었다. 원래는 평범히 살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독단으로 저 어린아이를 옥좌에 앉히고 책임을 물렸다. 그 결과가 이꼴이다. 왕 허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누가 이 아이에게 왕의 책임을 물렸는가?
누가 이 아이를 죽음 직전으로 몰았는가?
누가 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 모두 성기 자신이었다.
그런 성기를 달래주려는 듯 왕 허는 성기에게 말했다.
"경은 잘못이 없소. 그저 신념대로 행했을 뿐... 왕좌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니... 죄책감 갖지 말고 도망치시오 나는 몰라도 경은 반군 손에 반드시 죽소이다."
성기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를 다짐했다. 그리고 왕 허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폐하 이건 신하로써 마지막 부탁입니다... 제발... 군주다움을 버려주시옵소서 그리고 제가 옆을 지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주다움을 버리라... 군주다움은 왕 허에게 지워졌던 짐이었다. 그 말이 끝나고 왕 허는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왕 허는 왕에서 인간이 되었다.
허는 성기에게 부탁했다.
"그럼 부탁하오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 주시오..."
성기는 허에게 고했다.
"네 폐하!!"
그렇게 말한 후 성기는 칼을 빼어든 후 왕 허 옆에 시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를 필두로 한 반군이 정전에 들이닥쳤다.
반군이 정전으로 들이닥쳤다.
성기는 반군들에게 우렁차게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가!! 여기는 폐하의 정전이다!! 썩 꺼지거라!!"
반군들은 웃으면서 성기를 비웃었다.
"어이구 그러세요? 그 칼로 천하를 호령하시겠소이다? 어디 우리를 전부 죽여보시오!!"
"하하하!!!"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왕 허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반군 사이로 지도자 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주는 성기에게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천명은 백성에게로 돌아가고... 천나라는 망했어... 결과가 이리 보여주지 않나!! 상헌을 왕 걸이 죽였을 때부터 천나라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저버렸어!! 인정하게 성기!!"
성기는 주에게 단호히 말했다.
"인정하지... 상헌을 죽인게 너 같은 폭군을 만들어내었다고... 하지만 네놈이 새 하늘이 될 것 같으냐? 아니? 네놈은 혼란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주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정곡이 찔렸기 때문이다.
그의 본질이 지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여기까지 온 사람은 멈출 수 없다.
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기는 주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날 죽여야지 네놈들의 세상이 열릴 거다!! 하지만 예언하지!! 네놈들은 그저 파도 위를 올라탔을 뿐이다!! 파도는 곧 내려오지!! 곧 네놈들의 세상도 내려올 날이 올거다!!"
주는 성기에게 칼을 겨누었다.
"닥쳐라!! 저놈을 죽여라!!"
그 말에 모든 반군들이 성기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 중 하나가 성기에게 칼을 쥐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성기는 그가 칼을 휘두르기 전에 그의 목을 갈랐다.
성기는 반군의 목을 가르면서 외쳤다.
"내가 있는 한 폐하의 몸에는 손끝 하나도 댈 수 없다!!"
그러자 다음 반군이 달려들었다. 성기는 다음 반군의 목도 베었다.
다음 다음 다음 반군도 달려들었다. 성기는 계속해서 목을 베었다.
목을 베고 등을 베고 가슴을 베었다.
용맹한 용장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왕을 지키는 진정한 신하였다.
그 기개에 반군들은 가까이 가지 못했다.
하지만
반군 하나가 성기의 몸에 칼집을 내었고
또 하나의 반군이 성기의 가슴에 칼집을 내었고
또 하나의 반군이 성기의 배를 찔렀다.
성기는 계속해서 싸웠다.
"폐하는 손끝 하나도 건들 수 없다!!"
왕 허는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감추었다.
성기가 자신을 진심으로 지켜주려고 하는 것에
결국 그도 죽음이 목전에 닥쳤다는 것에
자신의 보호자가 죽음에 다다랐다는 것에
절망을 느낀 것이다.
주는 반군들에게 명했다.
"활을 가져와라!!"
반군들은 주의 명대로 활을 가져왔다. 그리고 주가 손을 내리자 활을 쐈다.
순식간에 성기는 화살집이 되었다.
그러나
성기는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성기는 쓰러졌다.
그러나
성기는 왕 허를 쳐다보았다.
"폐하... 제발... 무사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성기의 동공은 죽었고
성기의 몸도 죽었고
성기의 질서도 죽었다.
왕 허는 옥좌에서 내려와 성기의 시신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반군 지도자 주는 싸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왕 허가 우는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주의 모습은 마치 나찰과 같았다.
그 모습에 반군들도 질려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주는 반군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물러가라."
반군들은 우물쭈물하면서 물러갔다.
반군들을 물린 다음 주는 울부짖는 왕 허에게 말했다.
"왕 허 너는 유능했다. 그 유능함 때문에 빨리 죽는 것이지만 말이야... 너가 나를 위해 해주어야 하는 일이 있다. 만약 해준다면...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이다."
왕 허는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건 천명을 너에게 옮기는 의식의 주례자가 되라는 것이겠지."
주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영특하다니... 아마 쌍성일을 끝낸 해나래만큼 영특하겠어...
주는 말했다.
"맞다. 천명을 나에게 옮겨라... 너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거다. 제사장의 역할을 해 나를 왕으로 만들면... 너는 살려주마."
왕 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살려주겠다? 그 말이 거짓임을 내 모르진 않는다. 전조의 왕을 살려두는 건 위험 부담이 큰 모험... 날 '은밀히' 죽이겠지.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오명을 쓰기는 싫을 테니까."
그 말에 주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역시 맞다... 하지만 죽는 방법을 고를 수는 있겠지... 거열형으로 온 몸이 찢겨 죽을 것이냐 아니면 목이 졸려 편안히 죽을 것이냐. 선택해라."
왕 허는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지천이 말한 인간의 시대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던가? 서로 죽이고 죽이는 살육의 시대? 권력을 얻기 위해 죽이는 짐승의 시대? 너가 원하는 대로는 하진 않겠다. 하지만 소원은 들어주지."
그렇게 말하고 왕 허는 유지를 작성했다.
유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 천지왕의 자손인 왕 허가 인정한다. 천명은 백성에게로 돌아갔으며 하늘의 뜻은 인간에게로 나온다는 것을 천명한다. 나는 여기 주를 왕으로 공인한다."
그리고 그 유지를 주었다.
"이것이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는 있을 터 왕이 되겠다는 욕심을 어디 한번 실컷 부려보아라..."
주는 궁금증이 들었다.
왕 허가 왜 이렇게 순순하게 굴지?
나를 원수로 여길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순순하지?"
왕 허는 그렇게 생각하는 주를 비웃었다. 그리고 저주했다.
"너희들은 천명을 도둑질했다. 너희들은 폭력으로 백성의 뜻을 훔쳤다. 너희들은 어린 왕을 겁박해서 왕의 자리를 찬탈했다. 그것이 역사에 진실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왕 허는 주에게 달려들더니 주의 칼로 자신의 몸을 찔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주는 깜짝 놀랐다.
"무슨 짓이냐!!"
왕 허는 마지막 저주를 남겼다.
"너희들이 인간의 시대를 피로 물들였다는 것은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ㅇㄷ...."
그렇게 왕 허는 죽었다.
그렇게 주는 패했다.
그 모든 것을 지천은 지켜보고 있었다.
3일 후
모든 것이 끝났다.
주는 왕위에 올랐으며
천나라의 남은 관료들은 주의 관료가 되었다.
이제
자신이 살고 싶으면 남을 죽여야 하는 인간의 시대가 왔다.
지천은 산 속으로 떠났다.
그리고 산 속에 초가를 짓고 풀만 먹으면서 살았다.
그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기록했다.
해나래가 쌍성일을 끝낸것
왕 걸이 폭정을 한 것
상헌이 죽은 것
성기가 질서를 유지하려 한 것
주가 폭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것
모두를
기록했다.
지천은 생각했다.
역사는 죽지 않는다고
그 순간 지천은 깨달았다.
왜 신이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지
그건
고통 없이는 깨달음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모든 것은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것
모든 것은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선택
그것이 인간의 시대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지천은 생각했다.
60년 후
지천은 90살 노인이 되었다.
주는 죽고 북방 민족이 중원을 정복해 이민족 왕조를 세웠다.
서역인들도 왕조를 세웠다.
조선도 왕조를 거듭했다.
남만에는 중원인이 내려가서 새 왕조를 세웠다.
쌍성일 시대와는 달랐다.
역사의 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택으로 인한 역사의 진보가 있었다.
지천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떠한 그림이 떠올랐다.
버섯 구름 폭발
검은 하늘
다시 뜨거워지는 대기
파괴되는 생태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원흉인 발전된 기계장치
지천은 깨달았다.
인간의 선택이 이젠 인간을 스스로 파멸로 내모는구나
내가 본 것은 인간의 선택이 불러올 미래
인간은 서로 망해가는 와중에서 서로의 신념을 붙들고 싸울 것이다.
이젠 인간이 쌍성일을 만든다.
그 시대를 위해
나는 기록한다.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