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by 이엘

첸은 거의 네 원 동안 두들겨 맞은 후 암실에 있는 감옥에 갇혔다.


거기에서는 물도 음식도 주어지지 않았다. 암실에 있는 감옥에 갇히면 밖에 있는 가족이 직접 물과 음식을 전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첸에게는 바나나와 우유가 나왔다. 첸은 왜 자신에게 이런 고급 음식이 나왔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굶주림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먹었다.


바나나의 껍질을 벗겨내고 흰 속살을 먹었다.


우유를 마셨다.


바나나 껍질에 있는 하얀 부분까지 긁어먹었다.


그러는 와중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큰 덩치에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사내였다.


첸은 그 사람을 보고 상류층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영양소가 제대로 갖추어진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고 운동을 하면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계층은 상류 계층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위에서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H-1 구역에서 사는 첸, 부모는 병들었고 석유 시추 공장 구역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하고 있다 했는가?"


그 말에 치안대장은 그 사람에게 굽신거렸다.


"네!! 타이지 님!!"


첸은 타이지란 이름을 듣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타이지란 이름은.... 황제의 비서관의 이름이었다. 그런 최상류층이 왜 자신에게 온거지?


첸은 타이지를 올려다보았다. 그걸 본 타이지는 첸을 보며 웃었다.


"첸...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너의 부모님을 병원에서 치료해 주도록 하지 그리고 많은 토큰을 너에게 주마..."


첸은 그 말에 머리가 뜨였다. 부모님을 병원에 입원시켜 준다고? 그게 무슨 제안이길래?


"무슨 제안이길래?"


타이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가... 바깥에 나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깥에 나가서 금목걸이랑 보석 반지를 가져왔다는 것도 말이야.... 우리는 그런 '거역자'가 필요하다. 바깥에 나가서 쓸만한 외부 자원을 가져와라... 고철이든 텅스텐이든 나사든 고무든 뭐든 좋다. 쓸만한 자원이면 무엇이든 가져와라..."


타이지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바깥에 있는 '황허'라는 곳을 탈환할 예정이다. 너가 그곳을 탈환하는 데 정찰병 노릇을 해 주면 고맙겠다."


황허 그곳이 무엇이지?


첸은 그런 의문을 가지고 타이지에게 물었다.


"황허가 어느 곳이지요?"


"황허란... 2000간격 전에 있었던 과거 문명이다. 모든 문명의 기원이지... 우리는 그 문명의 기원의 심장을 틀어쥠으로써... 문명의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방공호 문명 하나라는 바깥에 있는 다른 방공호 문명들을 제압할 것이다."


다른 방공호 문명들? 상상해 본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유일한 방공호 문명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방공호 문명이 있다는 것 그리고 2000간격 전에 바깥에 모든 문명의 기원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저는 알지 못했어요..."


그 말에 타이지는 웃었다.


"하층민은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언젠간 공표할 '진실'이었다. 우리가 '천명'을 가짐으로써 다른 방공호 문명들을 제압하는 것이 우리의 평생 숙원이다."


천명?


그건 예전에 노인이 알려주던 하늘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았다.


하늘과 천명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다.


지금은 순응할 때라고 첸은 생각했다.


그래서 첸은 타이지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순응하겠습니다."


타이지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스토커가 된 것을 환영하네 첸."


첸은 스토커가 되었다.


스토커가 됨에 따라 첸은 고된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총 쏘기


근력 운동 다섯 원


유산소 운동 세 원


원 시간은 중앙 탑에서 임의로 조정되었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 어림짐작할 수도 없었다.


잭나이프 다루기


장치를 푸는 방법


폭탄을 해제하고 설치하는 방법


방사능 차단복을 입는 방법


모두


훈련받았다.


너무 고된 훈련이었지만


밥만은 잘 나왔다.


삼시 세끼 고기와 밥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가짜 고기가 아니라 진짜 고기였다.


첸의 몸엔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기를 다루는 실력 또한 많이 늘었다.


가끔 첸을 힘나게 하는 것은 병원에 있는 부모님의 면회를 가는 것


부모님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살아만 있다는 것으로 기뻤다.


볼 수 있다는 것으로 기뻤다.


그저 기뻤다.


시간이 지나고 1간격 후 타이지는 첸에게 명령을 내렸다.


"황허 주변을 탐사해라...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방공호 문명을 정찰해라... 그것이 너에게 주는 임무다."


첫 임무였다.


잘 수행해야 했다.


첸은 고개를 숙인 다음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은 여전히 흑암이었다.


기형 생물들이 있었고 고철 더미와 콘크리트 더미가 있었다.


황허는 거대한 강 주변에 있다고 했지...


거대한 강은 북쪽에 있다.


첸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쪽으로 지도를 보면서 황허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고된 여정이었다.


먼지는 목에 찼고


콘크리트 더미와 고철 더미는 중간중간에 떨어졌다.


거대한 애벌레처럼 생긴 기형 생물은 길 가는 도중에 자신을 습격했다.


첸은 총을 쏴 기형 생물을 죽였다.


그렇게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걷고 또 걸었다.


발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걸었다.


한 원


두 원


세 원


아니


며칠이 걸려 걸었다.


선대 스토커들이 개척해 놓은 길은 진작에 막혔고


이제 자신이 길을 개척해 가야 했다.


이제 물도 음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침반에 의존해서 길을 갔다.


그렇지만


찾을 수 없었다.


첸이 거의 포기하고 주저앉으려는 찰나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을 주었다.


사람이었다.


갑자기 사람을 만난 첸은 얼어붙었다.


웬 사람?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물병을 주었다.


목이 마른 첸은 그 물병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의심가는 사람의 물건은 받지 말라는 스토커 교육의 교본을 떠올리고 망설였다.


그 사람은 첸의 고민을 알았는지 물병을 다시 집어들고 자신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말이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먹어라..."


첸은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쓰는 말을 비슷하긴 했지만 억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첸은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 물병을 집어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말했다.


"방공호 속에서 언어가 고립되었어도... 기본적인 뜻은 통하나 보군... 억양은 달라졌지만... 내 말 알아듣나? 소년?"


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말이 통하다니... 근데... 근육질 몸에... 총에 맥가이버 칼까지... 너 탈출자가 아닌 거냐?"


탈출자?


그 말에 첸은 칼을 그 사람에게 들이대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두 손을 내밀더니 하하 웃었다.


"이봐 난 적이 아니야... 난 적대 방공호 사람이 아니라고..."


첸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방공호 사람이 아닌데 왜 그렇게 정보를 잘 알지? 방공호와 방공호가 싸우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그러자 그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너희 방공호 윗대가리들이 병사들을 보내서 전쟁을 하는 것을 내가 멀찍이서 보았기 때문이지... 말 더 필요해?"


"......"


그 사람은 손을 가슴에 짚더니 자기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2000년 전 천나라의 천문관 지천님의 후예 류츠신이야...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를 자칭하고 있는 자칭 역사꾼이지..."


그 말에 첸은 놀랐다


2000?


년?


2000이란 말은 타이지에게서 들었다.


2000간격 전에 모든 문명의 시초가 있다고


하지만 ‘년’이란 말은 몰랐다.


“’년’이 뭐야?”


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류츠신은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년’을 모르는군 ‘년’은 하늘이 시간을 재던 시기에 쓰이던 시간 개념이다.”


첸은 새로운 세상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년’이라니 간격 이외의 시간 개념은 처음 알았다.


"2000간격 전에는 모든 문명의 시초가 있다고 들었는데..."


류츠신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나라는 천나라... 천지왕에게서 가호를 받은 인류 최초의 국가였지... 인간의 시대가 온 뒤 멸망했지만... 너도 아는군..."


"타이지가 모든 문명의 시초의 심장인 황허를 탈환하고 천명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 말에 류츠신은 질색하며 말했다.


"젠장... 인간은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가? 그놈의 천명 탈환은 언제까지 지속될 건지!!"


류츠신은 분노하면서 말했다.


그 분노에는 왜인지 모를


인류의 분노가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분노를 듣고 첸은 한동안 어정쩡해했다.


"?"


류츠신은 화를 내더니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너 잘못은 아니지... 내 집으로 와라.."


그렇게 첸은 류츠신의 집에 초대받게 되었다.


류츠신의 집은 초라했다.


낮은 산 위에 있는 초가였다.


지붕은 짚더미였고 벽은 황토로 이루어졌다.


그래도 자신의 방보단 깨끗하다고 첸은 생각했다.


류츠신의 집에 들어오자 류츠신은 끓인 물을 내왔다.


"자 차란 거야. 황허 강이 자주 범람해서 2000년 전 사람들은 물을 찻잎과 같이 끓여 마셨다더군 내가 준건 조잡하지만.. 그래도 차니까 마시게.."


첸은 ‘년’에 대해서 더 질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년’이 정확히 뭐지? 간격은 알겠는데..”


류츠신은 찬찬히 설명했다.


"아.. 넌 방공호 사람이어서 해를 모르는구나.. 년은 우리의 땅이 하늘에 떠 있는 해를 한 바퀴 돌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거다."


"중앙 탑 관계자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 말에 류츠신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탄했다.


"방공호에선 시간을 권력자들이 정하나 보군..잘 들어라 애야.. 시간은 누가 정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상대적인 것이란다."


갑작스러운 정보에 첸은 머리가 아팠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관이


부정된 기분이었다.


그래


이 기분은 처음이었다.


첸은 류츠신에게 물었다.


"태양이 무엇이고..그 태양은 왜.. 위에 안 보이게 된 건가요?"


류츠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건


절망일까?


더 깊은


절망일까?


류츠신은 입을 열었다.


"태양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광원이란다.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된 이유는..인류가 석유를 캐내어 태웠기 때문이지."


석유?


광원?


그게 무슨 상관이지?


첸은 그것들이 무슨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아직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보석반지를 발견했을 때 봤던 그 종이


그 종이에 그려져 있던 파란색 배경의 빨간 구체와 노란 구체


그것들이 태양과 연관되어 있다는 직감을 받았다.


태양과 연관된 그림


빨간 구체와 노란 구체


그것들은 도대체 무엇이지?


그것들을 보았을 때 무언가 기시감이 들기도 했었다.


첸은 물었다.


"내가 본 그림 파란 배경에 빨간 구체와 노란 구체가 있었어 그건 뭐지요?"


류츠신은 단답했다.


"파란 배경은 하늘, 빨간 구체는 태양 노란 구체는 달이다. 하늘에 태양과 달이 각각 하나씩 떠 있는 거야."


류츠신의 말을 듣고 첸은 고양감이 들었다.


만약 이 검은 '하늘' 말고


파란 하늘이 우리 위에 떠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할까?


첸은 이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알지 못했다.


무언가 구속에서 벗어난 느낌이긴 한데..


이것을 표현할 단어가 뭐지?


첸은 머리를 쥐어짰다.


그것을 보더니 류츠신은 첸을 걱정했다.


"왜 그러니 애야!"


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언가 풀려난 느낌 이것이 뭐지?"


그러자 첸의 머릿속에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자유야. 첸"


"내가 사흉을 부술 때 품었던 마음."


"내가 쌍성일을 끝낼때 품었던 마음."


"그건 자유야."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어."


"넌 자유야.."


첸은 중얼거렸다.


"난 자유야.."


"난 자유야.."


"난 자유로워.."


하지만


첸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그 목소리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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