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by 이엘

공나라 지도자 이한은 류츠신을 보급품 분배관으로 삼았다.


류츠신은 이한에게 의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판을 벌리는 것이 맞는가?"


이한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이렇게 판을 벌려야 첸 그 꼬맹이도 공동체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천명의 망령이 다시 올라오면 위험한 것은 자네도 잘 알 텐데? 이렇게 규칙을 만들어야 첸이 입을 열었을 때 제재할 수 있네."


류츠신은 이마를 찌뿌렸다. 그건 자신이 하나라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온 몸짓이었다.


"첸 그 아이를 크게 제재하진 않을 거지?"


그건 그 아이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냐 가하지 않을 것이냐를 완곡하게 물은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이한은 입꼬리를 내렸다.


"첸을 크게 제재할 것 없네. 어차피...."


"어차피?"


"아무것도 아니네... 자네는 가서 일하게."


그 말에 류츠신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굴다가 일을 보기 위해 사라졌다. 이한은 류츠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첸의 말은 모두가 믿지 않을 걸세... 진실은 우리가 쥐고 있으니..."


이한은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일을 분배했다.


150명에게는 식량 생산의 일을 맡겼고


90명에게는 필수 공산품 생산의 일을 맡겼고


50명에게는 우주선 보수 관리와 물자 관리의 일을 맡겼다.


나머지 이한 충성파 10명에게는 지도부 즉 물자 배분과 우주선 항해 관리일을 맡겼다.


물품 배분은 하루에 받은 공헌도 포인트에 따라 배분되었다.


하루에 주어지는 기본 포인트는 30 공헌도에 따라 10에서 20정도가 더 추가될 수 있었다.


이한은 이러한 체계를 만든 후 또다른 조치를 취했다.


우주선에 들고온 무기를 모두 부순 후


10개만 남겨 지도부만 쥐게 한 것이다.


표면적인 명분은 폭력의 재생산 방지였다.


하지만 첸은 그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이한이 하는 짓은 하나라 상층부가 하는 짓 같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옌이 찾아왔다.


옌은 첸의 얼굴 표정에 있는 수심을 알아챈 후 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근심이 깊은 거야?"


첸은 옌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였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하지만


옌에게만은 말하고 싶었다.


옌은 첸의 눈빛을 보고 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어떤 종류의 고민인지 대강은 알아차렸다.



첸은 진실과 침묵의 경계선상에 서 있구나


내가 할 일은 중심을 잡아 주는 일이구나..


옌은 첸의 손을 잡아주었다.


옌의 손길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 온기는 첸에게 용기를 주었다.


진실을 말할 용기를


옌은 첸에게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나를 구해주었어... 그 은혜는 잊지 않아... 너는 타락한 어른들과 달라... 너의 내면에는 강한 힘이 있어... 진실을 향해 가는 강한 힘이... 그러니... 나에게 고민을 말해줘도 돼 난 너와 언제나 함께 할 거니까."


첸은 그 말을 듣고 옌을 쳐다보았다.


유대가


믿음이


눈빛을 타고 전달되었다.


마침내 첸은 옌에게 모든 진실을 말했다.


사실 누군가가 정체를 모를 누군가가 3년 안에 알파 센타우리계로 갈 길목을 뚫어주었고 류츠신과 이한이 그 진실을 감추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을...


옌은 그 사실을 듣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현시


진실을 쫓던 역사가가 스스로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위선


억압에 맞서던 지도자가 억압을 답습하고 있다는 역설에


지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옌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첸에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자."


첸과 옌은 마침내 이 체제에 반역하기로 결심했다.


결심한 후로 첸과 옌은 믿을 만한 어른을 찾기 시작했다.


오히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한에게 반대했던 어른 그 사람은 바로 찬이었기 때문이었다.



첸의 부모를 하나라 병원에서 빼내려고 했던 사람


믿을 만한 사람


결정적으로


류츠신과 이한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옌은 작업 시간이 끝나고 찬을 잠시 만나기 위해 찬이 자고 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찬이 자고 있는 숙소는 우주선 지도부가 사는 곳에 가까운 데였다.


그것은 이한이 찬을 감시하기 위해 은밀히 내린 조치였다.


지도부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옌은 찬에게 갖다주기 못한 물자를 갖다준다는 핑계를 준비한 다음 찬에게로 갔다.


마침내 옌과 찬은 만났다.


찬은 옌의 눈빛을 보고 옌이 왜 찾아왔는지 어림짐작으로 깨달았다.


아마 이 체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옌이 찬에게 들려준 진실은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공동체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3년안에 갈 수 있는 것을 천년 동안 간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충격을 받은 찬은 옌에게 다시금 물었다.


"내가 너에게 들은 것이 정말이니? 옌?"


옌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찬에게 말했다.


"네."


찬은 이마를 짚었다. 이것은 공나라 아니 우주선 공동체를 근간부터 무너뜨릴 수도 있는 진실이다.


찬은 또한 자신이 믿었던 이들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진실을 쫓을 것이라 믿어 마지않았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진실을 덮을 수는 없었다.


저들이 어째서 진실을 덮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한과 류츠신이 하나라와 같은 짓을 답습하게 둘 수는 없다.


찬은 그렇게 여겼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른의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찬은 결심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로


찬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이한은 항해실에서 항법 장치를 계속 보고 있었다.


왜곡된 중력장은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었다.


이한은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이 중력장을 만들었단 말인가?


강력한 중력으로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기술 그것은 카르다쇼프 6형 문명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류츠신에게 들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카르다쇼프 6형 문명이 관여한 것


그러면 어째서 카르다쇼프 6형 문명이 우리에게 관여한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와중 류츠신이 들어왔다.


류츠신은 이한이 항법 장치를 보고 있는 것도 무시하고 상황 보고를 했다. 그것은 이한의 체제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었다.


"식량은 300명 정도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생산되고 있고 여유분도 있어... 필수품도 마찬가지고... 우주선 유지 장치는 앞으로 천년간 유지될 수 있어... 중요한 건 아무래도 시민들의 지루함이야.. 좁은 우주선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우울증이나 불안 등 정신질환이 보고되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이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오락거리가 필요하겠군 식량 생산 인력을 10명 정도 빼서 공산품 지대에 돌리면 오락거리 생산을 할 수도 있겠어."


류츠신은 이한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건 빵과 서커스인가?"


이한은 그 말을 듣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한 필수조치지 빵과 서커스가 아니네... 우리를 하나라와 비교하지 마. 그리고 너 이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는데 애시당초 '진실'을 알려줘서 나를 끌어들인건 자네야."


류츠신은 이한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협조자의 부끄러움인가?


아니면


역사가의 부끄러움인가?


하지만 류츠신은 할 말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총탄과 철창의 생산을 재개했는가!! 폭력의 재생산을 중지하겠다는 우리가 어째서 하나라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지? 난 어째서 치안대장의 목을 잘랐지? 그건 그냥 헛짓이었는가?"


이한은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질서 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야..."


류츠신은 그 말을 듣고 목청을 높였다.


"역사의 부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 시작되어...."


이한은 류츠신의 말을 끊고 말했다.


"이봐... 우리가 진실을 숨긴 이후부터 역사의 부조리는 이미 시작되었네... 우리는 돌이킬 수 없어!! 우리는 결과로써 시민들에게 증명할 수밖에 없네!!"


류츠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 말이 정론이었다. 자신이 침묵을 택한 후부터 부조리는 시작되었다. 되돌릴 수 없다. 나는 더이상 올바른 역사가가 아니다. 나는... 비겁자이다.


이한은 굳은 분위기를 읽고 말의 화제를 돌렸다.


"화두를 다른 것으로 바꾸지... 자네는 중력장이 왜 왜곡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류츠신은 그 화두에 대해 자신이 그동안 생각한 것을 말하였다.


"그건... 절대로 자연 현상이 아니야.... 자연 현상이라면 원숭이가 연필을 들고 종이 위에 낙서를 했을 때 명곡이 나올 수준의 확률이야. 적어도 카르다쇼프 5형 문명 최대 카르다쇼프 6형 문명이 간섭을 해서 나타난 현상이야..."


이한은 턱을 괴고 고민했다.


"자네가 말하기로 카르다쇼프 6형 문명은... 다중우주를 개편한다 했지?"


"그렇지... 과거, 현재, 심지어 미래에 이르기까지 시간축을 자유롭게 넘나들 정도의 문명이야. 그 정도 문명이라면 공간 왜곡으로 수 광년에 이르는 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쯤이야 쉽겠지."


"문제는 왜 그 문명이 간섭했느냐는 건데..."


류츠신은 그 말에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네 첫 번째 이유는 그냥 호기심에... 우리 인간이 개미집을 발견했을 때 호기심에 물총을 발사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네. 두 번째 이유는 인류의 정신적 진보를 위해 외계인이 간섭했을 경우이지... 인류가 정신적 진보를 하는 것이 우주 차원에서 이롭다고 판단을 내려 간섭을 한 것일지도 모르네. 마지막으로는 그들이 우리 미래의 인류일 가능성이네."


"미래의 인류?"


"그래 미래의 인류... 시간은 얼어붙은 강이라는 말이 있네 과거 현재 미래는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지. 타임 패러독스. 우리가 살아남았을 때 미래 인류가 과거의 결과값을 고정하기 위해 우리의 지름길을 뚫었을 거라는 거지."


"딴은 맞는 추측이군..."


류츠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추측일 뿐이야..."


이한은 그 말을 듣고 먼 우주를 바라보았다. 우주는 너무 넓고 광대했다.


"우주는 너무 넓고... 우리의 인지를 벗어나 있어... 우리 인류는 그것에 비해 너무 약한 존재야."


류츠신은 그렇게 말하는 이한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회한이 있었다.


그것은 천명에 대한 두려움인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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