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의 기제

by 이엘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에 나온 권력의 기제 - 무력의 독점에 대하여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은 한국 미국 일본에서 수많은 인기를 끌었던 웹소설 원작 애니메이션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관은 대략 이렇다. 온 세상에 게이트가 열렸고 그 게이트에서 인류의 군대의 무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마수들이 튀어나와 인류를 위협하는 와중에 인류 중에서 초인적인 힘을 가진 각성자들이 나와 그 마수들과 싸운다는 내용이다. 그 각성자들은 헌터라고 불리는데 그 헌터들은 각자 가진 힘의 크기에 따라 E급, D급, C급, B급. A급, S급, 그리고 국가권력급 헌터로 나뉜다. 주인공 성진우는 E급 최하위 헌터였다가 시스템의 선택을 받아 레벨업할 수 있는 헌터가 되고 결국 국가권력급 헌터가 되어 세상을 구한다.


단순하게 보면 헌터들이 세계를 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심도 있게 파고들어 보면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관은 헌터들에 의한 권력 독점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관임을 알 수 있다. 우선 E급 헌터도 해치울 수 있는 마수인 고블린에게는 군대의 총도 통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치안을 헌터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세계관인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군대는 민간인의 게이트 이동 통제 등 헌터의 보조 역할 밖에 못하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국가권력 헌터는 한 개체가 미국의 전체 군사력과 맞먹는다고 되어 있었고 S급 헌터 끼리 싸우면 주변의 지형이 바뀐다는 묘사가 있었다. 헌터는 군대를 넘어서는 무력인 것이다. 나라가 헌터에게 전복 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헌터 내부의 규제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형성한 무력 독점으로 헌터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독점적으로 채굴한다. 한국에서는 헌터 5대 길드가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처분해 큰 돈을 번다. 마정석은 작중에서 오염 물질을 내보내지 않는 천연 에너지라 설정되어 있다. 헌터가 전 세계의 에너지를 독점하는 것이다. 작중에서도 국내 대기업이 헌터 길드를 세우거나 헌터 길드에 줄을 대니 헌터는 전 세계의 경제를 독점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생명줄 또한 쥐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는 전세계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헌터는 헌터에 대한 사법권도 독점하고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 1기에서 c급 헌터 3명이 저지른 성범죄를 처리한 존재는 사법부가 아니라 헌터들로 구성된 헌터 협회의 감시과였다.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부여받은 사법부가 아니라 일개 행정 기관의 부서가 사법권을 가진 것이다. 게다가 헌터 자격증이 있는 경우 복역 기간 중 게이트 레이드를 하면 감형된다는 설정이 붙어 있었다. 이러한 설정들이 의미하는 바는 국가적 위기에 따라 헌터들에게는 특권이 부여되고 헌터를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헌터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헌터 협회는 국가 기관인 동시에 5대 길드를 통제하고 헌터들의 범죄를 억제하긴 하지만 그 헌터 협회의 협회장은 결국 국가권력급 헌터인 고건희이다. 작중에서 고건희는 인품이 좋고 국가를 사유화할 사람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헌터 협회는 정부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고 고건희 본인부터가 수많은 주요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미 권력의 분권화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인 것이다.


주인공 성진우로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주인공 성진우는 시스템의 가호로 점차 강해지면서 시체 군단을 다룰 수 있는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게 되고 수천 수만의 군대를 거느리게 된다. 그 군대는 전 세계의 일반 군대로는 전혀 감당할 수 없는 군세이고 성진우 본인도 국가권력급으로 강하다. 게다가 대기업 유진건설의 차남 유진호를 동료(사실상의 부하)로 둠으로써 경제권도 장악하고 본인만의 길드를 만듦으로써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창구 또한 마련하게 된다. 수많은 고위 마수들을 토벌해 명성도 쌓았으니 그를 견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헌터는 정치 경제 무력 사법 측면에서 국가를 능가했다고 볼 수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 내가 분석한 권력의 기제는 사실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고건희랑 성진우 그리고 일부 빌런 헌터를 제외한 대부분의 헌터들은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명감에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이 집중된 상태에서 권력자의 호의로만 유지되는 체제는 썩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현실은 소설과 애니메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고려시대의 무신정권 또한 정중부 등 무신 세력들이 '칼'로써 세운 정권이다. 그들은 무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고 몽골이 집권하기 이전 100년간 고려를 다스렸다. 그동안 그들은 백성 수탈, 땅 뺏기, 권력 전횡 등 각종 만행을 일삼았다. 로마의 군인황제시대도 같은 맥락이다. 칼을 지닌 군벌들이 황제 자리에 오르고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군벌들은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군인들을 달래야 했고 저순도의 은화를 주조해서 군인들에게 지급했다. 결과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붕괴였다. 대한민국의 군부 독재도 그렇다. 군부 세력은 각종 전횡을 반복했고 총칼로 집권한 그들을 막을 세력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 이상의 힘을 지닌 헌터는 어떻겠는가?


민주주의 체제는 권력 분립이 기본이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면 그 사람을 견제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어지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절대 부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부패를 막기 위한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는 피를 통해 만들어졌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화려한 액션 속에서 권력 분립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어떤 위험이 도래하는지 은연중에 보여주었다. 결국 우리 세계는 그 허구적 세계를 반면교사 삼아 무력 경제 사법 정치의 균형을 지켜내는 싸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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